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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유치원 상담을 다녀온 날, 딸은 차 안에서 체험수업 때 들은 영어 노래를 흥얼거렸다.

    상담도 나쁘지 않았다. 원어민 수업, 리딩 프로그램, 발표 활동, 차량 운행까지 설명을 듣고 나오니 마음이 어느 정도 기울었다.

    아이도 즐거워 보였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상담지를 식탁에 놓고, 그 옆에 아내의 비행스케줄표를 펼쳤다.

    그때부터 영어유치원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상담지에서는 보이지 않던 시간이 비행스케줄표에는 있었다.

    엄마가 비행으로 집에 없는 날.

    내가 김해 일정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날.

    장모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날.

    등원 준비부터 하원 뒤 저녁까지 누가 아이 옆에 있을지 바로 정해지지 않는 시간이 있었다.

    영어유치원을 고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식탁에서는 우리 가족 시간표를 맞추는 일이 돼 있었다.

    원비를 적다가 사람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상담을 받을 때는 원비부터 계산했다.

    수업료가 얼마인지, 차량비가 얼마나 드는지, 추가로 들어갈 돈은 무엇인지 보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집에서 다시 계산할 때는 돈 옆에 사람이 붙었다.

    아침에는 누가 준비시킬까.

    하원 시간에는 누가 받을까.

    엄마가 비행 중이고 내가 늦는 날에는 장모님이 가능한가.

    저녁에 숙제가 있다면 몇 시부터 봐줄 수 있을까.

    이걸 하나씩 맞춰보니 원비는 오히려 계산하기 쉬운 항목이었다.

    금액은 안내문에 적혀 있었다.

    그런데 저녁 일곱 시에 누가 아이 옆에 있을지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나는 영어유치원에 아이만 보내는 줄 알았다.

    막상 일정을 펼쳐보니 부모와 할머니 시간까지 같이 움직여야 했다.

    좋아 보이는 영어유치원과 우리 집이 다닐 수 있는 영어유치원은 달랐다

    상담지를 다시 보면 좋아 보이는 항목이 많았다.

    원어민 선생님도 있었고, 리딩도 있었고, 발표 활동도 있었다.

    체험수업을 마친 딸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그날은 그것만으로 바로 결정하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는 아내의 비행 일정이 매주 같지 않았고, 나도 김해 쪽 일정 때문에 퇴근 시간이 달라질 때가 있었다.

    장모님 도움도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확인해야 했던 건 프로그램 하나가 더 좋으냐가 아니었다.

    이 생활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실제로 누가 굴릴 수 있느냐였다.

    상담할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아침 차량 시간에 맞출 수 있는가.

    하원 뒤 아이를 받을 사람이 있는가.

    숙제가 있는 날에도 가족 일정이 계속 돌아가는가.

    한두 번이 아니라 매주 반복할 수 있는가.

    그날부터 나는 영어유치원을 볼 때 프로그램표만 보지 않게 됐다.

    좋은 곳인지와 우리 집이 계속 다닐 수 있는 곳인지는 같은 질문이 아니었다.

    상담지보다 오래 본 건 비행스케줄표였다

    그날 바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상담지를 옆에 두고 아내 비행스케줄을 다시 봤다.

    내 김해 일정도 같이 놓았다.

    장모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날도 생각했다.

    상담지에는 영어교육에 관한 설명이 빼곡했지만, 실제 등록을 결정하려면 그 밖의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다.

    아이 영어가 좋아질지를 미리 계산하는 건 어려웠다.

    대신 우리 가족이 매일 아침과 저녁을 감당할 수 있는지는 어느 정도 계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누가 영어유치원을 보내기 전에 무엇을 봤냐고 묻는다면 원비부터 이야기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상담지 옆에 가족 일정표부터 한 번 놓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집에서는 그 두 장을 같이 펼치고 나서야 영어유치원이 교육기관이 아니라 매일 반복해야 하는 생활로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