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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영어유치원을 함께 다녔던 여자친구들과 엄마들이 우리 집에 왔다.
    아이들은 만나자마자 목소리부터 높아졌다. 깔깔거리며 드레스로 갈아입고, 간식과 주스를 먹고, 책을 펼쳤다. 한 친구는 집에서 가져온 인공지능 로봇으로 아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평소 아이들이 모이면 한 번쯤 다투기도 하는데, 그날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 날 정도로 행복하게 놀았다.
    영어가 줄었는지 확인하려고 만든 자리는 아니었다. 딸이 영어유치원을 마치며 가장 크게 잃었다고 느낀 것은 영어가 아닌 친구들이었다. 그 이야기는 영유 졸업한 딸이 잃은 건 영어가 아니라 친구였다는 글에 적었다. 그 글 마지막에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고 썼는데, 이번 글은 그다음에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다.

    영어유치원을 함께 다닌 친구들이 드레스를 입고 소파에 모여 앉은 모습

    엄마들이 가장 먼저 물은 것은 화교학교와 영어였다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동안 엄마들은 식탁에 앉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화교학교는 어떠냐, 영어는 어떻게 유지하고 있느냐, 비용은 어느 정도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지금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사립초등학교에 보낼지, 일반초등학교에 보내고 영어학원이나 과외를 붙일지 고민하는 엄마들도 있었다. 또래보다 먼저 영유 생활을 끝내고 다른 길을 선택한 우리 딸의 지금 모습이 궁금했던 것이다.
    나는 우리 집 사정을 있는 그대로 전했다. 딸은 지난달 영어유치원을 마쳤고 8월 화교학교 입학을 앞두고 중국어 특강에 다니는 중이라고, 특강에 참여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교육 효과나 영어 실력 변화를 판단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영어는 주 세 번 저녁까지 학원에 다니고 원어민 수업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날 나눈 이야기만 놓고 보면, 영유를 마친 뒤 저녁까지 영어학원에 다니는 아이는 우리 딸뿐인 듯했다. 엄마들은 듣기만 해도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나도 지금 일정이 가볍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이 방법이 모든 아이에게 맞는 정답이라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초등학교 이후 학원을 고를 때는 수업 내용뿐 아니라 귀가 시간과 숙제까지 함께 따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우리 집 경험 안에서만 전했다.

    중국어를 해보라고 하자 딸은 쉿이라고 했다

    대화를 나누던 중 아내가 미리 찍어둔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딸이 중국어 특강에서 배운 내용을 가족에게 가르쳐주는 영상이었다. 딸이 선생님 역할을 하고 가족들이 학생이 되어 중국어를 따라 하고 있었다.
    영상을 본 엄마들은 놀라워했다. 한 달도 안 됐는데 이렇게 잘하느냐고 했다. 물론 이 영상 하나로 딸의 중국어 실력을 판단할 수는 없다. 익숙한 가족 앞에서 배운 것을 다시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을 뿐이다.
    그 분위기에서 딸을 불러 중국어를 조금 해 보여달라고 했다. 딸은 하지 않았다. 부끄러운가 싶어 더 시키지 않았다.
    나중에 둘만 있을 때 왜 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딸이 나를 보며 말했다.
    쉿. 나 혼자만 잘하고 싶어.
    그 말이 경쟁심 때문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 내가 대신 해석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친구들 앞에서 중국어를 보여주지 않은 이유를 묻자 일곱 살 딸이 실제로 그렇게 대답했다.

    영어로 말해보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들과의 대화가 어느 정도 끝나자 이번에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느 순간 아이들의 대화가 영어로 이어지고 있었다.
    누가 어떤 문장으로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아이들의 말을 받아쓰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모든 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분명한 것은 따로 있었다. 영어로 말해보라고 시킨 부모가 없었는데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영어로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한국어로 다시 설명해주기를 기다리지 않았고, 영어로 대답하라고 옆에서 거드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 딸도 친구들의 말을 알아듣고 대화에서 빠지지 않았다. 친구의 말에 맞춰 반응하고 자기 이야기를 보태며 함께 웃었다. 누가 영어를 가장 잘하는지 비교할 생각은 없었고, 긴 문장이나 어려운 단어를 찾아내려 하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보여준 것은 준비한 영어가 아니었다. 친구와 놀기 위해 그 자리에서 꺼내 쓰는 영어였다.
    엄마들도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은 선생님이 보내준 영상으로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아이들이 웃고 뛰어다니며 영어를 주고받는 모습을 오래 지켜본 것은 드문 일이었다. 화교학교에 가면 영어가 바로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하던 엄마들에게, 아이들이 한 장면을 대신 보여준 셈이었다.

    한 번의 재회로 영어 유지를 판단하지는 않았다

    그날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했다고 해서 딸의 영어가 앞으로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뜻은 아니다. 친숙한 친구와 나누는 일상 대화가 자연스러웠다는 것과, 어휘와 읽기 이해력과 학습에 필요한 영어가 충분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말은 유창하지만 질문의 뜻을 정확히 이해했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했던 경험은 유창함과 이해력을 따로 본 글에 적어 두었다.
    다만 영유 졸업 후 아이의 영어 말하기가 궁금한 부모라면, 예전 친구들과 다시 만나는 자리에서 한 가지는 해볼 수 있다. 모임 전에 영어로 놀라고 약속시키지 않고, 모임이 끝난 뒤 영어를 몇 문장이나 했는지 시험하지 않는 것이다.
    친구의 말을 알아듣고 반응하는지, 자기 이야기를 보태는지, 잠시 흐름을 놓쳐도 다시 대화 안으로 들어가는지만 지켜봐도 된다. 그 모습은 시험 점수와는 다른 영어를 보여줄 수 있다.
    다음 만남에서 아이들이 한국어로만 놀더라도 영어가 사라졌다고 판단하지 않을 생각이다. 한 번의 만남에서 고른 언어보다, 여러 번 만났을 때 아이가 관계와 대화 안으로 얼마나 편안하게 들어가는지를 계속 보려고 한다.
    시간이 되어 친구들이 돌아갈 때 아이들은 서로 안아줬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쉽게 떨어지지 못했다. 친구들을 배웅하고 돌아온 딸이 나와 아내에게 말했다.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줘서 고맙다고, 정말 행복했다고 했다.
    엄마들은 딸의 영어가 줄었는지 궁금해했고, 나는 영어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장면을 보았다. 그런데 딸이 그날 마지막에 꺼낸 말은 영어가 아니었다. 보고 싶었던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