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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보고 있는 아이

    딸은 그 책을 처음부터 영어책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5살 무렵 미녀와 야수 그림책을 펼쳤을 때, 아이가 오래 본 것은 문장이 아니었습니다. 노란 드레스, 성 안의 계단, 등장인물의 얼굴, 촛대처럼 생긴 캐릭터, 반짝이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글자를 봤습니다. 딸은 그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비슷한 드레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서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는 얼굴이라기보다 책 속 사람이 되어보고 싶은 얼굴이었습니다. 그때는 그 시간을 독서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그림만 보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습니다. 아이는 글자를 건너뛴 게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 그 세계에 먼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공연을 보고 온 날 그게 다시 보였습니다.

    뮤지컬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딸은 티켓 반쪽과 배우들과 찍은 사진을 버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냥 기념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종이, 버리기 싫어하는 사진, 그런 정도로 봤습니다.

    집에 와서 그 종이를 어디 둘까 하다가 두꺼운 미녀와 야수 영어책 사이에 끼워두었습니다.

    큰 계획은 없었습니다.

    독서 습관을 만들려고 한 것도 아니고, 영어책을 다시 읽히려고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아이가 버리지 말라던 종이를 잃어버리지 않게 넣어둔 정도였습니다.

    며칠 뒤 딸이 그 책을 다시 펼쳤습니다.

    책 사이에서 티켓이 나왔습니다. 사진도 같이 나왔습니다. 딸은 그걸 보더니 책장을 더 천천히 넘겼습니다.

    그러다 한 장면에서 멈췄습니다.

    “이 장면 무대에서 봤잖아.”

    그 말이 나오자 책의 위치가 달라졌습니다.

    책은 더 이상 책장에 꽂힌 영어책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딸이 실제로 앉아서 봤던 무대와 연결된 입구가 됐습니다.

    문장이 먼저 아이를 끌고 간 게 아니었습니다. 무대 기억이 아이를 다시 책으로 데려왔습니다.

    그 뒤로 아이가 책을 보는 방식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드레스와 성 안의 분위기를 오래 봤습니다. 공연 뒤에는 장면을 찾았습니다.

    여기서 노래했지.

    여기서 불빛이 바뀌었지.

    여기서 배우가 이렇게 움직였지.

    아이는 영어 문장을 해석하기 전에 무대 장면을 먼저 불러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문장 위로 눈이 갔습니다.

    저는 예전 같으면 바로 말했을 겁니다.

    “그림만 보지 말고 글도 봐.”

    그런데 그날은 그 말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아이가 그림만 보고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책과 무대 사이를 오가고 있었습니다. 글자는 그 사이에 있었습니다.

    두꺼운 영어책은 아이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글자가 많고, 페이지도 많고, 모르는 단어도 있습니다. 부모 눈에는 수준이 먼저 보입니다.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너무 어렵지 않을까, 그냥 그림만 보는 건 아닐까.

    하지만 아이 눈에는 다른 순서가 있었습니다.

    먼저 좋아하는 장면.

    그다음 기억나는 노래.

    그다음 배우 얼굴.

    그다음 티켓.

    그다음 책장.

    그리고 아주 늦게 문장.

    저는 이 순서를 자주 거꾸로 만들었습니다. 문장을 먼저 읽히고, 뜻을 확인하고, 그다음 재미를 느끼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재미가 먼저 들어와야 문장 앞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공연 티켓은 그 순서를 바꿔놓았습니다.

    책 사이에 들어간 공연장

    책갈피처럼 끼워둔 종이 한 장이 아이에게 다시 들어갈 수 있는 표시가 된 것 같았습니다. 책을 펼치면 무대가 따라 나왔고, 사진을 보면 배우가 따라 나왔고, 그다음에 영어 문장이 따라왔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캐릭터를 학습 미끼로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미녀와 야수를 좋아하니까 이걸로 영어를 시켜야지, 공연을 봤으니까 관련 영어책을 읽혀야지, 티켓이 있으니까 독후활동을 해야지. 이렇게 가면 아이가 좋아하는 세계가 금방 숙제가 됩니다.

    그건 피하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드레스를 오래 보면 그냥 오래 보게 뒀습니다. 성 안의 계단을 보면 그 계단 이야기를 했습니다. 주인공이 책을 들고 있는 장면에서 멈추면 그 페이지에 같이 머물렀습니다.

    영어책을 공부할 책으로 끌고 오기보다, 아이가 이미 좋아하는 세계 안에 영어책을 두는 쪽이 더 오래 갔습니다.

    공연 뒤 며칠 동안 딸은 그 책을 여러 번 펼쳤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날도 있었고, 한 장면만 보고 닫은 날도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티켓만 다시 꺼내봤고, 어떤 날은 사진을 보다가 책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걸 전부 독서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책으로 돌아오는 길은 분명히 생겼습니다.

    영어책 습관이라는 말을 너무 크게 잡으면 매일 정해진 시간에 앉아 몇 권을 읽는 모습부터 떠올립니다. 그런 습관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책은 시간표보다 기억으로 다시 열립니다.

    그 책은 공연을 보고 온 뒤 그런 책이 됐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 티켓을 기념품 상자에 넣지 않았습니다. 사진첩에도 바로 넣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다시 열었으면 하는 책 안에 넣어뒀습니다.

    맞는 방식인지 매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책에서는 통했습니다.

    이 글을 독서법으로 정리하면 오히려 힘이 빠집니다. 우리 집에서 있었던 일은 방법이 아니라 위치의 문제였습니다.

    티켓을 어디에 두느냐.

    사진을 어디에 끼우느냐.

    아이가 좋아한 장면을 어느 책 안에 다시 넣어두느냐.

    그 작은 위치가 아이를 다시 책으로 부른 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 이걸 습관이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

    습관이라고 하기엔 너무 들쭉날쭉했습니다. 어떤 날은 오래 봤고, 어떤 날은 티켓만 만지다 덮었습니다. 어떤 날은 드레스 장면만 찾았고, 어떤 날은 사진만 보고 끝났습니다.

    그래도 다시 펼친 횟수는 생겼습니다.

    그 정도만 확인했습니다.

    공연이 책을 완전히 바꿨다고 쓰지는 않겠습니다. 티켓 하나가 모든 영어책을 열어준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두꺼운 책 한 권에서는, 티켓을 끼워둔 위치가 아이 손을 한 번 더 부른 건 맞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결론을 내리지 않고 며칠 더 두겠습니다.

    습관인지 아닌지는 다음에 그 책이 다시 열리는 횟수로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