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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딸이 영어로 혼잣말을 했다. 화가 난 채로. 내용은 못 알아들었다. 무슨 영상에서 본 표현인지 모르겠는데, 누가 봐도 화내면서 중얼거리는 영어였다. 아내가 오랜만에 비행을 마치고 부산에 와 있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나도 더웠고 회사에서 실적으로 한소리 들었고, 딸은 딸대로 숙제와 시험 때문에 혼이 났다. 집 안에 쏴한 기운이 돌았고, 우리 셋은 각자 화가 나 있었다. 아이라고 매일 행복하고 기분 좋게만 보내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 날이 아니었다.

    화난 날, 짜증도 영어로

    혼잣말은 방 쪽에서 들려왔다. 중얼중얼 이어지는데 한국어가 하나도 안 섞여 있었다. 내가 아내를 쳐다봤다. 어쭈, 이제 짜증도 영어로 내냐. 속으로 그 말이 먼저 나왔다.

    아내가 물었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딸 잘못한 걸 바로잡아 주려고 한 말이었고, 어디서 배운 버릇이냐는 말도 붙었다. 그런데 딸은 한국말로 안 돌아왔다. 계속 영어로 버텼다.

    버티는 방식이 이상했다. 짜증을 내는 게 아니라 어디에 빙의된 것 같았다. 어떤 캐릭터를 흉내 내는 것처럼 목소리와 억양이 자기 것이 아니었다. 나중에 아이한테 물어봤는데 답을 안 해줬다. 그냥 자기 마음이라고 했고, 말 안 해주고 싶다고 했다. 영어책인지 디즈니 영상인지 유튜브 과학 영상인지 학원 패드 전자책인지, 어디서 나온 캐릭터인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어디서 통째로 가져온 대사인지, 그냥 자기가 지어낸 말인지도 구분이 안 됐다. 아이가 하루에 듣는 영어가 워낙 여러 군데서 들어오니 출처를 찾는 게 불가능했다.

    엄마가 오랜만에 왔으니 그날은 좋게 보내고 싶었을 거다. 그런데 학원 숙제든 뭐든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건 있고, 시험도 못 쳐서 혼이 났으니 딸 입장에서도 억울했을 거다. 그 억울함이 한국말로 안 나오고 영어로 나왔다.

    그 순간 확실했던 건 하나다. 딸은 화가 났을 때 영어를 골랐다. 고른 게 아니라 그게 먼저 나왔다는 쪽이 맞겠다. 혼나는 자리에서 자기를 지키려고 꺼낸 언어가 영어였다. 한국말로 하면 우리한테 바로 잡히니까, 우리가 못 알아듣는 쪽으로 도망간 것일 수도 있다.

    새벽 잠꼬대도 영어, 몸에 들어온 거다

    그날 밤 아내와 둘이 그 얘기를 했다. 이제 짜증도 영어로 낸다면서.

    생각해 보니 처음이 아니었다. 예전에 새벽에 아이가 꿈을 꾸는지 잠꼬대를 하는데 그것도 영어였다. 그때는 그냥 신기하고 말았다. 유치원에서 하루 종일 영어를 쓰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화를 내는 자리에서까지 영어가 먼저 나오는 걸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잠꼬대는 의식이 없을 때고, 화를 낼 때는 감정이 앞설 때다. 둘 다 아이가 언어를 고를 겨를이 없는 순간이다. 그 두 자리에서 영어가 나온다는 건, 영어가 배운 과목이 아니라 몸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수업 시간에 잘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시험 점수나 레벨표에는 이런 게 안 나온다. 나는 그날 딸의 영어를 처음으로 성적이 아닌 자리에서 확인했다.

    기분이 묘했다. 삼 년 동안 그렇게 바라던 게 이건데, 막상 확인한 자리가 딸이 화가 나서 나한테 등을 돌린 순간이었다. 영어가 늘었다고 좋아해야 하는 건지, 아이가 저렇게까지 화가 났다는 걸 먼저 봐야 하는 건지 그날은 정리가 안 됐다.

    손잡고 차근차근, 웃음은 참고

    손잡고 딸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왜 혼냈는지.

     

    솔직히 웃음이 나올 뻔했다. 화를 내는데 영어로 내는 게 어이없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참았다. 우리 아이 성격에 거기서 웃으면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을 거다. 자기가 진지한데 부모가 웃으면 그건 무시당한 거니까.

    분위기를 갑자기 바꾸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내랑 나랑 눈짓으로 호흡을 맞췄다. 차근차근 풀어가기로. 조금 두었다가 아이를 다시 불렀다. 차분하게 불렀다.

    손을 잡고 얘기했다. 우리 집 상황이 어땠는지, 딸이 어떤 부분에서 잘못해서 혼이 났는지, 그러고 나서 딸이 어떻게 했는지. 잘못한 부분은 정확히 짚어줬다. 다만 이번에는 혼내는 말투가 아니라 아이 반응을 살펴가며 설명했다. 무조건 부모가 먼저 사과하지는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끌려가지 않기로 했다. 일곱 살은 참 어리지만 그래도 알려는 줬다.

    그때쯤 딸은 한국말로 돌아와 있었다. 아이도 분위기를 읽을 줄 아는 것 같았다. 다만 아직 화가 안 풀렸다는 건 눈빛과 입 모양으로 다 알 수 있었다. 대답은 하는데 입술이 앞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자 딸이 울면서 말했다. 피곤했고 답답했다고. 그리고 너무 보고 싶은 영상이 있는데 엄마가 있으면 못 보니까 답답했다고.

    나는 충분히 이해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그건 안 된다고 다시 다그쳤다. 아내는 아이 학업에 냉정한 편이고, 우리 둘은 이런 지점에서 자주 갈린다. 나는 그 중간에서 참 애매하다. 그래도 어쩌겠나. 풀어나가야지.

    아이고, 결국 아이를 못 이기겠더라. 할 거 다시 하고 오답 노트 하고 숙제 다시 하자고 했는데, 딸이 이번만큼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먼저 하고 나서 하겠다고 했다. 약속은 지키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해줬다. 순서만 바꾸는 거니까 못 들어줄 것도 없었고, 무엇보다 그 말을 하는 얼굴이 아까와 달랐다. 떼를 쓰는 게 아니라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알고 말하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딸은 그날 약속을 지켰다.

    냉전은 하루도 안 갔다. 우리 집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잠자기 전에는 푼다. 그게 우리 집 규칙이고, 그날도 풀고 잤다. 딸이 영어로 버틴 게 나는 기특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날 진짜 중요했던 건 언어가 아니었다. 화가 난 일곱 살이 자기 조건을 걸고 협상을 했다는 것,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켰다는 것이다. 다음에 또 이런 날이 오면 나는 먼저 묻기로 했다. 뭐가 제일 답답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