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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유치원에 다니던 딸은 집에서 저와 영어책을 읽을 때와 사람들 앞에 설 때의 모습이 달랐습니다. 둘이 있을 때는 곧잘 따라 읽다가도 발표 차례에는 입을 닫았습니다. 매달 적지 않은 비용을 내고 함께 연습하던 저는, 아까 집에서 했는데 왜 여기서는 못 할까 하는 마음에 답답했습니다.

당시 저는 이런 모습을 침묵기라는 말로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ASHA의 다언어 발달 안내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초기에 이해에 비해 말이 적은 시기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말을 적게 하는 상태를 모두 그 과정으로 보면 필요한 확인이 늦어질 수 있다고도 합니다. 집에서 읽고 발표 때 조용했던 딸의 모습만으로 제가 원인을 확인한 것은 아닙니다. 이 글은 그때 제가 조급해했던 일을 돌아보는 기록입니다.

영어로 말 못했다고 혼난 딸, 그리고 화난 딸

둘이 있을 때와 사람들 앞에서의 모습이 달랐습니다

제 딸이 다섯 살, 여섯 살 무렵이 딱 그랬습니다. 저와 둘이 앉아 영어책을 읽을 때는 제법 곧잘 따라 했습니다. 오 하고 감탄이 나올 만큼 잘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주 한 번 있는 발표가 문제였습니다. 집에서 연습할 때는 잘하다가도, 막상 사람들 앞에 서면 입을 꾹 닫아 버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솔직히 저도 답답했습니다. 분명 할 줄 아는데 왜 안 하지 싶었습니다. 부끄러웠는지, 낯선 사람 앞에서 긴장했는지, 말할 내용을 찾기 어려웠는지는 제가 나눠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집에서 따라 읽은 문장과 발표 자리에서 스스로 꺼내는 말은 같은 조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순간 혼자 영어로 중얼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시기를 콕 집을 수는 없지만, 어느 날부터 아이가 혼자 영어로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제 딸의 경우에는 영어책을 읽으면서부터 혼잣말이 늘었던 것 같습니다. 또 어떤 때는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 소피아나 엘레나, 겨울왕국 주인공을 흉내 내면서 영어가 툭툭 나왔습니다.

솔직히 저는 무엇 하나 때문에 말이 늘었다고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영어책을 읽은 시간도, 좋아하는 영상을 따라 한 시간도, 영어유치원에서 듣고 말한 시간도 함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 말이 늘어난 것은 제가 본 변화지만, 그전에 조용했던 모든 순간이 같은 이유였다고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다그치면 후회만 남습니다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습니다. 답답한 마음이 커지면 결국 아이에게 부담을 주게 됩니다. 왜 말을 안 하느냐고, 아까 했잖느냐고 다그치게 됩니다. 부끄럽지만 저도 조급한 마음에 아이를 여러 번 몰아붙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건 미안함뿐이었습니다. 그때마다 후회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딸이 그 순간 어떤 기분인지 듣기보다 말을 해내는지부터 확인했습니다. 부끄럽거나 쉬고 싶을 수도 있는데, 아까 했으니 지금도 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때처럼 다그치지 않으려 합니다.

제가 곁에서 바꾸려는 일

저는 함께 책을 읽고 좋아하는 장면을 이야기하던 시간을 이어가되, 그 자리에서 꼭 대답해야 한다는 부담은 줄이려 합니다. 말을 적게 하는 모습이 오래 이어지거나 생활에서 어려움이 커진다면 무조건 기다리면 된다고 결론내리지 않고, 선생님과 상황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전문가에게 상담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곱 살이 된 딸이 미국에서 온 언니와 영어로 대화하며 노는 모습을 보고 저는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습니다. 다만 우리 딸에게 그런 변화가 있었다고 해서 모든 아이가 같은 시기에 같은 과정을 겪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게 남은 교훈은 언제 말이 나올지 재촉하기보다, 아이가 편하게 말하는 상황과 어려워하는 상황을 함께 보는 것입니다.

미국 여행 중 기대만큼 말하지 않았던 모습과 돌아온 뒤 제가 본 변화는 아이 영어 스피킹을 기다리던 아빠, 미국 여행 뒤에 본 변화에 적었습니다.

이 글을 적으면서 문득 생각했습니다. 부모인 제가 답답했다면 딸도 그 자리가 편하지만은 않았을 수 있겠다고요. 그때 혼내는 대신 한 번 안아주고, 오늘은 말하기가 어려운지 물어봤더라면 좋았겠습니다. 아이의 침묵에 제가 먼저 답을 붙이기 전에, 곁에서 조금 더 들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