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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실문 옆에 몸동작 영어책 한 권을 세워둔 적이 있다.

    씻으러 들어가기 전에도 지나고, 양치하러 갈 때도 지나고, 머리를 말리고 나올 때도 지나는 자리였다.

    책에는 jump, stretch, turn, clap처럼 몸으로 해볼 수 있는 동작이 그림과 함께 들어 있었다.

    어느 날 딸이 그 책을 보고 있었다.

    나는 짧게 말했다.

    “stretch?”

    딸이 팔을 위로 뻗었다.

    다시 말했다.

    “turn around?”

    딸은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별것 아닌 두 동작이었다.

    그런데 그날부터 나는 영어책을 어디에 둘지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책이 잘 보여서 그런 줄 알았다

    우리 집에서는 책장에 꽂혀 있는 얇은 영어책보다 밖에 나와 있는 책에 딸 손이 가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답이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영어책은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면 되는 건가.

    그런데 욕실문 옆 몸동작 책은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조금 달랐다.

    욕실문 앞은 딸이 원래 몸을 많이 움직이는 자리였다.

    수건을 찾으면서 팔을 뻗기도 하고, 머리를 말리고 나오면서 몸을 흔들기도 했다.

    발끝으로 서 있기도 하고 제자리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했다.

    그런 자리에 하필 몸동작이 그려진 책 한 권이 있었다.

    내가 “stretch?”라고 했을 때 딸은 바로 팔을 뻗었다.

    “turn around?”라고 했을 때는 한 바퀴 돌았다.

    책이 눈에 보이는 것도 중요했겠지만, 나는 그날 처음으로 그 책의 내용과 그 책이 놓인 자리가 서로 맞는지도 보게 됐다.

    딸이 영어를 익혔다고까지 쓰지는 않겠다

    그 장면만 가지고 딸이 stretch라는 단어를 완전히 익혔다고 말할 수는 없다.

    며칠 뒤에도 기억했는지, 다른 장소에서도 같은 말을 듣고 움직였는지는 그날 확인하지 않았다.

    turn around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 몸을 돌았다는 이유로 영어 표현 하나가 아이 것이 됐다고 결론 내리고 싶지는 않다.

    내가 직접 본 것은 훨씬 단순했다.

    욕실문 옆에 몸동작 영어책 한 권이 있었다.

    딸이 그 책을 보고 있을 때 내가 “stretch?”라고 말했다.

    딸은 팔을 뻗었다.

    “turn around?”라고 하자 한 바퀴 돌았다.

    그게 그날 확인한 전부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정도면 책을 어디에 둘지 다시 생각해볼 이유가 됐다.

    그 뒤로 책장보다 먼저 책 내용을 한번 봤다

    그렇다고 영어책을 집 안 곳곳에 꺼내놓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책은 여전히 책장에 뒀다.

    책을 많이 노출하면 무조건 더 잘 읽는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다.

    다만 얇은 주제책을 정리할 때는 예전과 다른 질문 하나가 생겼다.

    이 책에 나온 일이 우리 집에서는 어디에서 실제로 벌어질까.

    몸동작 책을 보면서는 욕실문 앞이 떠올랐다.

    거기서는 딸이 원래 팔을 뻗고, 돌고, 몸을 움직였다.

    그래서 내가 책 내용을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실제 움직임과 책 속 동작을 같은 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이 경험을 영어책 배치의 정답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른 집에서는 욕실문 앞이 아무 의미 없는 자리일 수도 있다.

    우리 집에서 직접 본 건 몸동작 책 한 권과 욕실문 앞의 딸이었다.

    예전에는 영어책을 사면 어느 칸에 꽂을지부터 생각했다.

    그날 이후에는 책장을 정리하면서 가끔 한 가지를 더 생각한다.

    이 책은 우리 집에서 어디에 있을 때 내용과 실제 생활이 가장 자연스럽게 만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