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욕실 문 옆 몸동작과 감정 주제 영어 그림책을 꽂아둔 유아 영어독서 장면

    영어책을 많이 사두면 아이가 알아서 꺼내 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는 책장에 꽂힌 책보다 바닥에 살짝 기대어 둔 책에 손이 더 자주 갔습니다.

    처음에는 책 내용만 봤습니다.

    단어가 쉬운지, 그림이 선명한지, 아이가 좋아할 만한 주제인지.

    나중에 보니 책보다 자리가 더 중요했습니다.

    특히 컨셉북은 그랬습니다.

    컨셉북은 줄거리 긴 책과 조금 다릅니다. 몸동작, 기분, 색깔, 가족, 동물, 날씨처럼 한 주제 안에서 단어와 그림이 묶여 있는 책입니다.

    이런 책은 아이가 각 잡고 앉아서 읽기보다, 지나가다 보고 한 장 열어보고 몸으로 따라 할 때 더 잘 붙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우리 집에서는 영어책을 책장 기준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집 안에서 아이가 멈추는 자리, 손이 닿는 높이, 몸이 움직이는 방향을 같이 봤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우리 집 컨셉북 동선 배치도였습니다.


    책장은 보관 자리, 노출 자리는 따로

    책장은 깔끔합니다.

    부모 눈에는 제일 좋습니다.

    책등이 가지런히 꽂혀 있고, 시리즈도 맞고, 정리한 느낌도 납니다.

    문제는 아이 눈높이였습니다.

    책장에 꽂힌 책은 부모에게는 잘 보이지만, 아이에게는 그냥 벽처럼 보일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얇은 컨셉북은 책장 안에 들어가면 존재감이 약했습니다.

    표지가 보이지 않고, 책등만 보이니 아이 손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컨셉북은 책장에 전부 넣지 않았습니다.

    책장은 보관 자리로 두고, 실제로 아이가 마주치는 자리는 따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집 기준은 세 가지였습니다.

    • 아이가 하루에 여러 번 지나가는 자리
    • 부모가 말로 시키지 않아도 눈에 걸리는 자리
    • 책을 펴지 않아도 표지가 보이는 자리

    이 기준으로 보면 책장은 1등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책장은 정리에는 좋지만, 우연히 마주치기에는 약했습니다.

    컨셉북은 우연히 보여야 했습니다.

    읽으라고 꺼내주는 책보다, 지나가다 그림 하나가 눈에 걸리는 책.

    우리 집에서는 그쪽이 더 오래 갔습니다.


    자리 하나, 욕실문 앞

    욕실문 앞은 이상하게 아이가 자주 멈추는 자리였습니다.

    씻으러 들어가기 전.

    수건을 찾을 때.

    양치하러 가는 길.

    머리를 말리고 나오는 길.

    긴 시간은 아니지만, 하루에 여러 번 지나갑니다.

    그래서 그 옆에 컨셉북을 한 권 세워뒀습니다.

    책장을 만들겠다는 생각보다, 잠깐 눈에 걸리는 표시판에 가까웠습니다.

    몸동작이 들어간 책은 이 자리에 잘 맞았습니다.

    jump, stretch, turn, clap 같은 단어는 책상 앞에서 설명하면 딱딱해집니다.

    그런데 욕실문 앞에서는 아이 몸이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수건을 들고 돌거나, 팔을 뻗거나, 머리를 흔들거나, 발끝으로 서 있습니다.

    그때 책 속 그림이 보이면 단어가 말보다 몸에 붙었습니다.

    제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stretch?”

    이 정도만 말해도 아이는 팔을 위로 뻗었습니다.

    “turn around?”

    그러면 한 바퀴 돌았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영어가 공부 문장처럼 나오지 않았습니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단어가 뒤에 따라붙었습니다.


    자리 둘, 식탁 끝

    식탁은 숙제 자리이기도 하고, 간식 자리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감정이나 색깔이 들어간 컨셉북이 잘 맞았습니다.

    happy, tired, angry, sleepy 같은 단어는 아이 표정과 바로 연결됩니다.

    간식을 먹다가 기분이 좋아질 때도 있고, 숙제를 하다가 얼굴이 굳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 책 한 장을 펼치면 설명이 짧아집니다.

    “Which face?”

    아이가 그림을 손가락으로 고릅니다.

    “sleepy.”

    “angry.”

    “happy.”

    긴 문장을 만들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감정 단어는 아이가 자기 상태와 연결해야 오래 갑니다.

    그래서 식탁 끝에는 두꺼운 스토리북보다 얇은 주제묶음 책을 두었습니다.

    한 번에 많이 읽는 목적이 아니라, 밥 먹기 전후로 한 장만 보는 목적이었습니다.

    이 자리에 놓인 책은 깨끗하게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물컵 옆에 있고, 간식 부스러기도 떨어집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그 책은 보관용이 아니라 사용용이었으니까요.


    자리 셋, 현관 근처 낮은 칸

    현관 근처에는 날씨와 옷, 바깥 활동이 들어간 책을 뒀습니다.

    rainy, windy, cold, shoes, jacket 같은 단어가 이 자리와 잘 맞았습니다.

    밖에 나가기 전에는 아이가 꼭 신발장 앞에 섭니다.

    우산을 찾고, 신발을 고르고, 겉옷을 입습니다.

    그때 날씨 컨셉북이 보이면 단어가 바로 생활과 붙습니다.

    “Rainy today.”

    “Cold outside.”

    “Where is your jacket?”

    문장 하나를 외우게 하려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신발을 신는 행동 옆에 영어 한 조각을 붙여두는 자리였습니다.

    현관 책은 표지가 중요했습니다.

    책등만 보이면 아이가 지나칩니다.

    표지가 앞으로 보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낮은 칸에 눕히지 않고 세웠습니다.

    아이 눈에 그림이 먼저 들어와야 손이 갔습니다.


    우리 집 배치 기준표

    컨셉북을 아무 곳에나 뿌려두면 집만 지저분해집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자리를 세 개 정도로 제한했습니다.

    자리 맞는 컨셉북 이유
    욕실문 앞 몸동작 씻기 전후로 몸이 움직이는 자리
    식탁 끝 기분, 색깔 표정과 대화가 자주 나오는 자리
    현관 낮은 칸 날씨, 옷, 바깥 활동 외출 행동과 바로 연결되는 자리

    이렇게 나눠두니 책을 꺼내 읽히는 부담이 조금 줄었습니다.

    책을 읽자고 부르는 대신, 아이가 지나는 길목에 책이 기다리는 방식이 됐습니다.

    중요한 건 책의 양보다 위치였습니다.

    컨셉북은 많이 꽂아두는 책보다, 알맞은 자리에 얇게 깔아두는 쪽이 우리 집에 맞았습니다.


    책을 읽히기보다 자리를 맞추는 방식

    컨셉북은 긴 독서 시간으로만 접근하면 답답해집니다.

    아이도 부담을 느끼고, 부모도 자꾸 읽은 권수를 세게 됩니다.

    우리 집에서는 컨셉북을 독서량보다 노출 위치로 봤습니다.

    욕실문 앞에서는 몸동작.

    식탁 끝에서는 기분과 색깔.

    현관 근처에서는 날씨와 옷.

    이렇게 자리를 나누니 책마다 역할이 달라졌습니다.

    아이가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한 장을 보고 팔을 뻗으면 몸동작 책은 할 일을 한 셈입니다.

    표정 그림을 보고 sleepy라고 말하면 기분 책은 충분했습니다.

    신발을 신으며 rainy를 꺼내면 날씨 책도 제자리를 찾은 겁니다.

    그 뒤부터 저는 컨셉북을 책장에만 꽂아두지 않습니다.

    책장에는 여분을 넣고, 실제로 보이는 책은 동선 위에 둡니다.

    우리 집 컨셉북 배치표는 지금도 단순합니다.

    몸이 움직이는 곳에는 몸동작 책.
    표정이 자주 나오는 곳에는 기분 책.
    밖으로 나가는 곳에는 날씨 책.

    책을 더 사기 전, 먼저 볼 건 집 안 동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