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딸이 태블릿을 들고 검색창을 열었다.영어학원 숙제를 하는 시간은 아니었다. 내가 뭘 찾아보라고 시킨 것도 아니었다.자기가 보고 싶은 게 있었던 모양이다.화면에 영어자판을 띄우더니 하나씩 눌렀다.“Toy story”T는 대문자로 들어가 있었다. 그게 영어 실력의 증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판 설정 때문일 수도 있다.내가 눈여겨본 것은 다른 쪽이었다.우리 딸은 한국에서 사는 일곱 살 아이이고 나와 평소에는 한국말로도 잘 이야기한다. 그런데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는 순간 검색창에 먼저 넣은 것은 한글이 아니라 영어였다.Toy story를 치자 검색창에 5가 붙은 결과가 보였고, 딸은 그걸 눌러 예고편을 찾아보기 시작했다.토이스토리 1편부터 4편까지 수도 없이 봤던 아이라 새로운 장면이 나오니..
“Everybody attention…”주말 저녁, 영어유치원을 함께 다녔던 친구들과 놀던 중 한 아이가 이 말을 꺼냈다.뒤에 뭐라고 더 이어서 말했는지는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이 표현 자체는 딸에게 다시 확인했다. 영어유치원 7살 반에서 아이들이 정신없이 놀거나 산만할 때 담임선생님이 자주 쓰던 말이라고 했다.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딸이 웃었다.나는 그 표정이 재미있었다.영유를 졸업한 뒤 우리 집에서는 이런 영어를 들을 일이 완전히 없어졌기 때문이다.영어책은 여전히 읽는다. 영어학원도 다니고 원어민 수업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선생님이 반 전체를 집중시키거나 아이들을 정리할 때 쓰던 영어는 집에서 사용할 이유가 없다.두 달 가까이 입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고 들을 일도 없었다.나는 ..
“어? 아빠, 여기 글로벌 학교 아니야? 영어가 너무너무 쉬워. 영어유치원보다 너무 쉬워.”화교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하고 첫 영어수업을 들은 딸이 집에 와서 한 말이다.나는 영어가 쉽다는 말보다 다른 걱정이 먼저 들었다. 아이가 수업시간에 너무 쉽다고 티를 내지는 않았을까. 자기도 모르게 잘난 척을 하거나, 친구들이 듣는 앞에서 경솔한 말을 하지는 않았을까. 영어를 잘한다는 칭찬보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가 더 궁금했다.영어가 너무 쉽다는 말보다 잘난 척이 먼저 걱정됐다나는 영어 교과서를 미리 보지 못했다. 입학하고 나서 책을 펼쳐보니 첫 수업답게 내용은 완전 기초에 가까웠다. 처음 만난 아이들과 워밍업하는 시간이었을 테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그런데 딸의 시작점은 달랐다. 다섯 살부터 영..
선생님 말 한마디에 자유가 주어진 기분이었다. 그런데 아이 마음이 정말 그 말 한마디로 바뀐 건지는 모르겠다.화교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한 딸이 갑자기 나보고 이제 영어 공부는 따로 하지 말라고 했다.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동안 내가 계속 옆에 앉아 숙제를 봐줬는데, 초등학교 1학년이 되자 자기가 알아서 하겠단다. 자기가 영어를 더 잘하니까 이제는 아빠를 가르쳐주겠다고도 했다.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섭섭하기보다 속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 먼저 들었다. 박사님들은 알려나. 나는 모르겠다. 학교 선생님이 단호하게 말해서 그런 건지,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갑자기 스스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지도 모르겠다. 그게 무슨 말인지 이야기하려면 2년 반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영유 2년 반, 나도 딸도 수험생처럼 살았다딸..
"이거 누구야?"7살 딸이 자기 어릴 때 영상을 보고 한 말이다. 자기 모습인 줄도 몰랐다. 내 휴대폰과 노트북에서 가장 많은 용량을 차지하는 게 딸 사진과 영상인데, 그중에서도 영어 공부하는 영상이 제일 많다. 알파벳 따라 하고, 스피킹 연습하고, 소리 내어 책 읽고. 퇴근하고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틈만 나면 찍어뒀다. 그걸 며칠 전에 처음으로 딸한테 보여줬다. 그날 우리 집 거실에서 벌어진 일이 나는 아직도 잘 정리가 안 된다. 웃다가 울었고, 마지막에는 딸이 나를 나무랐다. 아빠표 영어, 3살부터 시작한 것들우리 딸 영어는 거의 나랑 집에서 해왔다. 시작은 3살쯤이었다. 어린이집 다닐 때 abcd부터 했으니까. 완전 갓난아기 때는 영어를 아예 안 했다.지금 그 영상들을 다시 열어보면 좀 웃긴..
어느 날 딸이 내 눈을 딱 보면서 말했다. 아빠 그렇게 읽으면 재미가 없다고. 그렇게 읽으면 책을 다 못 읽는다고. 소파에서 영어책을 읽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시작된 일이었다. 나는 거의 독박으로 공부며 케어를 다 하는 아빠인데, 그날은 완전히 입장이 바뀌었다. 앉아서 지적받는 쪽이 나였다. 그리고 나중에 알고 보니 딸이 나를 부른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나는 그날 그냥 같이 놀자는 줄로만 알았다. 유아 영어독서, 아빠를 혼내려다 생긴 일우리 딸 특기가 영어책 읽기다. 워낙 많이 읽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도 영어책 읽는 걸 좋아한다. 조금 꼴불견일 수도 있는데 밖에 잠깐 나갈 때도 책을 들고 나가서 걸으면서 읽는다. 그래서 나는 밖에서는 그러지 말라고 계속 말리는 편이다.그날도 한소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