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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은 쉬는 날로 두려고 한다. 적어도 일요일 하루만큼은 푹 쉬자는 게 우리 집 원칙이다. 그런데 이번에 토요일 하루를 처음부터 끝까지 적어 보고 조금 놀랐다. 쉬려고 짜 놓은 주말인데, 적고 보니 완전히 운동 데이였다.

토요일은 아침 아홉 시 반에 시작한다
토요일 아침은 아홉 시까지 푹 잔다. 평일에 못 자는 잠을 이때 채운다. 아홉 시 삼십 분이 되면 미국인 원어민 선생님이 집으로 온다. 오십 분 동안 거실에서 영어책 한 권을 놓고 이야기를 나눈다. 수업이라기보다 책 한 권을 사이에 두고 주고받는 시간에 가깝다. 이 수업을 시작하게 된 사정은 원어민 과외 첫날 이야기에 따로 적어 두었다.
수업이 끝나면 잠깐 쉬고, 열한 시 이십 분에 펜싱 수업을 한 시간 한다. 집에 돌아와 씻고 밥을 먹은 뒤에는 오르다 가베 수업을 한 시간 듣는다. 여기까지가 오전과 이른 오후다.
평일 내내 앉아만 있으니 주말은 몸으로

주말에 굳이 펜싱을 넣은 데는 이유가 있다. 평일 내내 아이는 앉아 있는다. 공부하고 숙제하고, 하는 일이 대부분 정적이다. 그러니 주말이라도 몸을 쓰는 걸 하나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펜싱을 고른 건 우연이 아니다. 내가 한때 일 년 넘게 펜싱을 다녔다. 해 보니 운동이 제대로 됐다. 아이가 다섯 살 여섯 살 무렵에는 아빠가 펜싱하는 모습만 보고 늘 따라 했다. 그러다 지금은 자리가 바뀌었다. 나는 운동을 잠시 쉬고, 아이가 펜싱을 배운다.
오후 네 시 사십 분에는 근처에서 줄넘기 수업을 하고, 끝나면 바로 키즈 요가로 이어진다. 이걸로 토요일 일과가 끝난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하루가 운동으로 채워져 있다.
주말 숙제는 안 할 수가 없다
오르다 수업까지 마치고 집에 오면 이제 좀 쉬어야지 싶은데, 그때부터 주말 숙제를 봐야 한다. 안 할 수가 없다. 평일에 밀린 것도 있고 다음 주에 필요한 것도 있다.
다만 주말 숙제는 평일 저녁과 결이 다르다. 주말에는 내가 시간을 통째로 비워 아이 옆에 붙어 있을 수 있다. 그러니 나도 여유가 생기고, 아이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 같다. 같은 숙제인데 시계에 쫓기느냐 아니냐로 분위기가 달라진다. 평일 저녁이 어땠는지는 3년 후기 글에 적어 두었다.
줄넘기와 요가까지 끝난 저녁에는 숙제를 더 시키지 않는다. 아이도 힘들 테니 그때부터는 영어 영상을 보거나 읽고 싶은 책을 읽게 두고, 먹고 싶다는 것을 먹인다.
한 번 크게 실패하고 나서 정한 규칙
처음부터 이렇게 느슨했던 것은 아니다. 아이가 여섯 살이던 때, 주말에도 평일처럼 해 본 적이 있다. 하필 그 주에 영어 라이팅과 단어와 발표가 형편없었다. 마침 아내도 비행을 마치고 집에 있던 주말이었다.
결과는 대참사였다. 지난주 영어 시험 결과를 두고 아이를 혼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엄마가 가족과 떨어져 일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고는 곧바로 숙제와 틀린 문제를 하나하나 짚어 가며 공부를 시켰다. 토요일 내내 아무도 쉬지 못했다. 아이 얼굴에서 밝은 기색이 사라졌고, 엄마는 속상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요일에도 아침잠만 조금 더 자고 다시 토요일처럼 했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셋 다 지쳐 있으면서 정해 놓은 공부 분량을 채우는 데만 매달렸다.
곁에서 지켜보니 계산이 맞지 않았다. 아이를 달래는 시간, 아이가 우는 시간, 그러고 나서 다시 회복하는 시간을 다 합치면 실제로 공부한 시간보다 길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아이를 가만히 두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 마음도 안다. 하나뿐인 딸을 어떻게든 잘 키워 보겠다고 가족과 떨어져 승무원 일을 하고 있다. 그 마음이 얼마나 큰지 나는 잘 안다. 다만 늘 곁에 있지 못하니 아이에게 쉼도 필요하다는 것까지는 체감하기 어려웠을 뿐이다.
그날 오후에 아내와 이야기를 나눴다. 의견이 한참 갈렸고 결국 내가 설득했다. 겨우 여섯 살이다. 유치원과 학원과 집으로 일주일이 꽉 차 있는데 주말까지 그러면 아이가 먼저 지친다. 혼내고 울리고 달래는 데 쓸 시간이면 아이가 숨 쉴 틈을 주자고 했다. 주말만큼은.
그 일요일 오후부터 방식을 바꿨다. 지금의 널널한 주말은 그때 정해진 것이다.
일요일은 프리인데 한두 시간은 남겨 둔다

일요일은 완전히 프리데이다. 아내가 비행을 마치고 집에 오면 온 가족이 나들이를 간다. 지하철을 타고 바다에 가기도 하고, 외식을 하고 디저트를 먹으면서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대신 일요일에도 한두 시간은 반드시 남겨 둔다. 복습이든 예습이든 뭐라도 한다. 한번은 일요일을 통째로 비워 봤다. 그랬더니 그 주 평일이 내내 밀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노는 날에도 한두 시간은 떼어 놓는다.
오늘이 마침 일요일이다. 아침에는 늦게까지 잤고, 지금 아이는 점심 전인데 영어책을 읽고 있다. Owl Diaries 시리즈다. 아침부터 나를 붙들고 내용을 설명하더니, 혼자 킥킥거리면서 읽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아이한테 휴식은 확실히 에너지를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물론 뜻대로 되지 않는 것도 있다. 아침에 역할놀이를 하다가 슬쩍 숙제 이야기를 꺼내 봤는데, 그때는 대답이 없었다. 지금도 은근히 던져 보지만 하기 싫다고 한다. 조금 있다가 상황을 봐서 다시 꺼내 볼 생각이다.
요즘은 여름이라 해가 떠 있을 때 나가면 아이도 어른도 지친다. 그래서 해가 좀 질 무렵에 움직이는 편이다. 나가기 전까지 영어 숙제와 수학 숙제를 한두 시간 하고, 다녀와서는 구구단을 한 번 보려 한다. 그다음에는 정해진 것 없이 책을 읽어도 되고, 하고 싶은 걸 물어 가면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적어 놓고 보면 토요일이 어쩌다 운동으로 가득 찬 하루가 되긴 했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고 본다. 그 일정들은 내가 짜 넣은 게 아니고 아이가 직접 고른 것들이기 때문이다. 고르는 자리를 아이에게 넘긴 뒤로 주말은 훨씬 수월해졌다.
그러니 우리 집 주말은 쉬는 날과 굴러가는 날 사이 어디쯤이다. 지금은 이 정도 리듬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내일은 월요일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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