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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이 리모컨으로 영어 영상 틀려고 하는 모습

    딸이 영어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 편이 끝나기도 전에 리모컨을 들고 다음 화면을 눌렀다.

    노래가 후렴으로 가기도 전에 다음 썸네일을 찾았다. 조금 보다 또 넘겼다.

    그날 내가 처음 눈여겨본 것은 영어가 아니었다.

    딸 손가락이었다.

    그동안 나는 영어 영상을 몇 분 봤는지에 더 신경을 썼다. 오래 보면 너무 오래 본 것 같았고, 영어로 보고 있으면 그래도 영어를 듣고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딸이 계속 다음 화면을 찾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30분을 봤다는 숫자보다 한 영상에 얼마나 머물렀는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 편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영상을 찾고 있었다

    딸 손에는 리모컨이 있었다.

    한 영상을 보고 있는데도 손가락은 이미 다음 화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리모컨을 뺏지 않았다.

    대신 딸이 또 넘기려는 순간 말했다.

    “이 노래 여기만 한 번 더 듣고.”

    대단한 방법을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냥 지금 보고 있는 것 하나만 조금 더 보고 넘어갔으면 했다.

    후렴이 다시 나왔다.

    그때 딸 입에서 마지막 영어 단어 하나가 따라 나왔다.

    문장을 말한 것도 아니고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부른 것도 아니었다.

    단어 하나였다.

    그렇다고 그 한 단어를 보고 영어영상 효과가 확인됐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오히려 그 직전이다.

    계속 다음 버튼을 찾던 딸의 손이 잠깐 멈췄다.

    나는 그날 영어를 얼마나 말했는지보다 그 순간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됐다.

    Bear, Door, Open? 길게 가르치지는 않았다

    그 뒤에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영상을 같이 보다가 화면에 곰이 나오면 그냥 말했다.

    “Bear.”

    문이 나오면 “Door.”

    문을 여는 장면에서는 “Open?” 정도였다.

    이것도 영어 공부 시간을 따로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화면을 보던 딸에게 내가 길게 설명하기 시작하면 금방 영어 수업처럼 될 것 같았다.

    나는 영어영상을 틀어놓고 아이가 몇 개나 알아듣는지 확인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화면이 계속 바뀌는 대로 두고만 보는 것도 내 마음에는 걸렸다.

    그래서 정말 짧게만 끼어들었다.

    그날 이후 내 관심은 조금 달라졌다.

    아이가 화면 속 영어를 얼마나 많이 따라 하는가보다, 지금 보고 있는 장면에 머물러 있는지부터 보게 됐다.

    영어 영상 몇 분 봤냐보다 다음 버튼을 얼마나 빨리 찾는지 본다

    영어 영상을 보여줘도 되는지에 대해 내가 정답을 가진 것은 아니다.

    우리 집에서도 어떤 날은 잘 보고, 어떤 날은 계속 넘긴다.

    그런데 그날 이후 내가 보는 기준 하나는 생겼다.

    예전에는 시간을 먼저 봤다.

    얼마나 오래 봤지.

    오늘 너무 많이 본 건 아닌가.

    지금은 가끔 딸 손부터 본다.

    한 장면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영상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다음 화면만 찾고 있는지.

    손가락이 계속 바빠지면 나는 한 번쯤 붙잡아본다.

    “이 노래 여기만 한 번 더 듣고.”

    그 말을 했다고 딸 영어가 갑자기 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날 이후 영어영상 시청시간을 보는 내 기준 하나가 달라졌다.

    몇 분을 봤는지보다, 그 몇 분 동안 딸이 어디에 머물렀는지를 한번 더 본다.

    그걸 알게 해준 건 영어 단어가 아니었다.

    리모컨 위에서 계속 다음 버튼을 찾던 딸 손가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