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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표 영어교육

엄마 비행가방은 딸의 보물창고

by 아빠표 유아영어 기록 2026. 6. 15.

우리 집은 보통 집과 조금 다릅니다. 흔히 아이는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데, 우리 딸은 아빠인 저와 보내는 시간이 훨씬 길어요. 아내가 승무원이라 며칠씩 비행을 나가니까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제가 거의 보통 집 엄마 역할까지 하고 있습니다. 밥 먹이고, 씻기고, 영어유치원 숙제를 챙기고, 재우는 일이 대부분 제 몫이에요. 원 준비물을 챙기고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일까지 거의 제가 합니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이제는 이게 우리 집의 보통이 됐습니다.

아내는 그게 늘 마음에 걸리나 봅니다. 다른 집과 달리 딸이 엄마 얼굴을 며칠씩 못 보고, 외국으로 비행을 나가 있는 동안 서로 또 얼마나 보고 싶을까. 그 미안함을 아내는 가방으로 채웁니다. 비행을 갈 때마다 딸을 위한 선물을, 작든 크든 꼭 하나는 사 와요. 그 나라에서 제일 인기 있는 먹거리, 그 나라에만 있는 물건들. 딸은 가보지도 않은 나라의 과자를 맛보고, 냉장고엔 나라마다 자석이 하나씩 늘었습니다. 두바이 초콜릿이 유행하기 한참 전에 아내는 이미 피스타치오 초콜릿을 들고 왔어요. 신기하게도 아내가 들고 오는 것들은 늘 유행을 한발 앞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엄마 비행가방은 그냥 가방이 아닙니다. 아이는 그걸 “보물창고”라고 불러요. 엄마가 돌아온 날이면 가방을 열어 안을 다 헤집습니다. 정말 없는 게 없거든요. 색도 크기도 제각각인 처음 보는 나라 지폐,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 들여다보는 낯선 동전, 외국 건물이 그려진 자석, 그리고 인형. 우리 집엔 인형이 정말 많은데 대부분 그렇게 들어온 것들입니다. 하와이에서 온 모아나 인형, 호주에서 온 캥거루 인형. 딸은 그것들을 거실 바닥에 늘어놓고 한참을 들여다보곤 해요. 나라 이름은 몰라도, 아이에겐 인형마다 엄마가 다녀온 어딘가가 담겨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딸이 세계를 처음 만나는 자리는 교재가 아니라 그 가방이었습니다. 영어유치원에서 단어로만 배우던 kangaroo가, 호주에서 온 진짜 인형이 되어 손에 들어옵니다. 플래시카드에서 본 kangaroo와, 손에 쥐고 자는 캥거루 인형은 아이에게 같은 단어가 아니었어요. Moana라는 이름도, 하와이라는 곳도 그 인형과 함께 집에 들어왔고요. 지폐에 적힌 낯선 글자, 자석에 그려진 외국 건물. 책상 앞이었다면 그냥 지나갔을 것들이, 엄마가 들고 온 물건이라 아이 손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누가 가르친 게 아니라, 엄마의 비행이 집 안에 세계를 한 줌씩 풀어놓은 셈이에요.

그런데 솔직히 마음 한쪽이 걸리는 장면도 있습니다. 아내가 무거운 비행가방을 끌고 현관에 들어서면, 딸의 첫마디가 “엄마, 뭐 사왔어?”예요. 며칠 만에 보는 엄마인데, 보고 싶었다는 말보다 가방이 먼저입니다. 그 말에 아내는 잠깐 서운한 얼굴을 하다가도, 이내 체념하듯 웃으며 가방을 열어줍니다. 옆에서 보는 저도 마음이 좀 그래요. 아이를 탓할 수야 없지만, 며칠을 날아온 사람한테 건네는 첫인사치고는 아내가 속상하겠다 싶어서요.

그래서 저는 더, 더 밀착해서 아이를 챙깁니다. 엄마 자리가 비는 동안 아이가 너무 허전하지 않게, 그리고 엄마가 돌아왔을 때 그 마음이 엄마에게도 가닿게요. 엄마 흉을 대신 봐주거나 억지로 “엄마 보고 싶었지?”를 시키지는 않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곁에 더 오래 있어 주는 정도예요. 그 시간이 쌓이면 엄마가 없는 며칠도 아이에게 너무 길지는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다만 요즘은 “뭐 사왔어”라는 그 첫마디를 조금 다르게 듣게 됩니다. 아이가 정말 엄마보다 선물을 더 좋아해서 그 말을 먼저 하는 걸까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엄마가 며칠씩 집을 비우는 동안, 그 보물창고가 아이에게는 엄마가 멀리서 보내온 편지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세계 곳곳에서 골라 담은, 아이는 아직 말로 다 못 푸는 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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