저는 원래 영어를 좋아했습니다. 관심도 많았고, 언젠가는 영어를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도 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인생에서 가장 질 높은 영어 공부는 학원이나 책상이 아니라, 딸아이와 함께 보낸 지난 2~3년의 시간이었습니다.
영어유치원과 영어 학원을 다닌다고 해서 아이가 처음부터 혼자 해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초반에는 영어책, 숙제, 발표 준비를 아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부모가 옆에서 도와줘야 했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답을 다 알려주면 아이가 생각할 틈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다른 방법을 택했습니다. 아빠가 모든 정답을 아는 사람처럼 굴기보다, 아이 옆에서 같이 틀리고, 같이 머뭇거리고, 같이 다시 말해보는 사람이 되려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어느 순간 딸아이가 영어를 배우는 아이에서, 아빠에게 영어를 알려주는 작은 선생님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빠표 영어, 가르치기보다 같이 배웠다
처음에는 저도 아이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어 숙제를 펼치면 제가 먼저 단어를 확인하고, 문장을 설명하고, 아이가 막히면 바로 알려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아이는 점점 제 입을 기다렸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아빠가 답을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숙제는 빨리 끝날 수 있었지만, 아이가 자기 힘으로 깨우치는 느낌은 약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답을 바로 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아이 눈높이에서 상황을 풀어주고, 그림을 그려주고, 쉬운 말로 다시 설명했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아, 이거구나” 하고 잡을 수 있도록 시간을 조금 더 주려고 했습니다.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어른 입장에서는 금방 보이는 문장도 아이에게는 낯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자꾸 빨리 알려주고 싶었고, 아이는 천천히 이해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 시간을 겪으며 알게 됐습니다. 아빠표 영어는 아빠가 많이 아는 것을 보여주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자기 속도로 이해할 때까지 옆에서 같이 머물러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영어를 좋아했다고 해도, 아이 눈높이에서 다시 설명하는 일은 전혀 다른 공부였습니다. 오히려 딸아이와 함께한 시간이 제 인생에서 가장 진짜 영어에 가까웠습니다.
틀린 아빠를 딸이 고쳐준 날
아이 앞에서 영어를 말할 때 처음에는 저도 괜히 조심스러웠습니다. 발음이 이상하면 어쩌나, 문장이 틀리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완벽한 아빠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제가 영어를 잘하는 어른이 아니라, 아이와 같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문장을 말하다가 멈추기도 했고, 자신 없는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아빠도 이거 헷갈리네”라고 말하며 아이와 같이 다시 봤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럴 때 아이가 더 편해졌습니다.
한번은 제가 문장을 읽다가 일부러가 아니라 진짜로 막힌 적이 있습니다. 순간 아이가 제 종이를 가져가더니, 선생님처럼 손가락으로 단어를 짚었습니다. 그리고 “Daddy, not this. This one.”처럼 제 말을 고쳐주려고 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아이 손을 잡고 문장을 따라가게 했는데, 그날은 아이가 제 손을 끌고 문장 안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맞다, 맞다. 우리 딸 대단한데?” 하고 크게 칭찬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이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자기가 아빠를 가르쳤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훨씬 자신 있게 문장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아는 표현이 나오면 먼저 알려주려 했습니다. 저는 일부러 더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아빠한테 다시 설명해줄래?”라고 말하면 아이는 작은 선생님처럼 문장을 짚으며 설명했습니다.
그 장면은 제가 오래 기억하고 싶은 아빠표 영어의 한 장면입니다. 아빠가 틀렸기 때문에 아이가 자신 있게 말할 자리가 생겼습니다.
아이가 선생님이 될 때 영어가 살아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역할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알려주는 것이 많았다면, 이제는 딸아이가 저에게 알려주는 순간이 많아졌습니다.
어떤 단어는 저보다 아이가 더 자연스럽게 말합니다. 어떤 문장은 제가 떠올리기 전에 아이 입에서 먼저 나옵니다. 가끔은 제가 모르는 표현을 아이가 너무 편하게 말해서 속으로 놀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배우는 마음으로 묻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아빠한테 다시 설명해줘.” 그러면 아이는 선생님처럼 설명하려고 합니다.
이 과정이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아이는 아는 것을 말로 설명하면서 더 확실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배우는 아빠가 되었고, 아이는 영어 앞에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아내와 농담처럼 이야기할 때도 있습니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딸한테 그것도 모르냐고 혼나는 거 아니야?” 하고 웃습니다. 그런데 그 농담 속에 진짜 변화가 있습니다. 아이가 이제 영어를 아빠에게 배우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아빠표 영어는 완벽한 부모가 아이를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아빠가 일부러 낮아지고, 틀리는 모습도 보여주고, 아이가 아는 순간에는 선생님 자리를 넘겨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제가 정답만 알려줬다면 아이는 더 빨리 끝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재미있게 알려주고, 고쳐주고, 역할을 바꿔가며 영어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딸아이와 함께한 지난 시간은 아이만의 영어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같이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아빠가 먼저 틀려도 말해보니, 아이도 틀리는 것을 덜 무서워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아이가 아빠의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아빠표 영어의 힘은 완벽한 영어 실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같은 자리에 앉아 함께 배우려는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