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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유치원을 보내다 보면 한 번쯤 갈림길에 섭니다. 패드로 영어를 시킬까, 종이책을 쥐여줄까. 저는 둘 중 하나를 먼저 고르라면 망설임 없이 책입니다. 영상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순서가 있다고 믿습니다. 기본은 책이고, 영상은 그다음입니다.

 

패드와 책을 같이 보는 아이

왜 책이 먼저인가

우리 집에서는 종이책을 놓고 한 문장에 멈추거나 앞 장으로 돌아가며 이야기하기가 편했습니다. 영상은 그대로 이어 틀 때 딸과 대화할 틈을 놓치기도 했습니다. 다만 영상도 멈추거나 다시 볼 수 있고, 전자책과 짧은 영상은 같은 형식이 아닙니다. 종이는 생각하게 하고 화면은 흘려보내게 한다고 둘을 나눌 수는 없습니다.

이 글은 종이와 화면 중 어느 쪽이 모든 아이의 이해를 더 높이는지 비교한 연구 소개가 아닙니다. 우리 집에서 함께 보기 편했던 방식과, 그 방식만으로 해결되지 않았던 장면을 적은 기록입니다. 매체의 우열보다 책과 영상의 내용, 우리가 어떻게 함께 보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영상이 빛나는 순간

그렇다고 영상을 치워두지는 않습니다. 책으로 먼저 익힌 다음 영상을 보면, 그건 금상첨화입니다. 특히 책이 너무 어려울 때 영상이 큰 도움이 됩니다.

얼마 전에도 그랬습니다. 딸아이 책 한 권이 아빠인 제가 봐도 이해가 안 갈 만큼 어려웠습니다. 글만으로는 도무지 그림이 안 그려져서, 둘이 같이 관련 영상을 봤습니다. 보다가 저도 모르게 “아, 이런 거였어?” 소리가 나왔습니다. 이건 책만 봐서는 도저히 모르겠다 싶은 대목이었거든요. 그러자 딸이 저를 보며 물었습니다.

“아빠도 책만 봤을 때는 몰랐어? 영상 보니까 이제 알겠어?”

웃으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영상은 책을 대신한 게 아니라, 막힌 데를 뚫어 준 도구였습니다. 그날 우리 둘에게는 그렇게 도움이 됐습니다. 영상의 역할이 언제나 거기까지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집 순서는

제가 옆에서 겪은 둘의 차이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구분그날 우리 집에서 한 일
책문장을 읽었지만 장면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영상관련 장면을 함께 보고 대화했다.
다시 책막혔던 페이지로 돌아가 내용을 다시 봤다.

순서는 늘 책이 먼저입니다. 책으로 부딪혀 보고, 너무 어려워 막히면 영상으로 잠깐 도움을 받고, 그다음 다시 책으로 돌아옵니다. 영상만으로 해결하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날 책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야기가 전보다 잘 이어졌습니다. 다른 책에서도 같은 효과가 날지는 따로 볼 일입니다.

책이 먼저고, 영상이 그다음. 우리 집 영어는 이 순서를 지키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