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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대학교 안 기념품 가게앞에서 찍은 사진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와 방학 때 해외여행을 가면, 부모 마음에는 은근한 기대가 생깁니다. 그동안 영어를 듣고 말했으니 식당에서 주문도 해 보고, 마트에서 한마디라도 해 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막상 여행지에서는 딸이 제가 기대한 만큼 영어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영어 표현이 어려웠는지, 낯선 사람 앞이라 부끄러웠는지 그때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었습니다. 방학 여행을 몇 번 함께하면서 저는 말을 얼마나 했는지보다 어떤 상황에서 먼저 꺼냈는지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영어유치원 방학 해외여행 어디로 갈까

저는 여행지를 고를 때 현지 사람들과 만날 기회도 생각했습니다. 익숙한 한국어 밖에서 딸이 무엇을 보고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말이 잘 통하는 여행은 의미가 없거나, 영어를 꼭 써야만 좋은 경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식당이나 가게에서 영어를 쓸 일이 생겨도 제가 이거 해봐, 저거 말해봐 하고 시키지는 않으려 했습니다. 딸이 먼저 해보려는 순간에는 기다려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입을 다물어도 되고 부끄러워해도 됩니다. 저나 아내에게 도와달라고 해도 됩니다. 여행 며칠이면 말을 하게 된다는 기준을 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변화는 딸이 어느 가게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던 한 장면입니다.

스탠퍼드에서 있었던 작은 일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 스탠퍼드 대학교를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그쯤 되니 아이도 며칠간 낯선 상황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모양이었습니다. 어느 가게에서 아이가 직접 점원에게 카드를 내밀며 계산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작고 부끄러운 목소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점원이 상황을 읽었습니다. 아이가 뭔가 말하려 한다는 걸 알아채고는, 방금 뭐라고 했는지 다시 한번 말해 줄 수 있겠냐고 아이 눈높이에 맞춰 친절하게 받아 주었습니다. 저는 그게 참 고마웠습니다. 사실 영어유치원에서 배운 대화에 비하면 훨씬 쉬운 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는 그 한 번을 어찌나 뿌듯해하던지, 한참을 싱글벙글했습니다.

제게는 딸이 작은 목소리로 꺼낸 말을 점원이 기다렸다가 받아준 모습이 오래 남았습니다. 교실 수업보다 효과가 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날 계산을 마친 뒤 한참 싱글벙글하던 딸의 얼굴은 기억납니다.

돌아온 뒤 영어 글에 다시 나온 여행 이야기

여행 중 영어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고 실패한 여행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딸은 여행에서 겪은 일을 나중에 영어 글의 소재로 꺼내기도 했습니다. 여행의 기억이 언제, 어떤 말로 다시 나올지는 제가 미리 정할 수 없었습니다.

다낭에서 본 바다, 괌에서 놀던 수영장, 스탠퍼드에서 만난 점원, 태국에서 먹은 음식. 이런 장면이 아이 안에 남아 있다가, 나중에 말이 되고 글이 됩니다. 실제로 제 딸은 여행에서 겪은 일을 한참 뒤에 영어 글의 소재로 꺼내 오곤 했습니다. 책에서 본 모르는 이야기가 아닌, 자기가 직접 보고 먹고 놀았던 일이라, 입에서 나오는 속도가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여행 중에 영어를 확인하려 들지 않습니다. 대신 돌아와서 사진을 같이 넘겨 보며 가볍게 물어봅니다. 가장 좋았던 게 뭐였는지, 뭘 먹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처음에는 수영장, 비행기, 바다 같은 단어 하나로 답해도 충분합니다. 거기에 제가 짧은 문장 하나만 얹어 주면, 여행의 기억이 그대로 영어 한 문장이 됩니다.

방학 영어 장소보다 중요한 것

지금은 목적지에서 영어를 얼마나 하는지 시험하겠다는 마음을 줄이려 합니다. 딸이 먼저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지 보고, 도움이 필요하면 제가 함께하면 됩니다. 그날 점원이 딸의 말을 기다려준 것처럼, 저도 서두르지 않고 들어주고 싶습니다.

이런 이야깃거리를 꼭 해외에서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함께 보고 먹고 놀았던 일을 집에서 다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여행 사진 한 장을 넘기며 딸이 먼저 떠올리는 기억을 듣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 이 글은 7살 아이와 여러 번 방학을 보내 본 부모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록입니다. 아이의 성향과 가정 상황에 따라 맞는 방식은 다를 수 있으니 참고로만 봐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