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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탁 위 저울 앞에서 소스 양을 고르는 아이의 손

    식탁 위 저울은 0g에서 멈춰 있었습니다. 작은 그릇 하나가 올라가 있었고, 딸은 숟가락을 들고도 한참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소스 병을 보고, 숫자를 보고, 다시 제 얼굴을 봤습니다.

    그날 저는 영어를 시키려고 저울을 꺼낸 게 아니었습니다. 저녁 반찬 옆에 소스를 조금 덜어주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숫자가 바뀌는 걸 오래 보고 있었습니다. 숟가락 끝에 소스가 매달려 있었고, 저는 그 장면에 영어를 붙이고 싶어졌습니다.

    more, little, stop.

    머릿속에서는 이미 짧은 단어들이 줄을 섰습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바로 꺼내지는 않았습니다. 아이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0g 앞에서 말이 멈춘 시간

    딸은 소스를 뜨기 전에 한참을 멈췄습니다. 숟가락을 들고 있었지만 손목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 침묵을 망설임으로 봤습니다. 영어를 몰라서 그런가,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그런가, 아빠가 먼저 말해줘야 하나. 그런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보고 있으니 달랐습니다. 아이는 멈춰 있는 게 아니라 보고 있었습니다. 저울 숫자, 소스 병 입구, 숟가락 안쪽, 그릇 위치를 번갈아 봤습니다. 말은 없었지만 눈은 바빴습니다.

    저는 그때 또 급해졌습니다. 영어유치원 숙제할 때도 그렇고, 집에서 영어책을 볼 때도 그렇고, 아이가 말이 없으면 괜히 제가 불안해집니다. 지금 뭘 알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질문을 던지고, 단어를 붙이고, 대답을 끌어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날은 0g 숫자가 이상하게 저를 붙잡았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올라가지 않은 숫자처럼, 아이 말도 아직 올라오기 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빠가 먼저 말하지 않은 숟가락

    딸은 숟가락을 아주 조금 기울였습니다. 소스가 한 방울 떨어졌고, 숫자가 바뀌었습니다. 아이는 바로 한 번 더 뜨지 않았습니다. 숫자를 확인하고, 숟가락에 남은 소스를 보고, 다시 그릇을 봤습니다.

    저는 짧게만 물었습니다.

    “More?”

    딸은 대답 대신 숟가락을 다시 병 쪽으로 가져갔습니다. 저는 그걸 대답으로 봤습니다. 영어 문장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선택은 이미 나왔습니다. 더 넣겠다는 손동작이었습니다.

    두 번째 숟가락은 첫 번째보다 적었습니다. 소스가 많이 떨어지지 않게 손목을 세우는 게 보였습니다. 저는 그때 “little”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아주 조금, 조금만, 이런 말을 붙이면 딱 맞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조금 더 기다렸습니다.

    아이가 숟가락을 기울이고 숫자가 다시 바뀐 뒤에야 제가 작게 말했습니다.

    “Little.”

    딸은 저를 보지 않고 저울만 보면서 따라 했습니다.

    “Little.”

    그 한마디가 길게 느껴졌습니다. 발음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자기 손동작 뒤에 말을 붙였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먼저 칠판처럼 단어를 보여준 게 아니라, 소스가 떨어진 뒤에 말이 따라온 느낌이었습니다.

    더 넣을지 멈출지 고르는 얼굴

    숫자가 어느 정도 올라가자 저는 다시 묻고 싶었습니다. 이제 충분하지? 그만할까? 영어로 말해볼까? 그런데 이번에는 선택지만 짧게 뒀습니다.

    “More? Stop?”

    딸은 숟가락을 든 채로 멈췄습니다. 이번에는 제 얼굴을 오래 보지 않았습니다. 저울 숫자를 보고, 그릇 안의 소스를 보고, 자기 숟가락을 봤습니다. 그리고 숟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Stop.”

    짧았습니다. 문장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그날 저녁 식탁에서 제일 분명한 영어였습니다. 누가 시킨 대답이 아니라, 자기가 멈추기로 고른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뒤에 설명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Stop은 멈추다라는 뜻이야. More는 더라는 뜻이야. little은 조금이라는 뜻이야. 이런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삼켰습니다. 이미 아이는 소스 양으로 그 말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날 영어가 많이 나온 건 아닙니다. 길게 말한 것도 아닙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대부분의 시간은 조용했습니다. 숟가락이 움직이고, 숫자가 바뀌고, 아이 눈이 그 숫자를 따라가는 시간이 더 길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 조용한 시간이 나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말을 안 하는 시간이 전부 빈 시간이 아닐 수 있다는 걸 그날 저울 앞에서 봤습니다. 말이 늦게 나와도, 손은 먼저 고르고 있었고 눈은 먼저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아빠 메모

    유아 영어에서 아이가 듣고 이해하는 시간이 말보다 먼저 오는 경우를 침묵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집에서는 그 용어보다 아이가 말하지 않는 시간을 너무 빨리 채우지 않는 쪽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선택권도 거창한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더 넣을지 멈출지 고르는 정도였습니다. 그 작은 선택 앞에서 아이는 긴 문장 대신 짧은 단어 하나를 꺼냈습니다.

    저울 숫자는 잠시 뒤 꺼졌습니다. 딸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소스 그릇을 자기 쪽으로 조금 당겼습니다.

    그릇 가장자리에 소스가 한 방울 묻어 있었습니다. 0g에서 멈춰 있던 화면은 꺼져 있었고, 아이 손은 아직 그릇 옆에 남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