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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도 모르겠다고 했다.

    딸이 영어유치원에 다니던 6살 여름이었다. 아침에 정말 갑자기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했다. 하루 정도 그러다 말겠지 싶었는데 이틀 동안 이어졌다. 나는 아이가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뿐 아니라 아내와 장모님도 아이를 달래가며 물었다. 그래도 나온 답은 자기도 모르겠다는 말뿐이었다.

    영어유치원 등원거부,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어서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전날까지 잘 다니던 영어유치원을 왜 갑자기 가기 싫다는지, 아이 표정만 봐서는 짐작할 수 없었다.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을 것 같았다. 아이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정말 자기도 모르는 것인지 그것부터 헷갈렸다.

    나는 생각나는 것을 하나씩 전부 물었다. 친구와 싸웠냐, 누가 괴롭혔냐, 무서운 것을 봤냐, 선생님이 혼냈냐, 유치원에서 쉬하다가 실수했냐, 배가 고팠냐고 물었다. 하나를 물어보고 아니라고 하면 또 다른 질문을 꺼냈다.

    아내도 물었고 장모님도 달래가며 물었다. 내가 놓친 말을 엄마나 할머니에게는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묻는 사람과 말투는 달라졌지만 특별한 이유는 나오지 않았다. 무엇을 물어도 아니라고 했고, 마지막에는 자기도 왜 가기 싫은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이에게서 이유 하나만 나오면 바로 해결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와 다퉜다면 풀어주고, 선생님에게 혼난 일이 있다면 무슨 상황이었는지 확인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결할 대상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 마음을 듣고 싶었던 것도 맞지만, 내가 안심할 수 있는 이유 하나를 어떻게든 찾아내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가 자기도 모르겠다고 하는데도 나는 같은 뜻의 질문을 말만 바꿔 계속 물었다. 여섯 살 아이가 자기 마음을 설명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보다, 내가 아직 맞는 질문을 찾지 못했다는 생각이 더 컸다.

    6살 여름, 갑자기 이틀 동안 등원을 거부했다

    등원거부는 이틀 정도 이어졌다. 그때 아내는 비행 일정으로 해외에 나가 있었다. 나도 회사에 가야 했다. 나나 아내가 아이 곁에 남아서 하루 종일 마음을 살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결국 장모님이 등원을 맡았고, 처음에는 아이를 억지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딸은 울면서 갔다. 잘 다니던 노란버스를 타는 일이 그날은 갑자기 힘든 일이 됐다. 아이는 가기 싫다고 하는데 이유를 말하지 못했고, 어른들은 이유를 모르면서도 버스에 태웠다. 나는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팠다.

    분명히 아이 안에는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을 알아내지도 못했고 해결해주지도 못한 채 보내야 했다. 보내는 것이 맞는지, 하루쯤 쉬게 하는 것이 맞는지도 판단하기 어려웠다. 이유를 알 수 없으니 어느 쪽을 선택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가장 먼저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물었다. 친구와 싸웠거나 누가 괴롭힌 것은 아닌지, 선생님이 세게 혼낸 것은 아닌지 물었다. 부모가 집에서 아이를 심하게 혼낸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나도 이미 같은 생각을 전부 해봤다. 하지만 아이의 말이나 당시 상황을 통해 확인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영어가 어려워서 싫다는 말도 없었고, 숙제가 많아서 가기 싫다는 말도 없었다. 잘 다니던 6살 아이가 여름 어느 날 갑자기 멈췄고, 우리 가족은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우리 집의 불균형이 문제인가, 별생각을 다 했다

    유치원에서 있었던 원인이 나오지 않으니 나는 우리 집 안을 보기 시작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엄마가 뭘 잘못했나 온갖 생각을 다 했다. 회사 일 때문에 아이 마음을 놓친 것은 아닌지,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가 보내던 신호를 그냥 지나친 것은 아닌지 앞의 며칠을 계속 되짚었다.

    아내는 승무원이라 비행 일정에 따라 집을 비운다. 서울에 임시로 머무는 곳을 두고 부산을 왔다 갔다 했다. 나도 회사에 다녔고 아이의 등하원은 장모님 도움을 받을 때가 많았다. 우리에게는 이미 익숙한 생활이었지만 아이에게도 정말 아무렇지 않은 생활이었을까 싶었다.

    엄마가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아이가 마음으로 외로웠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다른 집처럼 아침마다 엄마나 아빠가 여유 있게 데려다주지 못해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아이가 힘들다고 하는 순간에도 회사와 비행 일정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현실이 미안했다.

    유치원에서 생긴 일을 찾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나와 아내가 아이에게 잘못한 일을 찾고 있었다. 우리 집의 불균형스러운 환경이 문제인 것 같았다. 내가 회사에 가고 아내가 비행을 다니는 생활이 아이 마음에 쌓여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고 가정환경이 원인이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아이가 엄마가 보고 싶어서 가기 싫다고 말한 것도 아니었고, 아빠가 회사에 가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이가 말한 이유가 아니라 내가 불안해서 붙인 설명이었다.

    친구 문제도 아니고, 선생님 문제도 아니고, 부모가 혼낸 일도 아니라면 남는 것이 우리 집 일정 같아서 그쪽을 의심했던 것이다. 나는 원인 하나를 찾으면 마음이 조금 편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무엇을 떠올려도 확인할 수 없는 생각만 늘어났다. 아이보다 내가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해서 답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주말 지나고 월요일, “그때는 마음이 그랬어”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주말이 왔다. 주말 동안 특별한 해결을 한 것은 없었다. 유치원에서 있었던 사건을 알아낸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 풀어야 할 갈등을 찾은 것도 아니었다. 아이가 왜 가기 싫었는지 모르는 상태 그대로 월요일 아침이 왔다.

    그런데 딸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래대로 돌아왔다. 장모님이 아침에 노란버스를 태웠는데 다시 가기 싫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이틀 전에는 그 버스를 타는 것 자체가 힘들어 보였는데 월요일에는 늘 하던 등원처럼 지나갔다.

    나는 그 모습이 반갑고도 신기했다. 내가 이유를 찾아 해결해준 것도 아닌데 아이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이틀 동안 준비했던 질문과 걱정이 갈 곳을 잃었다. 괜찮아졌으니 다행인데 왜 괜찮아졌는지는 여전히 몰랐다.

    영어유치원 선생님도 별말이 없었다. 친구와 다퉜다는 이야기도, 수업 중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내가 떠올린 수많은 원인 가운데 확인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유를 찾아서 해결했기 때문에 다시 간 것이 아니었다. 주말이 지나고 아이가 다시 노란버스를 탔다.

    유치원에 다녀온 초저녁, 나는 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딸아, 아빠 많이 걱정했어. 마음은 괜찮아? 이제 유치원 가도 문제없어?”

    딸은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응, 괜찮아. 그냥 그때는 마음이 그랬어.”

    그 말을 들으니 안도됐고 솔직히 조금 허무하기도 했다. 나는 이유를 찾아야만 이 일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딸은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 채 그 마음을 그냥 지나온 것 같았다. 지금도 그 이틀의 이유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