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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영어책 구석의 작은 동물만 한참 들여다보는 동안, 정작 제 눈에는 책을 안 읽고 자란 제 빈칸이 먼저 보였습니다.
저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은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글자는 읽을 수 있었지만, 책을 붙잡고 앉아 있는 시간이 늘 어려웠습니다. 책을 펴면 몇 줄 못 가 머릿속이 먼저 딴 데로 갔고, 그 시절 책은 저에게 즐거움이라기보다 끝내 익숙해지지 못한 숙제에 가까웠습니다.
지금도 선명한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초등학생 때 방학 숙제는 늘 일기 서른 편에 독후감 서른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에는 읽을 책이 없었고, 어쩌다 책을 펴도 몇 장 못 가 잠이 쏟아졌습니다. 개학은 다가오는데 독후감 칸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놀러 간 친구 집에서, 그 친구가 써둔 독후감을 봤습니다. 어찌나 잘 써놨던지요. 어린 저는 결국 그걸 빌려 베껴서 방학 숙제로 냈습니다. 선생님은 딱 보면 압니다. 그날 정말 크게 혼났습니다. 그런데 혼나면서도 억울하다는 생각보다, 그냥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싶었습니다. 그만큼 책은 저에게 먼 물건이었습니다. 그게 제 어린 시절 독후감의 거의 유일한 기억입니다.
그런데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멀리 간다는 믿음은 이상하게 제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책을 끼고 살던 사촌 형은 MIT를 졸업하고 지금 미국에 삽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책을 읽는 사람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다는 생각을 오래 품었습니다. 솔직히 그 믿음 안에는 약간의 부러움과 후회도 섞여 있었습니다. 나도 그때 책과 친해졌더라면, 하는 마음이요. 그래서 딸이 영어책을 스스로 펼칠 때마다, 제가 놓친 문 하나를 아이가 조금 일찍 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그 마음을 ‘그러니까 너는 읽어’라는 말로 아이에게 떠넘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만약 책을 강요받았다면 더 싫어졌을 거라는 걸, 저는 제 경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도 확신에서 시작하지는 못했습니다. 책이 좋다고들 하니 읽어줬고, 영어책이 좋다고들 하니 같이 펼쳤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아빠라서가 아니라, 책을 오래 피했던 아빠라서 오히려 더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반응은 제 어린 시절과 달랐습니다. 무서운 그림에서는 제 쪽으로 몸을 살짝 붙였고, 웃긴 부분에서는 제가 설명하기도 전에 먼저 웃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쪽이 나오면 “여기 또”라고 하며 손가락으로 그림을 짚었습니다. 저에게 책은 끝까지 버텨야 하는 물건에 가까웠는데, 아이에게 책은 다시 들어가고 싶은 작은 방처럼 보였습니다.
아이가 영어책을 볼 때, 글자만 따라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본문보다 그림 구석의 작은 동물을 오래 보고, 이야기의 중심에서 벗어난 작은 물건에 손가락이 한참 머뭅니다. 어른 눈에는 옆길로 새는 것처럼 보여서, “본문을 봐야지”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가만히 보면, 아이는 딴짓을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 구석의 작은 동물이 다음 쪽에도 나오는지, 어딘가 숨어 있는지, 표정이 바뀌는지를 자기 방식으로 살피고 있었습니다. 저라면 그냥 넘겼을 한 칸에서, 아이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책을 덮자마자 “무슨 내용이야?”라고 묻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이 너무 빠르면 책은 금방 확인 시험처럼 바뀝니다. 그래서 아이가 먼저 본 것을 말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딸은 줄거리를 또박또박 설명하진 않았지만, 구석의 그 동물 이야기를 먼저 꺼냈습니다. 책 안에서 자기 길을 만들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요즘은 영어책을 하루 몇 권 읽어야 하는지보다, 아이가 어느 쪽에서 몸을 가까이 붙였는지를 더 봅니다. ‘몇 권 읽었어?’나 ‘끝까지 읽어야지’ 같은 말은 되도록 아낍니다. 제가 책 앞에서 느꼈던 그 부담을, 아이 손에 그대로 쥐여 주고 싶지 않아서요. 책을 끝까지 읽는 것보다 먼저 필요한 건, 책 앞에서 마음이 굳지 않는 경험이었습니다. 그건 제가 어릴 때 끝내 가져보지 못한 경험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아이의 독서는 독서 목록을 채우는 일이 아닙니다. 책을 멀리했던 아빠가, 책을 스스로 펼치는 아이를 보며 뒤늦게 배우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저는 아직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딸이 어느 페이지에서 한참 멈춰 있으면, 이제는 빨리 넘기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멈춤이, 제가 끝내 배우지 못한 ‘책과 노는 법’처럼 보여서요.
“읽어라”라는 말은 저에게 한 번도 통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딸에게도 그 말을 앞세우지 않으려 합니다. 대신 오늘도 구석의 작은 동물을 같이 찾고, 아이가 다시 손을 뻗을 때까지 옆에 앉아 있어 보려 합니다. 제가 놓친 세계를, 이 아이는 조금 더 일찍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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