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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을 안아줬더니 눈물이 터졌다. 아까 혼날 때 이미 실컷 울었는데, 내 품에 들어오자마자 다시 무너졌다. 그날 엘리베이터에서 아내 지인 가족을 만났고, 우리 딸은 끝까지 제대로 인사를 안 했다. 집에 와서 아내한테 단단히 혼났고, 나는 이번만큼은 아내 말이 맞다고 생각해서 빠져 있었다. 3년 동안 영어는 그렇게 챙겼으면서 인사는 한 번도 제대로 가르친 적이 없다는 걸 그날 알았다.

    엘리베이터 인사, 뒤로 숨은 날

    엘리베이터에 아내가 아는 가족이 같이 탔다. 부부와 아이 하나였는데 그 아이가 우리 딸보다 동생이었다.

    그 동생이 인사를 너무 잘했다. 우리 딸한테도 누나 안녕, 하고 반갑게 인사하는 거다. 그런데 우리 딸은 그냥 멀뚱멀뚱 서 있었다.

    아내가 아이 머리를 만지면서 인사를 시켰다. 동생한테도 인사해줘, 하니까 딸이 그냥 내 뒤로 숨어버렸다. 아내가 많이 당황한 것 같았다. 인사성 없는 아이로 보일까 봐.

    헤어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동생은 또 인사를 참 잘했고, 우리 딸은 끝까지 제대로 안 했다. 그렇게 집으로 왔다.

    집에 오자마자 아내가 엄청 혼냈다. 영어 잘하고 수학 잘하고 공부 다 잘해도 소용없다고. 인사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아이가 뭘 하겠냐고. 아이가 엄청 울었는데도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뭐라고 했다.

    사실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다. 전에는 말로 살살 혼내고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내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단다. 이렇게 공부만 해봐야 나중에 사람답지 못한 아이가 되면 그게 더 문제라고. 그래서 소리치고 정말 세게 뭐라고 했다.

    나는 빠져 있었다. 평소 같으면 중간에서 한마디 했을 텐데 이번만큼은 아내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솔직히 나도 좀 놀랐다. 그 동생이 몇 살인지도 모르겠는데 우리 딸보다 어렸다. 그 아이는 처음 보는 누나한테도 인사가 그냥 나왔다. 우리 딸은 영어로는 처음 보는 외국인 아이한테도 말을 걸어본 적이 있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한국말 한마디를 못 했다.

    안아주자마자 터진 눈물

    인사 제대로 안한다고 엄마한테 혼난 딸

    한참 지나서 내가 따로 갔다. 딸을 안아주면서 다시 얘기해주려고 했다.

    그런데 안아주자마자 눈물이 터져버렸다. 아까 혼날 때 운 것과는 다른 울음이었다.

    너무 억울했단다. 자기는 부끄러워서 인사를 못 한 건데. 그래도 작게라도 인사는 했는데.

    그래서 맞다고 해줬다. 우리 딸 부끄러워서 제대로 못 한 거지, 인사를 안 한 게 아니라고. 그렇게 맞장구를 쳐줬다.

    그리고 한 번 더 타일러서 말했다. 딸아, 이건 엄마 말이 맞아. 영어, 수학, 다른 공부 다 잘해도 인사 하나 제대로 못 하는 건 잘못된 거야. 그러고 나서 미안하다고도 했다. 아빠가 우리 딸을 데리고 다른 친구네 가족도 자주 만나고 그래야 하는데 그렇게 못 해서 미안하다고. 이런 걸 많이 못 알려줘서 미안하다고.

    그러니까 마음이 좀 풀렸는지 딸이 아빠 말이 맞단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는 자기가 아는 사람만 인사해야 안 부끄럽다고. 모르는 사람은 마음이 부끄러워서 인사가 잘 안 된다고.

    그 말을 듣고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사회성을 키울 상황과 환경을 안 만들어줬는데 어떻게 아이가 책에 나오는 걸로 그걸 다 배우겠나.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알려줄 건 알려줬지만, 속으로는 계속 그 생각이 남았다.

    아는 사람만 인사해야 안 부끄럽다는 건, 뒤집어 보면 딸이 아는 사람이 몇 명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치원 선생님, 같은 반 친구들, 학원 선생님, 우리 가족. 그게 거의 전부다. 3년 동안 딸이 만난 사람 목록을 짜보면 그렇게 짧다.

    돌아가도 또 했을 것 같다, 그래도

    지난 3년을 돌이켜보면 다 영어고 숙제고 수학이고 과학이고 학원이었다. 어디 날 잡아서 놀러 가려고 하면 하루 이틀을 버리는 것 같아서 참고 그냥 집에 있었다. 아내가 한 번씩 영어유치원 친구네랑 시간을 맞춰 놀긴 했지만 정말 손에 꼽는 날뿐이었다.

    얼마 전에 정말 오랜만에 워터파크를 갔다. 그때 딸 웃음이 순수 결정체였다. 나도 그 얼굴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펜싱도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에 흠뻑 젖도록 한다. 그런 걸 보면 여기저기 더 못 데리고 다닌 게 후회된다.

    그런데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나는 지금처럼 또 했을 것 같다.

    6살 초반에 이런 일이 있었다. 쉬라고 했더니 딸이 장난감이나 공주 옷 대신에 영어책을 집어 들고 소파에서 읽었다. 나는 속으로 놀랐지만 겉으로는 안 놀란 척했다. 아이가 부끄러워할 수도 있으니까. 나중에 왜 쉬는 시간에 책을 읽었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도 그때 손이 책으로 갔다고 했다. 그냥 주위에 책만 있었다고.

    그날 아내도 놀랐다. 이렇게 빨리 아이가 스스로 책을 잡을 줄은 몰랐다면서. 그러면서도 혹시 그림만 보는 거 아니냐고 했다. 아내가 스윽 옆에 가서 뭐 재밌는 거 보냐고 물었는데 대답도 없이 집중하더라. 그림 보고 있었냐고 하니까 그림도 보고 리딩도 하고 있단다. 그러고는 다시 자기 책으로 돌아갔다.

    그 장면 하나 보려고 3년을 그렇게 산 건 아니지만, 그런 날이 있었으니까 또 하겠다는 거다.

    나는 딸의 영어를 3년째 기록하고 있다. 5살에 영어유치원 들어가기 전에는 기록이랄 것도 없었다. 그냥 좋다는 건 다 시켜보고 보여주고 해보는, 흔한 아빠 엄마였다. 그러다 5살부터는 나름 체계적인 게 필요하겠다 싶었다. 목표도 정했다. 영어책 읽는 아이로 만들자.

    기록을 해두니까 생각이 선명하다. 아 그때 아이가 그랬었지, 하면서 떠오른다. 그리고 딸과 대화할 때도 그 기간에 있었던 일은 웬만하면 내가 다 적어뒀으니까,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해본 적이 없다. 대화가 쭉 이어진다.

    훗날 우리 아이한테 이 기록들을 보여줄 것이다. 그게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몇 년 뒤가 될지는 모르겠다. 아빠가 이렇게 다 적어놨다고, 그래서 네가 영어를 잘하게 된 거라고 자랑하듯 말해야지.

    사실 아이도 대충은 아는 것 같다. 내가 시간 날 때마다 노트북을 펴고 자기 기록을 쓰는 걸 지나가면서 봤기 때문이다. 사진도 봤을 거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인사 못 한 날 이야기도 같이 보게 되겠지. 그때는 이 날도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