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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살 딸이 중국어 학습을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딸이 저와 아내 앞에서 제법 긴 중국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노래는 아니었습니다. 화교학교 수업에서 배운 이야기에 가까웠는데, 말하는 방식은 노래처럼 들렸습니다.

    짧게 끊었다가 다시 이어졌고 목소리가 올라갔다 내려왔습니다.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제 귀에도 문장 전체의 리듬과 음의 높낮이가 느껴졌습니다.

    아이가 약 20초 동안 중국어를 이어 말하자 아내가 신기하다며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었습니다.

    말이 끝난 뒤 뜻을 물었습니다.

    “이건 아는데 이 뒤는 몰라.”

    뜻을 모르는 부분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는 긴 중국어 소리의 순서와 높낮이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만에 중국어를 유창하게 이해하게 됐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발음과 성조가 정확한지도 중국어를 모르는 부모인 저희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궁금해졌습니다.

    영어를 어느 정도 익힌 아이에게 새 언어는 정말 더 빠르게 들어오는 것일까.

    중국어 문장의 리듬과 음의 높낮이를 손으로 표현하는 7살 아이

    뜻을 모르는 20초가 손바닥 위에서 오르내렸습니다

    아내가 찍은 영상을 다시 재생했습니다.

    자기 목소리가 들리자 딸은 영상 속 중국어를 다시 따라 했습니다. 저희가 듣기에는 처음과 비슷한 리듬이었고, 목소리가 오르내리는 위치도 닮아 있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딸아, 진짜 신기해서 물어보는 건데 뜻도 모르면서 이걸 어떻게 외웠어?”

    아이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손바닥을 공중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며 말했습니다.

    “이렇게 올라갔다가 내려가.”

    그 장면을 보며 아이에게 중국어는 뜻풀이보다 먼저, 손으로 그릴 수 있는 소리의 모양으로 들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에도 아이는 이야기의 앞부분을 기억했습니다.

    화교학교에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한 번 듣고 외웠다거나, 20초짜리 이야기의 내용을 모두 습득했다고 쓸 수는 없습니다.

    다만 뜻을 다 알지 못해도 리듬과 높낮이를 이용해 낯선 소리를 먼저 붙잡아둘 수 있다는 사실은 아이의 행동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며칠 뒤에는 다른 장면이 나왔습니다.

    아이와 밖을 걷는데 날씨가 무척 더웠습니다. 그때 아이가 학교에서 배운 ‘덥다’는 중국어 표현을 실제 상황에 맞게 꺼냈습니다.

    약 20초짜리 이야기는 뜻을 다 모른 채 소리로 기억했습니다. 반면 ‘덥다’는 표현은 의미를 알고 실제 더운 순간에 사용했습니다.

    두 장면을 나란히 놓으니 아이에게 새 언어가 들어오는 순서가 조금 보였습니다.

    소리를 먼저 붙잡고, 뜻을 나중에 연결하고, 쓸 상황이 오면 입 밖으로 꺼냈습니다.

    뜻을 모른 채 외운 소리를 완전한 언어 습득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뜻을 모른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소리가 먼저 자리를 잡고, 그 위에 뜻과 상황이 조금씩 붙고 있었습니다.

    영어가 남긴 것은 중국어 지식이 아니라 배우는 순서였을까

    딸에게 계속 “어떻게 외웠어?”라고 묻다가 중학생 때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저는 비틀즈의 「Yesterday」를 외웠습니다.

    제목의 뜻 정도만 알았고, 뒤에 이어지는 영어 가사는 대부분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그래도 멜로디가 좋았습니다.

    반복해서 듣고 따라 부르다 보니 뜻을 몰랐던 영어 소리까지 순서대로 입에 붙었습니다.

    저 역시 영어 문장을 하나씩 해석한 뒤 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멜로디가 다음 소리를 불러왔고, 리듬이 영어 소리의 순서를 붙잡아줬습니다.

    딸이 중국어를 말하는 모습을 보며 수십 년 전 제 경험이 뒤늦게 이해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두 사람에게 리듬은 뜻을 모르는 소리가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손잡이처럼 작용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와 딸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제가 외운 영어는 노래 안에 머물렀습니다. 뜻을 확인하거나 실제 대화에서 써볼 상대도 없었습니다.

    딸은 학교에서 들은 중국어를 집에 가져와 부모에게 들려줬습니다. 아는 뜻과 모르는 뜻을 구분했고, 의미를 알게 된 표현은 밖에서 실제로 사용했습니다.

    아빠의 영어는 노래로 보관됐지만, 딸의 중국어는 사람과 상황을 만나며 언어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영어를 배웠다고 중국어 단어나 문법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에게 원래 소리를 잘 기억하는 성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화교학교에서 반복해 들은 양, 선생님의 수업 방식, 중국어에 대한 흥미도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영어 경험이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딸은 영어를 배우는 동안 낯선 소리를 듣고, 문장을 덩어리로 따라 하고, 뜻을 완전히 알기 전에도 먼저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나중에는 소리와 뜻을 연결하고,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경험도 쌓았습니다.

    영어가 중국어 지식을 미리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새 언어를 만났을 때 소리를 듣고 기억하고 말해보는 순서를 덜 낯설게 만들어놓았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아이의 작업기억이 새로운 단어의 소리와 의미를 배우는 성과와 관련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낯선 소리를 잠시 붙잡아두는 능력이 새 단어 학습 과정에 관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연구가 딸의 중국어 학습 원인을 직접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관찰한 ‘소리를 먼저 보관하는 모습’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됐습니다. 아동의 작업기억과 새 단어 학습 연구

    프랑스어를 사용하면서 독일어 몰입교육을 받은 초등학생들이 세 번째 언어인 영어 어휘를 배우는 여러 과제에서 단일언어 교육을 받은 학생들보다 앞선 결과도 보고됐습니다. 다만 연구 대상은 딸보다 나이가 많았고, 언어와 교육 환경도 달랐습니다. 영어를 익히면 누구나 다음 언어를 빠르게 배운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중언어 경험과 세 번째 언어 어휘 학습 연구

    그래서 제가 지금 말할 수 있는 범위는 여기까지입니다.

    중국어는 아이에게 처음이었지만, 낯선 언어를 듣고 기억하고 입 밖으로 꺼내보는 경험까지 처음은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딸이 중국어를 한국어와 영어로 바꿔 설명하며 아빠를 가르쳤던 과정은 중국어를 가르치던 딸이 영어까지 꺼낸 날에 따로 기록했습니다.

    그 글이 아이가 배운 언어를 누구에게 어떻게 설명했는지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그 언어가 어떤 순서로 기억되고 사용되는지를 살펴봤습니다.

    7살은 정말 언어 습득의 황금기일까

    딸의 모습을 보며 지금이 언어의 문이 열려 있는 시기인가 싶었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일곱 살은 긴 소리의 순서를 기억하고, 자신이 아는 부분과 모르는 부분을 구분할 만큼 자란 시기였습니다.

    동시에 뜻과 발음을 완벽하게 알아야만 입을 열겠다는 부담은 아직 크지 않아 보였습니다.

    딸은 뜻을 모르는 중국어를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틀릴까 걱정하기보다 소리를 따라 하는 재미가 더 커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7살이 모든 아이에게 적용되는 마지막 언어 습득 황금기라는 뜻은 아닙니다.

    언어 능력은 발음·어휘·문법에 따라 나이의 영향을 다르게 받습니다. 대규모 연구에서는 문법 학습 능력이 청소년기 후반까지 비교적 높게 유지된 뒤 감소할 가능성이 제시됐습니다. 제2언어 습득 시기 연구

    그래서 저는 ‘7살을 놓치면 늦는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에게는 긴 소리를 붙잡을 만큼 자란 기억력, 낯선 발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영어를 통해 외국어 소리를 다뤄본 경험이 함께 있었습니다.

    여기에 매일 중국어를 듣는 화교학교 환경과 집에서 배운 말을 꺼내볼 상대까지 생겼습니다.

    일곱 살이라는 나이 하나보다, 새 언어를 들을 환경과 소리를 즐기는 태도, 실제로 사용할 이유가 같은 시기에 만났다는 점이 더 중요해 보였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 우리 아이도 지금 중국어나 일본어, 불어를 시작해야 하는지 궁금할 수 있습니다.

    딸의 한 달 경험만으로 모든 7살에게 제2외국어를 추가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화교학교처럼 매일 듣는 환경과 일주일에 한두 번 듣는 수업은 조건이 다릅니다.

    새 언어의 개수를 늘리기 전에는 다음 네 가지부터 살펴보는 것이 더 현실적입니다.

    • 시키지 않아도 다시 말하는가
      수업이 끝난 뒤에도 아이가 낯선 소리를 먼저 꺼내는지 봅니다.
    • 아는 뜻과 모르는 뜻을 구분하는가
      전부 안다고 꾸미지 않고 모르는 부분을 편하게 말하는지 봅니다.
    • 뜻을 알려주면 기억한 소리와 연결하는가
      소리 암기에서 멈추지 않고 의미를 받아들이는지 살펴봅니다.
    • 배운 표현을 실제 상황에서 사용하는가
      문제의 정답이 아니라 덥거나 배고프거나 반가운 실제 순간에 말이 나오는지 봅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보게 됐습니다.

    아이가 배운 말을 진심으로 궁금해하며 들어줄 사람이 있는가.

    저는 중국어를 하나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가 학교에서 배운 말을 꺼낼 때 뜻을 묻고, 다시 들려달라고 하고, 정말 신기해하는 상대는 될 수 있었습니다.

    중국어 한 달 뒤 아이는 불어를 말했습니다

    화교학교에 보내기 전 저는 아이에게 자주 말했습니다.

    “딸이 화교학교에 다니면 아빠도 중국어를 배워야겠다.”

    아이는 지금 자기가 중국어를 잘 배워놓아야 아빠에게 알려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빠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재미있다고도 합니다.

    이 관계가 중국어 실력을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아이에게 학교에서 배운 말을 집에서 다시 꺼낼 이유는 만들어줬습니다.

    영유를 계속 다녔다면 영어가 조금 더 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살아보지 않은 길이므로 어느 선택이 더 좋았을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영어를 사용하던 환경이 사라질까 걱정했던 과정은 영어유치원을 마치고 화교학교로 옮긴 뒤 사라진 것에 적어두었습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실제로 본 것은 있습니다.

    아이는 뜻을 모르는 중국어를 손바닥으로 그려가며 기억했고, 뜻을 아는 표현은 밖에서 사용했습니다.

    저녁에 함께 걷던 날에는 중국어를 더 잘하게 되면 불어도 배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벌써 불어 학원을 알아봐야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중국어 몇 문장을 외운 것보다, 낯선 언어가 아이에게 또 만나보고 싶은 대상이 됐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습니다.

    아내가 물었습니다.

    “잘 보냈나, 안 보냈나?”

    화교학교를 보내기 전에는 제가 더 많이 걱정했습니다.

    이번에는 아내의 직감이 맞았다고 인정했습니다.

    “잘 보냈다.”

    중국어를 배운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문장이 어려워지고 숙제가 늘면 지금과 다른 모습도 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한 달의 결론을 ‘딸이 중국어를 잘한다’로 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영어를 배우며 얻은 것이 영어만은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낯선 소리를 겁내지 않고 듣고, 리듬으로 붙잡고, 뜻을 확인하고, 실제 상황에서 꺼내보는 순서.

    중국어 한 달 뒤 제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아이가 몇 문장을 외웠는지가 아닙니다.

    모르는 언어를 또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앞으로도 살아 있는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