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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한테 아이 영어 숙제를 봐달라고 부탁했을 때, 처음엔 손사래를 치셨다. 자기가 영어를 어떻게 봐주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결국 하셨다. 오로지 손주 하나 때문이었다. 아내가 대한항공 승무원이라 자주 해외로 나가고 나도 회사원이라, 우리 집 아이의 하루를 실제로 지탱해온 사람은 장모님이다. 영어를 한마디도 모르시는 분이 손주의 영어를 봐주게 된 이야기다.

영어 숙제 케어, 손사래 치던 장모님이 결국 한 것
딸은 다섯 살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녔다. 매달 제법 큰돈이 들어가는 곳이었다. 그만큼 아이가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게 챙기는 일이 중요했는데, 아내와 나는 둘 다 일 때문에 낮 시간을 비웠다. 그 빈자리를 메운 사람이 장모님이었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장모님께 하나씩 부탁을 드렸다. 아침에, 그리고 내가 퇴근해서 집에 올 때까지 아이 영어 숙제를 옆에서 봐달라는 거였다. 처음엔 손사래를 치셨다. 영어를 모르는데 어떻게 봐주냐는 말씀이었다. 당연한 걱정이었다. 그런데 몇 번 말씀드리자 결국 하기로 하셨다. 당신이 영어를 알아서가 아니라, 손주 교육을 위해서였다.
방법을 하나씩 나눠 정했다. 아침에는 영어단어 시험이었다. 몇 번 읽어라, 몇 번 써봐라, 손으로 가리고 맞히는지 봐달라. 이 정도는 장모님도 시킬 수 있었다.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는 유치원 책 리딩과 문제 풀기였다. 다만 이건 정답지가 있어도 장모님이 영어를 모르시니 체크가 안 됐다. 그래도 표시된 곳까지 아이가 하도록 옆에서 봐주셨다. 그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장모님은 영어책은 뭘 읽었는지, 발표문은 몇 번 읽었는지도 확인하셨다. 그리고 공부하는 장면을 중간중간 사진으로 찍어 나와 아내에게 보내주셨다. 그 사진 덕에 아이도 의식을 했다. 할머니라고 마냥 어리광을 피우지 못했다. 할머니 옆에 있어도 엄마와 아빠가 어딘가에서 보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 같았다.
영어유치원 등하원, 아침 밥부터 노란버스까지
장모님이 맡으신 건 숙제만이 아니었다. 사실 하루의 처음과 끝이 전부 장모님 손을 거쳤다. 아침에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책가방을 싸서 노란 셔틀버스에 태우는 것까지가 장모님 몫이었다. 오후에 아이를 태운 노란버스가 다시 오면 받아주는 사람도 장모님이었다. 그리고 내가 퇴근해서 돌아올 때까지 아이를 데리고 계신 것도 장모님이었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새삼 놀랍다. 하루 중 우리 아이와 가장 오래 함께 있는 사람이 바로 장모님이다. 아내는 승무원이라 외국에 나가는 날이 잦고, 나는 회사에 매여 있다. 그 사이를 장모님이 통째로 채워주셨다. 영어유치원 시절이 굴러간 건 그 시간 덕분이었다.
장모님이 이걸 해내실 수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원래 야무진 분이시다. 장인어른이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셨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평생 교육 현장 곁에서 사신 분이라 아이를 어떻게 챙기고 돌봐야 하는지 기본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런데 바로 그 대목에서 나는 묘한 지점을 봤다. 교장선생님의 아내로 한평생 교육을 가까이서 보신 분인데도, 정작 손주 세대의 영어 앞에서는 완전히 낯설어하셨다. 패드로 하는 리스닝 숙제, 원어민과의 대화, 매일 치는 단어 시험. 장모님이 아이를 키우고 자식을 키우던 시절에는 없던 것들이다. 교육을 모르는 분이라서가 아니었다. 한 세대의 교육을 곁에서 다 지켜본 분조차, 지금 손주의 영어 앞에서는 처음 배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조부모와 손주 사이에 놓인 교육의 온도차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는 장모님께 영어를 기대하지 않았다. 장모님은 영어를 가르치신 게 아니라, 아이가 해야 할 것을 놓치지 않게 옆을 지켜주신 것이었다. 낯선 시대의 교육이라도 손주 옆을 지키는 방식만큼은 예전 그대로였고, 어쩌면 그게 영어 실력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다.
할머니 영어 알려줘, 대신 과자 줄게
영어를 모르신다는 사실은 예상 못 한 자리에서 문제가 됐다. 아이가 영어를 물어보는데 장모님은 계속 모른다고 하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 머릿속에 할머니는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으로 자리 잡아버렸다. 장모님은 그게 조금 속상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또 당신 손주가 영어를 잘하니까, 그 마음이 속상함보다 더 컸다.
그 속상함을 장모님은 당신만의 방식으로 푸셨다. 아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할머니 영어 잘 몰라. 우리 손주가 많이 배워서 할머니 조금 알려줘. 그러면 할머니는 대신 맛있는 국이랑 밥이랑 과일 정성스럽게 준비해줄게. 엄마 아빠 없을 때 할머니가 먹는 과자도 나눠줄게. 영어를 못 하는 자리를, 손주에게 배우겠다는 마음과 과자 한 봉지로 바꾸신 거였다.
그러자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 아이는 원래 가족한테 뭔가 알려주는 걸 정말 좋아한다. 틈만 나면 자기가 선생님이 돼서 가르친다. 할머니가 알려달라고 하시니 신이 났다. 할머니 잘 봐, 이거는 이거야, 알겠지? 그러면 장모님은 응, 응, 하면서 넘어가신다. 그렇게 한 번 가르치고 나면 아이는 뿌듯해한다. 그리고 장모님은, 여전히 모르신다.
이 장면이 마냥 예쁘기만 한 건 아니다. 아이가 할머니를 영어 모르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 장모님이 그걸 속으로 속상해하셨다는 것은 지울 수 없는 사실이다. 손주와 할머니 사이에 언어 하나가 벽처럼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장모님은 그 벽을 억지로 넘으려 하지 않으셨다. 대신 그 앞에 학생으로 앉으셨다. 아이가 아무리 가르쳐도 당신은 영어를 알게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손주가 자기를 가르치는 그 모습이 사랑스럽다고 하셨다. 배우려는 게 아니라 손주의 뿌듯한 얼굴을 보려고 학생이 되어주신 거였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에서 장모님이 어떤 존재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이 영어를 늘려준 건 유치원과 학원이지만, 그 영어가 흘러갈 자리를 만들어준 건 장모님이었다. 영어를 모르는 할머니가 학생이 되어준 덕에, 아이는 자기가 아는 걸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기쁨을 배웠다. 우리 집 하루를 지탱하고, 속상함을 삼키면서까지 손주에게 기꺼이 학생이 되어주는 사람. 그게 우리 가족에게 장모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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