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빠표 영어교육

주말 영어놀이, 져준 아빠

by 아빠표 유아영어 기록 2026. 5. 8.

주말이 되면 우리 집에는 비슷한 장면이 반복됩니다.
평일에 미뤄둔 영어유치원 숙제, 영어책 읽기, 단어 확인, 말하기 연습까지 하나씩 꺼내다 보면 주말도 쉬는 날이라기보다 또 다른 공부 시간처럼 흘러갈 때가 있습니다.

예전 주말의 저는 거의 같은 방식으로 시작했습니다.
책상에 앉히고, 책을 펴고, “이제 영어 해보자”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를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아이 표정이 먼저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또 시작이구나.

아빠가 봐도 매번 비슷했습니다.
똑같은 주말 숙제, 똑같은 공부 유도, 똑같은 말하기 연습. 아이가 지루해하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주말에는 책상 앞에서 바로 시작하지 않고, 조금 다른 방법을 꺼내봤습니다.

영어로만 말하기 놀이

“오늘은 영어로만 말하기 게임 해볼까?”

규칙은 단순했습니다.
정해진 시간 동안 영어로만 말하기, 한국어를 말하면 지는 게임, 대신 아이가 막히면 힌트를 주기였습니다. 너무 힘들어하면 분위기를 풀어주는 것도 처음부터 정했습니다.

중요한 건 아이를 이기려는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영어를 공부처럼 느끼는 시간을, 잠깐이라도 놀이처럼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주말 영어 놀이, 아빠가 판을 깔았다

이런 놀이는 규칙보다 분위기가 먼저였습니다.
아이가 “또 영어야?”라고 느끼는 순간 게임은 시작하기도 전에 끝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러 조금 과장되게 말했습니다.

“English only game, start!”

말은 자신 있게 했지만, 막상 시작하니 저도 살짝 어색했습니다. 평소에는 아이에게 “영어로 말해봐”라고 쉽게 말했는데, 한국어를 쓰지 않고 저도 계속 영어로 이어가려니 생각보다 답답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먼저 가볍게 말을 꺼냈습니다.

“What do you want to do today?”

아이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음… 음…” 하면서 눈을 굴리고, 입은 열었는데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국어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인데, 영어로 바꾸려니 아이 머릿속이 바빠지는 게 보였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제가 바로 답을 알려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날은 조금 기다렸습니다. 아이가 멈춘 시간이 단순히 못하는 시간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영어 표현을 찾는 시간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무작정 기다리지는 않았습니다.
아이의 표정이 굳어지기 전에 짧게 힌트를 줬습니다.

“You can start with ‘I want…’”
“Maybe you can say, ‘Can I have a snack?’”

그러면 아이는 그 말을 붙잡고 다시 문장을 만들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포기하지 않고 영어로 다시 말해보려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아이는 답을 모르는 게 아니라, 말을 꺼낼 발판이 필요했습니다.

일부러 져주자 아이가 살아났다

게임을 하면서 제가 가장 조심한 부분은 아이의 의욕이었습니다.
한국어를 말하면 지는 게임이었지만, 아이가 진짜로 지는 기분을 느끼면 다음에는 다시 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중간중간 제가 일부러 모르는 척을 했습니다.
아이가 아는 물건을 들고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면 아이가 갑자기 신이 나서 저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You don’t know?”

문장이 길거나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 순간 아이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조금 전까지 “음…” 하며 막혀 있던 아이가, 어느새 아빠에게 영어로 설명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 표정을 좋아합니다.
아이가 정답을 맞혔을 때보다, 자기가 무언가를 알려준다고 느낄 때 표정이 훨씬 살아납니다.

부모가 영어를 도와주다 보면 자꾸 확인하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이거 알아?”
“영어로 말해봐.”
“왜 기억 안 나?”

그런데 아이 입장에서는 그 말들이 시험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만큼은 확인하는 아빠가 아니라, 조금 부족한 척하는 아빠가 되기로 했습니다. 아이가 저를 도와주는 구조가 되자 영어 대화의 분위기도 훨씬 부드러워졌습니다.

마지막에는 일부러 제가 지는 흐름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딸이 이겼다고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영어를 많이 말한 날보다, “내가 해냈다”고 느낀 날이 아이 기억에 더 오래 남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약속한 영상보다 오래 남은 말

예전에는 영상물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 걱정이 많았습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영상은 무조건 줄여야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저도 한동안은 안 보여주는 게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다르게 느낀 날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정말 보고 싶어 하던 영상을 끝까지 못 보게 했더니, 자기 전까지 마음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삐친 마음을 달래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무조건 안 보여주는 게 정말 좋은 걸까.
차라리 15분이나 20분 정도 약속한 만큼 보고, 웃으면서 “아빠 고마워” 하고 잠드는 편이 우리 집에는 더 나은 마무리 아닐까.

그래서 주말 영어놀이가 끝난 뒤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디즈니 소피아 시리즈를 1~2편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대신 기준은 분명히 했습니다. 영어놀이를 먼저 하고, 정해진 편수만 보고, 영어 오디오로 보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니 영상이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하는 약속이 되었습니다. 아이도 기다릴 이유가 생겼고, 저도 무조건 막는 부모가 아니라 조절해주는 부모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자기 전에 저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일부러 나 디즈니 소피아 보여주려고 져준 거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조금 놀랐습니다.
아이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왜 모르는 척했는지, 왜 힌트를 줬는지, 왜 마지막에 져줬는지 느끼고 있었습니다.

7살이라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순간에는 딸이 부쩍 커버린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이는 웃으면서 고맙다고 했고, 저는 괜히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그날 알았습니다.
아이에게 남는 것은 영어 문장 몇 개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빠가 자기 편이 되어줬다는 느낌, 막혔을 때 기다려줬다는 기억, 끝에는 웃으면서 이겼다는 경험이 함께 남는 것 같았습니다.

주말 영어놀이는 특별한 준비물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영어책 한 권, 생활 문장 몇 개, 그리고 아이가 막혔을 때 바로 다그치지 않는 태도만 있어도 충분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효과가 있었던 방법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시간을 길게 잡지 않고 10분 정도만 하는 것. 둘째, 아이가 막히면 정답을 바로 말해주기보다 “I want…”처럼 시작 문장을 주는 것. 셋째, 부모가 가끔 모르는 척하며 아이가 설명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오래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10분이나 15분 정도만 해도 아이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어만 쓰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영어를 말해도 괜찮다고 느끼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 경험을 통해 영어를 오래 이어가려면 아이의 의욕을 먼저 지켜야 한다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부모가 매번 이길 필요는 없습니다. 가끔은 일부러 져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아이가 다시 해보고 싶어 하는 영어.
우리 집 주말 영어놀이는 거기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아빠표 유아영어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