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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누구야?"

    7살 딸이 자기 어릴 때 영상을 보고 한 말이다. 자기 모습인 줄도 몰랐다. 내 휴대폰과 노트북에서 가장 많은 용량을 차지하는 게 딸 사진과 영상인데, 그중에서도 영어 공부하는 영상이 제일 많다. 알파벳 따라 하고, 스피킹 연습하고, 소리 내어 책 읽고. 퇴근하고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틈만 나면 찍어뒀다. 그걸 며칠 전에 처음으로 딸한테 보여줬다. 그날 우리 집 거실에서 벌어진 일이 나는 아직도 잘 정리가 안 된다. 웃다가 울었고, 마지막에는 딸이 나를 나무랐다.

     

    집에서 영어 숙제하면서 울고 있는 딸

    아빠표 영어, 3살부터 시작한 것들

    우리 딸 영어는 거의 나랑 집에서 해왔다. 시작은 3살쯤이었다. 어린이집 다닐 때 abcd부터 했으니까. 완전 갓난아기 때는 영어를 아예 안 했다.

    지금 그 영상들을 다시 열어보면 좀 웃긴다. 한글도 제대로 못하는 애한테 알파벳을 가르치고 영어 동요를 틀어주고 있는 내 모습이 화면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걸 어눌한 발음으로 따라 하는 딸은 신기하고 귀여웠다. 그 나이에 그 발음이 나오는 게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다시 보니까 그때는 못 봤던 게 보인다. 영어 영상을 틀어주면 딸 표정이 안 좋다. 딴짓을 한다. 화면 쪽을 안 본다. 반대로 완전 아기들이 보는, 한글 나오고 부드러운 음성 나오는 영상을 틀면 눈이며 얼굴이며 집중해서 본다. 티가 확실히 난다.

    그게 영상에 다 찍혀 있었다. 나와 아내는 그때 영어 영상만 틀어주면 알아서 습득되는 줄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애 영어 잘 시켜보겠다고 준비는 진짜 많이 했는데, 정작 아이가 별로 안 좋아했다는 게 4년 뒤에야 화면으로 보였다. 예전에 3~4살에 다 해봤지만 저는 모르겠다고 적은 적이 있는데, 그 모르겠다는 마음의 근거가 영상 안에 있었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싶은데, 그때는 아이 얼굴이 아니라 화면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이걸 얼마나 봤나, 몇 개 틀었나만 세고 있었으니까. 카메라는 아이 얼굴을 찍고 있었는데 나는 그걸 안 보고 있었다.

    이거 누구야? — 7살 딸이 자기 영상을 본 순간

    그 영상을 지금 7살 딸한테 보여줬다. 별생각 없이, 그냥 한번 보여줘볼까 하는 마음이었다.

    보자마자 이거 누구냐고 물었다. 자기 어릴 때라고 하니까 완전히 놀랐다. 웃으면서 자기가 이렇게 못했다고, 에~ 하는데 조금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지금 자기 실력을 기준으로 보니까 그럴 만도 했다.

    5살 때 영어 스피킹하는 영상을 보여줬더니 너무 귀여워했다. 그러더니 왜 이렇게 느리게 말하냐고 했다. 자기는 이렇게 쉬운 문장은 이보다 훨씬 빨리 할 수 있고, 지금은 더 어려운 문장도 빨리 말할 수 있다면서. 어릴 때 자기한테 자랑을 하고 있었다. 그 장면이 나는 제일 웃겼다. 상대가 자기인데도 지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기서부터 내 계획이 없어졌다. 딸이 내 폰을 뺏어 들더니 스스로 찾기 시작했다. 뒤로 뒤로 가면서 영상만 골라서, 자기가 스피킹했던 것들을 쭉 훑어봤다.

    나는 두세 개만 보여주고 반응을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아예 폰을 가져가서 자기가 편집자처럼 골라 보고 있었다. 사진은 다 건너뛰고 영상만, 그것도 영어 하는 영상만 찾아냈다.

    그러다 6살 때인가, 제법 잘했던 영상이 나왔다. 그때 박수를 어찌나 치던지.

    자기 영상을 보면서 박수를 치는 아이는 처음 봤다. 화면 쪽으로 몸을 바짝 붙이고 앉아서, 다 보고 나서 손뼉을 쳤다.

    이때 자기는 지금 봐도 잘했단다. 안 멈추고 쭉 잘하네, 하면서 웃었다. 중간에 쉴 때 침을 꼴깍 삼키면서 쉼표도 잘하네. 그리고 손동작도 잘하네. 이렇게 하나하나 짚어가며 칭찬을 했다.

    칭찬하는 항목이 구체적이라 나는 좀 놀랐다. 잘한다, 좋다가 아니라 어디가 왜 좋은지를 짚었다. 안 끊긴 것, 쉬는 자리, 손이 움직인 것. 학원에서 발표를 여러 번 하다 보니 자기 안에 기준이 생긴 모양이다.

    그 말들을 듣는데 좀 이상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그 당시에 비슷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안 끊기고 잘 넘어간다, 손이 같이 움직인다. 4년 전에 내가 속으로 했던 평가를 지금 딸이 소리 내서 하고 있었다.

    딸이 앞부분 문장들은 아직도 기억난다고 했다. 한참 전에 외운 문장인데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 딸이 어릴 때 딸을 자기 아이처럼 바라봤어

    영상을 보고 있는 딸을 옆에서 지그시 바라봤다.

    처음에는 놀라고 웃고 조금 어색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계속 보고 있으니까 표정이 달라졌다. 지금의 딸이 어릴 때 딸을 자기 아이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잘했네, 하면서 격려를 엄청 해줬다.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이었다. 보통 부모와 아이가 같이 보는 건 옛날 사진이나 그리운 모습이지, 지금과 어릴 때 영어 실력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나란히 놓고 보는 건 드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그 자료가 4년치 쌓여 있었다. 나는 그동안 그걸 나 혼자 보는 기록이라고만 생각했다. 딸에게 보여줄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다.

    그러다 영상 하나가 나왔다. 아이가 영어 공부하다가 우는 영상이었다.

    나는 그 영상이 나올 줄 몰랐다. 넘겨야 하나 싶어서 손이 움찔했는데 딸이 먼저 멈췄다.

    딸이 화면을 보면서 우리 딸이 왜 우냐고 했다. 토닥여줬다. 자기가 있었으면 더 잘 가르쳐줬을 건데, 하면서. 그러더니 나를 보고 아빠가 잘 못 가르쳐준 거 아니냐고 했다.

    화면 속 아이한테는 토닥여주고 나한테는 따졌다. 그 순서가 웃기면서도 뭔가 뭉클했다.

    그래서 내가 말해줬다. 이때 기억한다고. 이때는 한참 무조건 모르겠다고만 하던 때였다고.

    딸은 그 말을 듣고 별말 없이 다시 화면을 봤다. 자기가 왜 울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 눈치였다.

    애틋했다. 내가 눈물이 많은 건가. 눈물이 났다. 그 세월 동안 아이가 이렇게 성장해줘서 고마웠다.

    그리고 하나 정했다. 앞으로도 계속 찍어두기로. 지금 이 시기를 4년 뒤에 다시 보면 또 지금은 안 보이는 게 보일 테니까. 그때는 딸이 열한 살일 거고, 오늘 이 장면을 보면서 또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딸아, 지금 네가 영어를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웃으면서도 하고, 하기 싫은데도 하고, 울면서도 했기 때문이라고 아빠는 생각해. 수고했어. 영어유치원 마치는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