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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숙제 순서

 

“이거 쉬운데?”

전날 봤던 단어가 워크북에 다시 나오거나, 이미 여러 번 읽은 문장에서 딸이 멈추면 제가 자주 꺼냈던 말입니다.

저는 가볍게 한 말이었습니다. 한 번 했던 내용이니 금방 떠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딸은 문제를 다시 보기보다 먼저 제 얼굴을 봤습니다.

“아까 했잖아.”

같은 단어를 또 틀리거나, 조금 전까지 잘하던 스피킹 문장이 다시 꼬일 때는 이 말도 따라 나왔습니다. 아이의 영어를 고쳐주려고 앉았는데, 어느 날부터는 제 첫마디가 숙제 분위기를 먼저 굳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거 쉬운데?”라고 하자 딸은 제 얼굴을 봤습니다

영어유치원 숙제는 어른 눈에 쉬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짧은 단어와 문장, 간단한 그림을 보면 저도 모르게 난이도부터 정했습니다.

아이가 자신감을 가지라는 마음도 조금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실제로 본 반응은 달랐습니다. 딸은 답을 찾기 전에 제 표정을 살폈고, 저는 그제야 “쉬운데?”가 격려로만 들리는 말은 아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말을 바꿔보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봤던 거랑 비슷하다.”

쉬운지 어려운지를 제가 정하는 대신, 전에 본 내용과 연결되는 지점만 짚는 쪽으로 바꿨습니다.

“아까 했잖아”가 나오면 아이가 굳었습니다

“아까 했잖아.”
“방금 말했잖아.”
“조금 전에 읽었잖아.”

피곤한 저녁에는 같은 뜻의 말을 계속 바꿔가며 했습니다. 딸은 일부러 틀린 것도 아닌데, 저는 방금 했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기억하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으로 본 문장이 입에서 바로 나오지 않는 날도 있었습니다. 조금 전에는 읽었는데 다시 막히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때 “아까 했잖아”라고 하면 딸의 몸과 표정이 더 굳는 모습을 봤습니다.

요즘은 같은 장면에서 이렇게 말하려고 합니다.

“입에 아직 덜 붙었나 보다.”

이 말을 쓴다고 숙제가 늘 부드럽게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반복해서 틀린 일을 아이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대신, 아직 익숙해지는 중이라고 보니 숙제 분위기가 덜 무거워졌습니다.

아이의 답보다 제 첫마디를 먼저 고쳤습니다

물론 제가 고쳐야 했던 말은 이 둘뿐이 아니었습니다. “빨리 끝내자”, “왜 또 틀렸어”, “선생님한테 물어봐”도 피곤한 밤이면 나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이거 쉬운데?”와 “아까 했잖아”는 아이가 지금 어려워하는 정도와 기억하는 속도를 제가 먼저 판단한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두 마디부터 줄이기로 했습니다.

이것을 모든 아이에게 맞는 교육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집에서 영어유치원 숙제를 봐주며 제가 실제로 꺼냈던 말과, 딸의 얼굴을 본 뒤 바꿔본 말에 대한 기록입니다.

지금도 피곤하면 예전 말이 먼저 올라옵니다. 그럴 때는 아이의 답을 고치기 전에 제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려는지부터 봅니다.

“어제 봤던 거랑 비슷하다.”
“입에 아직 덜 붙었나 보다.”

숙제 앞에서 제가 먼저 고쳐야 했던 답은 아이의 영어가 아니라 아빠의 첫마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