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언제 와?”
아내가 장거리 비행을 가면 딸은 며칠씩 엄마를 보지 못했습니다. 길면 일주일 가까이 부산 집에는 엄마 자리가 비었습니다.
그날도 영어유치원 숙제를 펴놓은 딸이 엄마부터 찾았습니다. 저는 숙제를 더 하자고 바로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다고 스피킹 대본을 그대로 접을 수도 없었습니다.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오면 이거 보여주자.”
엄마가 언제 오는지 다시 설명하는 대신, 엄마에게 보여줄 문장 하나를 같이 준비해보기로 했습니다.

엄마 없는 날에는 영어유치원 가방을 작게 열었습니다
아내는 승무원이라 비행 일정에 따라 며칠씩 서울 쪽 숙소에서 지냈습니다. 저는 식자재영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딸을 씻기고 밥을 먹인 뒤 영어유치원 가방을 열었습니다.
가방 안에는 리딩북과 워크북, 라이팅 숙제와 스피킹 대본이 들어 있었습니다. 퇴근한 제가 그걸 한꺼번에 붙잡으면 밤이 무거워졌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없는 동안에는 그날 볼 것만 꺼냈습니다. 리딩북을 읽은 날에는 라이팅을 길게 붙잡지 않았고, 스피킹 대본도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인사 부분, 주제를 말하는 부분, 손동작이 들어가는 부분, 마지막 문장으로 나눠서 봤습니다. 다시 해야 할 때도 “처음부터 다시”보다 “여기만 다시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매일 계획대로 된 것은 아닙니다. 한 문장에서 오래 막히기도 했고, 딸의 표정이 좋지 않아 그대로 접은 날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해진 양을 모두 채우는 일이 아니라, 엄마가 돌아왔을 때 보여주고 싶은 문장 하나를 남기는 일이었습니다.
“엄마 오면 보여주자”고 하니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딸이 엄마를 찾는 날에는 숙제를 시키는 말이 더 조심스러웠습니다.
“엄마 언제 와?”
그 질문 뒤에 제가 숙제부터 꺼내면 딸의 마음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엄마를 기다리는 마음과 영어 숙제를 따로 떼어놓지 않았습니다.
“엄마 오면 이거 보여주자.”
이 말이 통하는 날에는 딸이 대본을 다시 봤습니다. 길게 이어서 말하지 못해도 괜찮았습니다. 첫 문장만 해보고, 마지막 문장만 다시 맞췄습니다.
라이팅을 볼 때도 비슷하게 물었습니다.
“이 문장은 엄마한테 뭐라고 말할 거야?”
그러면 딸은 자기가 쓴 문장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대문자와 마침표를 전부 고쳐주는 것보다, 딸이 자기 문장을 입으로 설명하는 시간이 길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이 방법이 모든 아이에게 통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엄마를 기다리는 딸에게 숙제를 더 하라고 재촉하는 것보다, 엄마에게 보여줄 말을 준비하자고 했을 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날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돌아온 날, 딸이 영어부터 꺼냈습니다
아내가 비행을 마치고 부산 집에 돌아오면 딸은 엄마에게 달려갔습니다. 어느 날에는 유치원에서 배운 말과 저와 연습했던 스피킹 문장을 엄마 앞에서 먼저 꺼냈습니다.
매끄럽게 이어지는 문장도 있었고 중간에 막히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저는 옆에서 고쳐주지 않고 딸이 어디까지 말하는지 지켜봤습니다.
딸이 영어를 꺼낸 것이 며칠 동안의 연습 덕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그 장면을 보며 우리가 무엇을 위해 숙제를 잘라서 했는지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리딩북을 몇 장 끝냈는지, 라이팅을 얼마나 정확하게 고쳤는지보다 딸이 다시 만난 엄마에게 자기 문장을 직접 보여준 일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엄마가 없는 일주일을 완벽하게 채우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엄마가 돌아온 날 꺼내고 싶은 영어 한마디를 아빠와 딸이 함께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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