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장에 hologram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아이 눈은 단어보다 제 손에 들린 투명 비닐을 따라갔습니다. 사전에는 분명 뜻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곱 살 아이에게 “홀로그램은 빛으로 만든 입체 영상”이라고 말해도 표정이 밝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입체’도 ‘영상’도, 홀로그램만큼이나 또 다른 어려운 단어였으니까요.그래서 사전을 덮었습니다. 냉장고 옆에 있던 투명 비닐을 조명 아래로 가져와 아이 손에 쥐여줬습니다. 아이는 단어를 보기 전에 비닐 위의 반짝임을 먼저 봤습니다.비닐을 기울이자 아이가 먼저 물었습니다비닐을 살짝 기울이자 빛이 흔들렸습니다. 아이는 손끝으로 비닐을 건드리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습니다. 비닐은 손에 잡히는데, 그 위에서 흔들리는 빛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진짜야?” 하고 묻..
호주 공항에서 아이가 제 뒤가 아니라 직원 쪽으로 몸을 돌린 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짐 하나와 커피를 들고 있었고, 아이는 자기 작은 가방을 앞으로 끌어당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이가 저를 보지 않고 직원 쪽을 봤습니다. 짐이 괜찮은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잠깐 쉴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알고 싶은 얼굴이었습니다.영어 문장이 완벽해서 놀란 건 아니었습니다. 문법이 정확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낯선 공항에서 자기 하루를 확인하려는 방향이 제 쪽이 아니라 바깥쪽으로 향한 게 먼저 보였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잠깐 생각했습니다. 이 아이가 언젠가 해외에서 공부할 수도 있겠구나.그런데 그 생각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설렘 뒤에 바로 다른 장면들이 따라왔습니다. 짐을 잃어버렸을 때, 배가 아플 때, 친구 말이 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