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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29일, 딸이 다니는 영어학원과 수학학원, 영어 라이팅 학원이 평일 한 주 동안 모두 방학에 들어갔다. 화교학교만 다니는 주였다.
학원이 쉬어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 딸의 표정과 행동은 평소보다 한결 편안해 보였다.
자기가 먹던 간식을 내게 나누어주더니 마지막으로 남은 과자 한 개까지 아빠가 먹으라고 내밀었다.
아이에게 원래 다정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날은 말과 행동 전체에 여유가 있었다. 컨디션이 좋은 딸이 이렇게 다정한 아이였나 싶을 정도였다.
나도 평소에는 제대로 묻지 않았던 질문을 꺼냈다.
“딸아, 너는 영어도 잘하고 영어책도 정말 많이 읽잖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똑똑해져” 다음에 아이 자신의 대답이 나왔다
딸은 책을 읽으면 똑똑해진다고 했다.
그 대답에는 내가 오래전부터 해온 말이 섞여 있을 것이다.
나는 딸이 아주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는 아이가 더 많은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은연중에 자주 말해왔다. 책을 읽으면 똑똑해진다는 말도 여러 번 들려줬다.
그래서 ‘똑똑해진다’는 첫 대답을 온전히 아이만의 생각이라고 적고 싶지는 않다.
아이 자신의 대답은 그다음부터 나왔다.
“재미있어. 나를 하하하하 웃게 만들어.”
영어가 늘어서도 아니었고,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있어서도 아니었다. 아이에게 영어책은 먼저 웃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조금 뜻밖의 말을 덧붙였다.
“이상해.”
나는 무엇이 이상한지 다시 물었다.
“우리 부산에는 없는 것들이 책에는 나와.”
처음에는 다른 나라의 건물이나 음식, 동물을 말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뒤에 이어진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가 말한 ‘부산에 없는 것’은 장소에만 한정된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사는 현실에서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 사건, 실제로 만나기 어려운 인물, 평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행동이 책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벌어진다는 뜻에 가까워 보였다.
아이가 말한 ‘이상하다’는 어렵거나 싫다는 뜻이 아니었다.
낯설어서 신기하고, 현실과 달라서 재미있다는 말이었다.
딸은 말로 설명하다가 영어책 한 권을 가져왔다
딸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책장으로 갔다.
수많은 영어책 가운데 한 권을 골라 내게 건넸다.
책 제목은 Young Cam Jansen and the Zoo Note Mystery였다.

딸은 쉬는 시간에 이 책을 읽어보라고 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랑 다른 걸 보여줘.”
솔직히 말하면 나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못했다.
아무 페이지나 한 장 펼쳐서 그 부분만 읽었다.
그런데 딸은 내가 펼친 장면을 보자마자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책의 앞뒤 상황과 인물의 특징도 자연스럽게 설명했다.
딸이 특별히 강조한 것은 여자 주인공의 기억 방식이었다.
“이 여자아이가 ‘클릭’이라고 말하면 그 장면이 메모리돼.”

눈앞의 장면을 사진처럼 기억해두었다가 필요할 때 다시 떠올리는 인물이라는 설명이었다.
아이가 왜 이 책을 ‘이상하고 재미있다’고 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현실에서는 누군가 ‘클릭’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눈앞의 장면이 그대로 저장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 속에서는 그런 일이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그 능력이 하나의 이야기를 움직인다.
설명을 마친 딸은 웃으며 내게 물었다.
“이거 재미있겠지?”
아이는 책을 추천하는 데서 끝내지 않았다.
자기가 발견한 이상하고 재미있는 세계를 아빠도 함께 재미있어할지 확인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이가 나를 책 속으로 데려갔다
앞서 영어책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아낸 방법에서는 내가 아이의 영어책 이해를 확인하려고 먼저 줄거리를 찾아봤던 경험을 적었다.
이번에는 순서가 완전히 바뀌었다.
딸이 책을 골랐고, 나에게 읽어보라고 했고, 내가 펼친 장면을 설명했다.
평소에는 내가 아이에게 묻는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어떤 장면이 재미있었는지, 주인공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확인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날은 딸이 나를 확인하고 있었다.
아빠가 책 속 세계를 제대로 따라왔는지, 자기가 재미있다고 느낀 설정을 이해했는지 살펴보는 것 같았다.
딸은 이제 책의 표지만 봐도 안에서 벌어졌던 장면과 이야기가 함께 떠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책을 통째로 외웠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임의로 펼친 한 페이지를 보고도 그 장면의 위치와 핵심 설정을 바로 설명할 만큼 이야기가 아이 안에 연결돼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출처를 몰랐던 말과 행동이 다시 보였다
딸은 한 번씩 내가 상상하지 못한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일곱 살 아이가 어디에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낯선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고, 갑자기 무언가를 실험하듯 행동해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출처를 바깥에서 찾았다.
유치원에서 배웠나, 학원 선생님이 알려줬나, 친구들이 하는 모습을 봤나, 영어 영상에서 본 것인가 생각했다.
정확히 알 수 없는 날에는 그냥 아이들이 어디선가 보고 따라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오늘 딸에게 영어책을 읽는 이유를 물으면서 흩어져 있던 장면들이 조금씩 맞춰졌다.
이 아이는 책 속 세계를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 조금씩 꺼내보는 아이일 수 있었다.
책에서 본 인물의 말을 자기 입으로 사용해보고, 낯선 행동을 놀이에 섞어보고, 실제로 해보면 어떻게 되는지 확인했을 수도 있다.
물론 딸의 모든 말과 행동이 책에서 나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아이는 화교학교와 영어학원, 친구와 가족, 영상과 일상에서도 수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
다만 그동안 출처를 찾을 때 빼놓고 있던 곳이 하나 있었다.
아이 방 책장에 꽂혀 있던 수많은 영어책이었다.
앞으로 딸이 예상하지 못한 말을 하거나 낯선 행동을 보이면 바로 가르치거나 이유를 추궁하기 전에 한 번 다르게 물어보려고 한다.
“그 생각은 어디에서 났어?”
“혹시 책에서 비슷한 장면을 봤어?”
“그 장면이 나오는 책을 아빠에게도 보여줄래?”
줄거리를 시험하는 질문이 아니다.
아이의 현실과 책 속 세계가 어디에서 만났는지 들어보기 위한 질문이다.
나는 영어책을 얼마나 정확하게 읽었는지 확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딸의 유아 영어독서는 책상 앞의 대답으로만 남아 있지 않았다.
책을 덮은 뒤 아이가 꺼내놓는 말과 행동에도 읽기의 흔적이 있었다.
오늘부터는 딸의 뜻밖의 행동을 볼 때 학교와 학원, 친구만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최근 어떤 책을 읽었는지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그것이 오늘 우리 집에 새로 생긴 영어독서 관찰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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