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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 영어독서

7살 딸 영어책 읽기, 아빠는 아니까 괜찮대

아빠표 유아영어 기록 2026. 8. 10. 09:25

목차


    “할머니는 영어유치원 안 다녀서 모를 수도 있어. 괜찮아. 어릴 때 영어책 안 읽었었지? 그럴 수 있어. 배우면 돼. 천천히 알려줄게.”

    7살 딸이 할머니에게 영어책을 읽어주면서 한 말이다. 나는 이 말을 그 자리에서 직접 들은 게 아니었다. 아내가 부산에 와 있고 나와 딸, 장모님까지 모두 우리 집에 모여 있을 때 장모님이 들려줬다.

    딸은 나와 영어책을 읽을 때와 할머니에게 읽어줄 때가 확실히 달랐다고 했다. 나는 매일 딸 옆에서 영어책을 보고도 그 차이를 몰랐다. 장모님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끝까지 발견하지 못할 뻔했다.

    엎드려서 영어책을 읽고 있는 딸

    할머니 얼굴을 보면서 영어책을 읽었다

    딸은 할머니에게 영어책을 읽어줄 때 책만 보고 읽지 않았다. 한 문장을 읽고 나면 할머니의 얼굴을 살폈다. 할머니가 이해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갔다. 표정이 조금 어리둥절해 보이면 읽던 것을 멈추고 방금 읽은 내용을 한국말로 다시 설명해줬다.

    할머니가 잘 모르겠다고 해도 딸은 답답해하지 않았다. 왜 이것도 모르느냐고 하지도 않았다. 할머니는 어릴 때 영어책을 읽지 않았고 영어유치원도 다니지 않았으니 모를 수 있다고 했다. 지금부터 배우면 되고 자기가 천천히 알려주겠다고 다독였다.

    내가 놀란 것은 딸이 영어를 한국말로 설명했다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모른다는 것을 틀렸다고 받아들이지 않는 말투가 더 놀라웠다. 지금 모르는 것은 괜찮고 천천히 배우면 된다는 말을 7살 아이가 먼저 꺼냈다.

    장모님은 그 말을 듣고 “우리 손주 최고”라고 하면서 딸을 안아주고 뽀뽀해줬다고 했다. 손녀가 영어를 읽고 한국말로 설명해주니 영어라는 것이 전보다 가깝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런데 장모님의 이야기에는 웃기는 반전도 있었다. 딸이 한국말로 설명해줘도 사실은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모를 때가 많았다고 했다. 계속 모르겠다고 하면 딸이 같은 자리에서 설명을 이어가니 어느 순간부터는 알겠다고 해야 다음 진도로 넘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딸은 할머니의 표정을 살피며 영어책을 읽었고, 할머니는 딸의 설명이 계속 이어지지 않도록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 모두 책보다 서로의 얼굴을 더 열심히 보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딸과 영어책을 볼 때 읽는 속도를 주로 봤다. 모르는 단어는 없는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 책장을 너무 빨리 넘기는 것은 아닌지를 확인했다. 그런데 장모님 앞에 앉은 딸은 영어책만 읽은 게 아니었다. 자기 말을 듣는 사람의 반응까지 읽고 있었다.

    할머니는 모르니까 알려주고, 아빠는 아니까 괜찮대

    아내가 부산에 와 있던 날, 나는 평소처럼 딸과 영어책을 보고 있었다. 장모님은 우리 모습을 지켜보다가 딸에게 물었다.

    “왜 아빠한테는 할머니한테 한 것처럼 안 알려줘?”

    딸은 웃으면서 바로 대답했다.

    “할머니는 모르니까 알려주고 싶고, 아빠는 아니까 괜찮아.”

    나는 딸이 나와 책을 볼 때 설명을 길게 하지 않는 이유를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와 너무 편해서 빨리 넘어가는 줄 알았다. 자기가 내용을 알고 있으니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딸의 대답은 달랐다. 딸은 내가 영어책 내용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설명하지 않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영어를 모르니 자기가 알려주고 싶었고, 아빠는 이미 아니까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판단했다.

    같은 영어책을 읽는 같은 아이인데 앞에 누가 앉아 있느냐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달라졌다. 나에게는 빠르게 읽고 넘어갔지만, 할머니에게는 표정을 확인하고 한국말로 풀어주고 기다려줬다.

    나는 그 말을 듣고 7살 아이가 참 생각이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다른 7살 아이들도 이런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딸은 은근히 어디에서 배웠는지 알 수 없는 어른스러운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런 말을 어디에서 배웠느냐고 물어보면 대답이 더 놀라울 때가 있다. 누가 알려줬다고 하지도 않고, 영어유치원이나 책에서 배웠다고 하지도 않는다.

    “자기 마음이 시키는 거래.”

    할머니가 모르니 알려주고 싶었고, 잘 모르겠다고 하니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딸에게는 그것으로 설명이 끝났다. 나는 그 짧은 대답을 듣고 오히려 생각이 많아졌다.

    이 장면 하나만 보고 영어책 읽기의 효과라고 크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직접 확인한 사실은 딸이 영어책을 읽으면서 상대의 표정을 봤고,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설명과 말투를 바꿨다는 것이다. 나는 영어책을 얼마나 잘 읽는지만 보느라 그 모습을 늦게 발견했다.

    딸이 할머니에게 한 말을 우리가 딸에게 돌려주고 있다

    딸이 7살이 되면서 갑자기 어른스러워졌다고 느끼는 순간이 늘었다. 그렇다고 늘 의젓한 것은 아니다. 숙제를 늦게 시작하기도 하고 게으름을 피우기도 한다.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다른 것을 하고 싶어 할 때도 많다.

    예전에는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마음이 급해졌다. 시간이 늦어지고 숙제가 그대로 있으면 빨리 하라고 재촉했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왜 그랬는지 듣기 전에 목소리부터 커질 때도 있었다.

    요즘은 나와 아내, 장모님 모두 딸 앞에서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하려고 노력한다. 잘못했을 때도 무조건 화부터 내지 않고 왜 그렇게 했는지 들어보려고 한다. 숙제를 미루고 있어도 바로 혼내기보다 함께 시작할 수 있는 말을 꺼낸다.

    “우리 한번 해내보자. 얼른 끝내고 자유시간 가지자.”

    딸이 문제를 모르겠다고 하면 언제든 아빠가 가이드해주겠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답을 바로 알려주지는 않는다. 답을 그대로 알려주면 숙제는 빨리 끝나겠지만 딸이 스스로 생각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 아빠가 가이드해줄게. 하지만 답은 바로 알려주면 선생님이 다 아셔.”

    딸 때문에 우리 가족의 말투가 하루아침에 전부 바뀐 것은 아니다. 나도 여전히 마음이 급해질 때가 있고 참지 못할 때가 있다. 다만 딸이 할머니에게 했던 “괜찮아, 천천히 알려줄게”라는 말을 떠올리면 한 번 더 기다려보게 된다.

    할머니가 모른다고 했을 때 딸은 재촉하지 않았다. 알 때까지 기다려주고 한국말로 다시 설명해줬다. 이제 우리도 딸이 늦거나 서툴 때 그 말투를 딸에게 돌려주려고 한다.

    그래서 숙제가 늦어지는 날이면 나는 다시 말한다. “우리 한번 해내보자. 얼른 끝내고 자유시간 가지자. 모르는 것은 아빠가 가이드해줄게.” 딸이 할머니의 표정을 기다려준 것처럼, 나도 딸이 자기 답을 찾을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