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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가 훨씬 편한 우리 딸이 차 안에서 급박하게 "쉬마려"라고 한국말로 했다. 오마이갓. 그때는 차에 쉬하면 어쩌나 싶어서 나도 정신을 못 차렸다. 그런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영어책을 한글책보다 훨씬 많이 읽고, 영어가 확실히 더 술술 나오는 아이가 왜 이런 급박한 순간에는 우리말이 먼저 나왔을까. 그게 궁금해서 딸한테 직접 물어봤고, 답을 듣고 나서 내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화장실이 급해서 ''쉬마려'하면서 뛰는 딸

    차 안에서 터진 '쉬마려'

    대체공휴일이었다. 아침에 뭔가 짭짤한 걸 먹었는지 딸이 물을 엄청 마셨다.

    할머니 집에 가기로 했고 차로 10분에서 15분 거리였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 화장실 갔다 가자고 했는데 괜찮단다. 참을 수 있단다. 이럴 때 아이 말은 믿으면 안 되는데 그날은 그냥 출발했다.

    아파트에서 차를 빼서 도로에 올라가자마자였다. 뒷자리에서 한마디가 터졌다.

    정 확 히 한국말이었다. 쉬마려.

    그 순간에는 아무 생각도 안 났다. 여기서 차에 쉬하면 어떡하나, 어디에 세워야 하나, 그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사고는 안 났다.

    일이 다 끝나고 나서야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우리 딸은 지금 영어가 제일 편한 아이다. 영어책을 붙들고 사는 아이고, 말도 영어로 더 길게 잘 뱉는다. 그런데 정말 급한 순간에는 한국말이 나왔다. 이게 그냥 우연인지 아니면 이유가 있는 건지 알고 싶어졌다.

    솔직히 나는 반대일 거라고 생각해왔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순간에는 그 아이한테 제일 편한 말이 나올 테니까, 우리 딸이면 영어가 튀어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것도 애매하게 섞인 것도 아니고 아주 또렷한 세 글자였다.

    혼자 결론을 내리기 전에 물어보기로 했다. 이런 건 내가 아무리 짐작해봐야 소용이 없고, 당사자가 제일 잘 아니까.

    영어학원·화교학교, 장소마다 다른 언어

    마침 딸이 기분 좋게 영어책을 읽고 있길래 옆에 가서 세 가지를 물어봤다. 기분이 안 좋을 때 물으면 대충 대답하고 넘어가니까 타이밍을 봤다.

    먼저 집에서는 쉬 마려울 때 영어로 하냐 한국말로 하냐고 물었다. 한국말로 한단다. 거짓말이 아니다. 내가 있을 때는 늘 쉬마려라고 한국말로 했으니까. 차에서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나는 가족이 있을 때는 한국말이 나오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두 번째 답이 달랐다. 영어학원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아나. Can I go to the bathroom, 이렇게 정확히 말한단다. 더 급하면 It's an emergency까지 붙인단다.

    여기서 첫 번째 가설이 깨졌다. 급하면 한국말이 나온다는 게 아니었다. 영어학원에서는 급할수록 오히려 문장이 길어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물어봤다. 오잉, 왜 영어학원에서는 영어로 해? 대답이 엄청 단순했다. 영어 배우는 곳이니까 영어로 해야 한단다.

    세 번째는 화교학교였다. 거기서 화장실 급할 때는 뭐라고 하냐니까 한국말로 했단다. 나는 여기서 머리가 살짝 복잡해졌다. 아, 이러면 기준이 안 서는데.

    그런데 딸이 이어서 설명을 해줬다. 원래는 중국어로 화장실 가고 싶다고 말해야 하는 거란다. 그리고 자기도 중국어로 말하고 싶었단다. 그런데 아직 그 말이 익숙하지가 않아서 입에서 막혔단다. 머뭇거리다가 너무 급해서 그냥 한국말로 해버렸다고.

    그 위급한 순간에 선생님도 화장실 관련 표현을 중국어로 가르쳐줄 틈은 없었나 보다.

    나는 이 대답이 제일 좋았다. 딸이 그냥 한국말로 했다고만 하지 않고, 중국어로 하고 싶었는데 막혔다는 것까지 스스로 설명해줬으니까. 아이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대로 들여다본 셈이다.

    이 설명을 듣고 나서야 기준이 거의 섰다. 급하다고 무조건 한국말이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쓰기로 되어 있는 말이 먼저 나오는 거였다. 아마 딸이 일본어를 배우는 곳에 있었으면 급한 상황에 일본어를 썼을 거고, 스페인어를 배우는 곳이었으면 스페인어로 했을 거다. 분명히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붙는다. 그 말이 입에 붙어 있어야 한다. 화교학교에서 중국어가 안 나온 건 아직 그 표현을 몸에 익히지 못해서였으니까. 배우는 자리라도 준비가 안 됐으면 결국 다른 말이 밀고 올라온다.

    가족 앞에서는 전부 한국말 — 엘리베이터·강아지·쉬마려

    그러면 남는 건 배우는 자리가 아닌 곳이다. 가족과 있을 때, 그리고 진짜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화장실 말고도 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같이 자주 타는데, 문이 닫히려고 하면 딸이 나한테 위험해, 조심해, 하고 소리친다. 한국말이다.

    딸이 강아지를 무서워한다. 영어로 무섭다는 표현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아이인데, 그 순간에는 무서워, 막아줘, 하고 한국말로 매달린다.

    이런 걸 모아 놓고 보니 위급한 상황에서는 전반적으로 한국말이 나온다. 그것도 아주 짧은 말들이다. 쉬마려, 응가, 위험해, 조심해, 무서워, 막아줘. 문장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말들이다.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전부 나를 향해 하는 말이다. 옆에 있는 사람이 바로 움직여줘야 하는 말들. 화장실을 찾아줘야 하고, 문을 잡아줘야 하고, 강아지를 막아줘야 한다. 그러니까 딸 입장에서는 제일 확실하게 통하는 말을 고른 셈이다.

    내 생각이 맞다면, 본능에 가까운 말은 5살 전에 이미 자리를 잡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5살 전까지 대소변이나 위험한 상황은 우리 부모가 다 한국말로 알려줬으니까. 그게 그냥 몸에 붙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영어유치원을 다닌 3년 동안 딸의 하루는 거의 영어로 채워졌다. 그런데 그 3년이 5살 전에 심어진 몇 마디는 못 밀어낸 셈이다. 밀어낼 이유가 없었을 수도 있고.

    그래서 딸한테도 물어봤다. 아빠가 5살 때 화장실에서 쉬해야 한다고 응가해야 한다고 알려준 거 기억나냐고. 만약에 기억난다고 했으면 나는 아이 기억력에 박수를 쳤을 거다. 그런데 그냥 모르겠단다. 기억이 안 난단다.

    그냥 쉬마려, 응가 이렇게 말이 나왔단다. 방금도 쉬마려 이렇게 하고 화장실 갔다.

    기억은 하나도 없는데 말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하다. 배운 기억이 사라진 뒤에도 그 말만 몸에 붙어 있는 셈이다. 분명히 화장실 같은 본능에 가까운 순간에 말로 표현할 때는 역시 우리나라 말이 제일 편한가 보다. 참 어렵다, 언어라는 게. 앞으로도 더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