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저는 오래전부터, 책을 읽는 사람이 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믿어 왔습니다. 제가 대단한 독서가라서 품게 된 믿음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책과 그리 가깝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믿음만은 이상하게 단단했습니다. 새로운 걸 만들고, 다른 길을 내고, 끝내 무언가를 바꾸는 사람들 뒤에는 늘 읽는 시간이 있었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믿음을 요즘 일곱 살 제 딸에게서 다시 봅니다.
     

    어디서나 영어책을 읽는 아이

    책 읽는 사람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말

    이 말은 거창하게 들리지만, 제게는 아주 단순한 뜻입니다. 읽는 사람은 자기 머릿속에 남의 생각을 들여놓을 줄 압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만나보지 못한 사람, 살아보지 못한 시간을 책 한 권으로 잠깐 살아 봅니다. 읽는 동안 우리는 잠깐 다른 사람의 머리를 빌리는 셈입니다. 그렇게 빌린 머리가 한 권, 두 권 쌓이면 어느새 내 생각의 폭도 그만큼 넓어져 있습니다.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 꼭 특별한 천재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은 남보다 더 많은 생각을 자기 안에 들여놓은 사람들이었고, 그 출발점은 대개 읽는 일이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같은 문제를 봐도, 읽어온 사람은 남들과 조금 다른 자리에서 그것을 봅니다.
    저는 그 자리를 늦게 알았습니다. 학창 시절 내내 책은 저에게 끝까지 버텨야 하는 숙제에 가까웠고, 읽는 즐거움은 어른이 되어서야 겨우 곁눈질했습니다. 그래서 더, 제 아이만큼은 그 자리를 일찍 가졌으면 했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읽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로 자랐으면 했습니다.
    제가 딸을 영어유치원에 보낸 것도 결국 그 끝에 있었습니다. 영어 점수나 발음이 목표였다면 다른 길도 많았을 겁니다. 제가 바란 건, 아이가 영어라는 또 하나의 창으로 더 많은 책을 읽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책에 영어로 읽을 수 있는 책까지 더해지면, 아이가 들여다볼 수 있는 세계가 그만큼 넓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일곱 살이 그 믿음을 살고 있습니다

    지금 제 딸은 영어로 말할 때 거의 막힘이 없습니다. 무언가를 설명하다가 한국어와 영어를 자연스럽게 오가고, 머릿속에서 번역을 거치는 느낌도 거의 없습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원이나 유치원에서는 매주 한 페이지짜리 글쓰기 숙제가 나오는데, A4 한 장을 어렵지 않게 채웁니다.
    주제는 매주 바뀝니다. 얼마 전에는 ‘주말에 너를 가장 신나게 하는 것’이 주제였습니다. 딸은 줄넘기와 요가라고 적었습니다. 그걸 할 때 땀을 제일 많이 흘리고 기분이 가장 좋다고요. 저는 그 글을 보면서 문법이 맞았는지부터 보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자기 생각을 이렇게 또렷하게 골라 적는다는 게 더 놀라웠습니다. 영어 문장이 매끄러운 것보다, 그 안에 아이의 진짜 마음이 담겨 있는 게 먼저 보였습니다. 줄넘기와 요가가 왜 좋은지를 자기 나름의 이유로 풀어내는 동안, 영어는 그저 그 마음을 담는 그릇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를 가장 놀라게 한 건 점수도, 실력도 아니었습니다. 습관이었습니다. 딸아이는 쉬는 시간이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영어책을 펴는 아이가 됐습니다. 저에게 어릴 때 책은 누가 시켜야 겨우 펴는 물건이었는데, 이 아이에게는 심심할 때 가장 먼저 손이 가는 물건이 됐습니다. 제가 끝내 갖지 못한 그 습관을 일곱 살이 아무렇지 않게 가지고 있는 걸 보면, 부럽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잊히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공부를 하다가 피곤해서 눈이 풀릴 때, 아이가 “아빠, 나 좀 쉬어도 돼?”라고 묻습니다. 그러고는 책장으로 가 책 한 권을 집습니다. 그런데 그 책을 펴는 순간, 풀려 있던 눈이 마법처럼 다시 반짝입니다. 저에게 책은 펴기만 하면 잠이 오던 물건이었는데, 이 아이에게 책은 지쳤을 때 오히려 다시 깨어나는 자리였습니다. 같은 책이 어떤 사람에게는 잠을 부르고 어떤 사람에게는 눈을 뜨게 한다는 걸, 저는 일곱 살을 보며 알았습니다.
    이게 과학적으로 증명된 공식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독서가 인생의 모든 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누구나 행복해지거나 성공하지는 않겠지요. 다만 저는, 읽는 힘을 가진 사람에게는 세상을 스스로 해석할 도구가 하나 더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도구를 일곱 살에 손에 쥔 아이는, 앞으로 더 긴 글과 더 어려운 생각 앞에서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전히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매일 영어책을 펴는 딸 옆에 앉아 있다 보면, 제가 늘 멀리서만 믿어온 그 말이 우리 집 거실에서 조용히 증명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책 읽는 사람이 이 세상을 움직인다면, 그 시작은 피곤한 눈이 책 앞에서 다시 반짝이던, 그 작고 조용한 거실의 한 장면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