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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패드 숙제를 할 때면 저는 딸 옆에 앉습니다. 본문을 읽고 객관식 세 문제를 푸는 숙제인데, 화면을 잘못 누르면 점수에 바로 반영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문제를 제대로 읽는지, 답을 고르기 전에 엉뚱한 곳을 누르지는 않는지 화면을 유심히 봅니다.
그런데 이날 딸의 영어 숙제를 멈춘 것은 패드 안의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화면 옆에 있던 간식을 허락도 받지 않고 집어 든 제 손이었습니다.

지우개와 연필 아래 있던 고구마쫀득이
패드 옆에는 딸이 편의점에서 직접 고른 고구마쫀득이가 놓여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보면 추억의 불량식품이라고 부를 만한 간식이었습니다.
딸은 한꺼번에 먹지 않고 아껴 먹고 있었습니다. 간식 위에는 지우개와 연필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배가 고파 무심코 고구마쫀득이를 먼저 입에 넣었습니다.
딸의 반응은 바로 나왔습니다.
“중국어도 이제 안 가르쳐줄 거야.”
저를 보며 메롱을 하고, “흥” 소리를 내며 팔짱을 꼈습니다. 고개까지 반대쪽으로 돌렸습니다. 조금 전까지 패드를 만지던 손도 멈췄습니다.
딸은 지우개와 연필이 먹지 말라는 표시였다고 직접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간식을 먹은 뒤 나온 반응을 보고, 저는 그 물건들이 아껴둔 간식 위에 해놓은 딸만의 표시였다고 짐작했습니다.
저는 문제를 잘못 누를까 봐 화면만 보고 있었습니다. 정작 화면 바로 옆에 놓인 딸의 표시는 보지 못했습니다.
미안하다고 했지만 패드를 바로 잡지는 않았습니다
저도 곧바로 아차 싶었습니다.
“아이고, 미안해 우리 딸. 아빠가 허락도 안 받고 먹었네. 이건 정말 잘못했네.”
한 번 말하고 끝내지 않았습니다. 같은 뜻으로 두세 번 사과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말해주면 딸의 표정도 조금씩 풀리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사과가 끝나자마자 다시 영어 패드 숙제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딸은 마음이 상한 뒤에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한 번 하고 나서야 다시 손을 움직일 때가 많습니다. 영상을 조금 보거나 아빠와 인형놀이를 하고 난 뒤에야 숙제로 돌아오는 식입니다.
이날 딸이 원한 것은 영상이었습니다.
10분만 생각했던 영상이 30분이 됐습니다
저는 처음에 10분 정도만 보여줄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딸이 보기 시작한 것은 30분짜리 영상 한 편이었습니다.
중간에 끊으면 다시 고개를 돌리고 숙제에서 멀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딸이 직접 말한 것이 아니라, 당시 제가 그렇게 판단한 것입니다.
결국 한 편을 끝까지 보게 했습니다. 숙제를 다시 시작시키려고 영상을 틀었는데, 숙제할 시간은 오히려 30분 줄어들었습니다.
영상이 끝나자 딸은 다음 편 앞부분만 조금 더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여기까지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딸은 잠시 아쉬워했지만 “알겠어”라고 말하며 다시 패드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영상 한 편이 모든 아이의 마음을 풀어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30분을 보여주는 것이 좋은 숙제 습관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날의 30분은 제가 저지른 실수 뒤에 선택한 우리 집의 복귀 과정이었습니다. 사과만 받고 바로 숙제하라고 했다면 딸은 다시 앉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손만 움직이고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부분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숙제가 멈추면 문제보다 직전 몇 분을 봅니다
아이의 손이 멈추면 부모는 문제부터 봅니다. 단어를 모르는지, 지문이 어려운지, 집중력이 떨어졌는지 확인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영어 문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원인이 화면 안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피곤해서 더 하기 어려운 밤에 숙제를 어디까지 이어갈지는 영어유치원 숙제 밤 10시까지 해야 할까에 따로 적었습니다. 이날은 아이가 지쳐서 멈춘 경우와 달랐습니다. 제가 건드린 일을 먼저 풀어야 했습니다.
이번 일을 다시 적어보니 확인할 순서가 분명해졌습니다.
왜 숙제를 하지 않느냐고 묻기 전에, 아이의 손이 멈추기 직전 몇 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어보는 것입니다. 특히 부모가 아이의 물건을 건드렸거나, 아이가 싫다는 신호를 지나치지는 않았는지부터 살펴야 합니다.
그날 패드에는 본문과 객관식 세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딸이 풀기 어려웠던 것은 그 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를 잘못 누르지 않도록 옆에 앉아 있던 아빠가, 화면 옆에 있던 딸의 표시를 먼저 잘못 건드렸습니다.
다음에 딸의 손이 다시 멈춘다면 저는 곧바로 숙제 거부라고 판단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화면 안의 정답을 찾기 전에, 화면 밖에서 직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확인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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