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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표 영어교육

아빠 왜 혼자 일본어 공부해, 미워

아빠표 유아영어 기록 2026. 8. 15. 11:36

목차


    "아빠! 왜 혼자 일본어 공부해? 미원!"

    고독한 미식가를 몇 초 본 딸이 한 말이다. 내가 먹는 걸 좋아해서 알고리즘에 걸렸는지 유튜브에 그게 떴고, 나는 몇 초 봤을 뿐인데 딸이 옆에서 그걸 봤다. 억울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는데, 듣고 보니 딸 입장에서는 그럴 만했다. 일본어를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내가 엄마랑 상의해보겠다고만 하고 답을 제대로 안 줬으니까. 그래놓고 아빠 혼자 일본어를 공부하는 걸로 보였으면 미울 만하다. 딸이 일본어를 하고 싶다고 한 건 그로부터 며칠 전이었다.

    짱구 과자와 아리가또, 일본어의 시작

    7월부터 매주 토요일 아침에 50분씩 미국인 원어민 선생님 수업을 한다. 그 선생님이 평일에 남편과 오키나와를 다녀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딸 주려고 짱구 과자와 도라에몽 과자를 사 왔다.

    선생님이 과자를 건네면서 알려줬다. 이럴 때는 일본어로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하는 거야. 딸이 따라 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어느 포인트였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때부터 깔깔깔 웃음이 넘쳐났다. 나는 옆방에서 듣고 있다가 괜히 같이 웃었다. 미국인 선생님이 일본말을 하는 게 신기했나 보다. 영어를 알려주는 사람 입에서 다른 나라 말이 나온 게 딸한테는 사건이었던 모양이다.

    그날 아침 분위기 자체가 좋았다. 원어민 수업도 원래 좋아하는데, 거기다 선생님이 일본에서 자기 주려고 뭘 사 왔다니까 신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그것도 짱구와 도라에몽이 그려진 과자였다. 엄마도 늘 외국을 다니지만 그런 과자는 처음 봤다.

    수업이 끝나고 딸이 나와 아내한테 말했다. 자기가 일본어를 배우고 싶단다. 너무 웃기고 재밌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진짜 일곱 살은 언어의 문이 열리는 시기인가. 과자 한 봉지와 인사말 하나로 새 언어에 문을 여는 게 가능하구나 싶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고독한 미식가 사건이 터진 거다. 나는 설명해줬다. 이거 일본어 공부 아니야, 일본 아저씨가 맛있는 음식 먹는 영상이야, 아빠 일본어 잘 몰라. 그랬더니 딸이 여기에서도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들었다고 했다. 몇 초짜리 영상에서 그걸 잡아낸 거다. 기억력이 좋은 건지 일본어에 관심이 정말 많은 건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냥 지나가는 관심은 아니었다.

     

    일본 방송 프로그램인 '고독한 미식가' 영상을 잠깐 보고 있는 아빠

    화교학교 한 달, 중국어 실력

    지금 우리 딸 상황을 적어보면 이렇다. 6월 말일까지 영어유치원을 다니다 졸업했고, 7월 한 달은 부산에 있는 화교학교에서 입학 전 특강으로 중국어 기초를 배웠다. 8월은 방학이라 학교에 안 가고 학원만 다니고 있고, 8월 18일 화요일이 정식 입학하는 날이다.

    일반 학교도 아니고 사립학교도 아니고 화교학교다. 정말 특이한 케이스인데, 중국어를 습득시키려고 보내는 학교다.

    중국어는 고작 한 달 기초만 배웠는데 중국어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오 잘한다 소리가 나올 정도다. 당연히 기초 수준이지만 말하고 쓰는 게 된다. 하루 종일 중국어를 노래하고 다닌다.

    더 재밌는 건 중국어를 영어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한국어를 거치지 않고 바로 영어로 넘어간다. 영어는 지금 딸이 제일 쉬워하는 언어다. 그걸 보면 영유는 진짜 잘 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지금이 좀 애매한 시기다. 유치원은 끝났고 학교는 아직 시작 안 했고, 8월 한 달이 통째로 비어 있다. 그 자리를 학원으로 채워놓은 상태다. 그래서 일본어 이야기가 나왔을 때 더 난감했다. 지금 당장은 자리가 있어 보이는데, 학교가 시작되면 그 자리가 없어진다는 걸 아니까.

    영어 수학 중국어 펜싱에 일본어까지, 등골이

    그래서 일본어를 시킬 거냐고 하면, 당장 결론을 낼 수가 없다.

    지금 스케줄이 정말 빡빡하다. 맞벌이라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돌아가면서 학교 픽업, 학원 픽업을 해주신다. 영어학원, 수학, 중국어, 펜싱, 원어민 수업, 본인이 좋아하는 영어 독서, 오르다가베, 영어책 읽는 학원.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아이가 참 많이 하네 싶다. 어떻게 다 소화하나 모르겠다. 여기에 일본어까지 넣으려면 학원이든 과외든 다시 알아봐야 하는데, 아이고 등골이야.

    학원비는 지금도 아내와 각각 다른 카드로 나눠서 결제하고 있다. 정말 우리 노후 어떡하나 싶다.

    그런데 돈보다 더 걸리는 게 있다. 아이가 소화를 해낼까 하는 것. 그리고 괜히 하나 더 추가했다가 전부 수박 겉핥기식으로 바뀌어 버리면 어쩌나 하는 것. 셋 다 어중간해지는 게 제일 무섭다.

    픽업 문제도 있다. 하나가 늘면 그 시간에 누군가는 차를 몰아야 하는데, 우리 부부가 아니라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움직이시게 된다. 아이 하나 더 시키자고 어른들 일정을 또 흔드는 게 맞나 싶은 마음도 있다.

    그래도 이번 일본어는 앞의 둘과 다르다. 영어는 아내와 내가 돈과 아이의 영어 습득을 놓고 고심 끝에 정한 거다. 중국어도 아내가 비행으로 해외를 자주 다니면서 중국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느낀 것, 그리고 장인어른이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퇴임하시고 여러 루트로 알아봐 주신 것에서 나왔다. 그 화교학교가 중국어는 둘째 치고 예의를 중요시한다는 말이 컸다.

    그러니까 영어와 중국어는 부모의 욕심이다. 아이가 잘되라고 우리가 정해서 시킨 거다. 그런데 일본어는 아이가 하고 싶단다. 스스로 재미있는 포인트를 찾았고, 스스로 배워야겠다고 했다. 아이가 자기 입으로 언어를 하나 고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게 자꾸 마음에 걸린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정하면 딸이 따라왔는데, 이번에는 딸이 먼저 손을 들었다. 여기서 안 된다고 하면 다음에는 손을 안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나온 결론은 이렇다. 일단 중국어 1년을 채운다. 8월에 학교가 시작되면 거기부터 자리를 잡는 게 먼저다. 영어와 중국어를 능통하게 할 때까지 가고, 그다음에 일본어다.

    아내도 지금 머리 아파한다. 스케줄 맞추는 것만으로도 여기까지 오는 데 정말 힘들었으니까. 그래도 아이가 스스로 고른 거라 우리 둘 다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미루지 않고 아이한테 고스란히 전해줬다. 일본어까지 하면 아빠도 엄마도 너무너무 좋겠다고. 일본어는 우리 딸이 먼저 배우고 싶다고 말한 거니까 어떻게 해서든 꼭 배우게 해주겠다고. 다만 화교학교는 다녀야 하니까 중국어로 딱 1학년을 마치고, 그다음에 일본어 학원이든 미국인 원어민 선생님처럼 일본인 선생님을 집으로 불러주겠다고 했다.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약속하고 도장까지, 엄마랑 한 번 아빠랑 한 번 각각 했다. 내 폰으로 사진도 찍어뒀다.

    그랬더니 딸이 이렇게 말했다. 1학년 끝났는데 일본어 안 배우게 하면 중국어랑 영어 다 까먹을 거라고. 협박인지 다짐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웃음이 터졌다. 이 정도로 걸어놨으면 나는 지킬 수밖에 없다. 일 년 뒤에 등골이 휘어도 시켜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