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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데서 배우지 마. 내가 알려줄게.”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약 20일 된 일곱 살 딸이 내게 한 말이다.

    내가 다른 곳에서 중국어를 배워 딸보다 더 잘하겠다고 장난치자 아이의 표정이 바로 달라졌다. 완전히 삐졌다.

    결국 나는 약속했다.

    “알겠어. 아빠는 다른 데서 안 배우고 딸한테 배울게. 대신 진짜 교장선생님만큼 잘 알려줄 수 있어?”

    딸은 자신 있게 알겠다고 했다.

    그 약속이 생기기 전, 딸은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아빠에게 물고기 가족을 가르치고 있었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자 한국어로 뜻을 풀었고, 그래도 모르는 표정을 짓자 이번에는 영어까지 꺼냈다.

    영어를 가르쳐왔다고 생각했던 아빠가 중국어에서는 딸의 학생이 된 날이었다.

    아빠에게 중국어 기초를 가르치면서 영어로 설명하는 딸

    중국어를 보여주기 전에 누가 볼지 먼저 물었다

    2026년 7월, 딸은 화교학교 정식 입학 전 중국어 기초 특강을 듣고 있다.

    특강에 참여한 지 약 20일이 됐다. 아직 오래 배운 것은 아니지만 수업을 열심히 따라가고, 글자도 제법 반듯하게 쓴다. 숙제도 빠뜨리지 않는다.

    한국말은 편하게 하고, 영어책 읽기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고 자신 있어 하는 일이다. 그 사이에 중국어라는 새로운 언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딸은 중국어를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았다.

    얼마 전 영어유치원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을 때도 중국어를 배운다는 사실을 자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숨기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빠와 둘이 있을 때는 달랐다.

    특강을 마치고 돌아온 딸에게 나는 영어유치원에 다닐 때와 비슷하게 물었다.

    “딸아, 오늘은 뭐 배웠어? 아빠도 좀 알려주라.”

    중국어는 도저히 모르겠다고 말하면 딸은 히히 웃으며 그날 배운 내용을 꺼냈다.

    숫자를 하나부터 열까지 말하기도 하고, 기초 소리를 노래와 리듬에 맞춰 들려주기도 했다.

    그 모습을 촬영하려고 휴대전화를 들면 딸은 바로 확인했다.

    “아빠 혼자 볼 거야?”

    아빠만 본다고 대답하면 그제야 다시 이어갔다.

    촬영 자체보다 누가 보는지가 더 중요해 보였다. 친구들에게도 꺼내지 않은 중국어였지만, 아빠 혼자 보는 영상이라면 다시 당당하게 보여줬다.

    물고기 가족에서 ‘꺼거’와 ‘따거’가 만났다

    딸이 설명하던 내용 중에는 물고기 가족 이야기가 있었다.

    아빠 물고기와 엄마 물고기, 할머니와 할아버지 물고기, 오빠와 언니 물고기가 차례로 등장했다.

    딸은 가족을 가리키는 중국어를 리듬에 맞춰 말한 뒤 나에게 따라 해보라고 했다.

    내가 어색하게 따라 하면 다시 시켰다. 목소리 톤이 너무 낮다며 더 높게 말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중국어 한마디를 배우려다가 일곱 살 선생님에게 혼날 뻔했다.

    오빠 물고기를 가리킬 때 딸의 입에서 내 귀에는 ‘꺼거’로 들리는 말이 나왔다.

    그때 내가 알고 있던 중국어 한마디가 떠올랐다.

    나는 어릴 때 성룡 영화를 정말 많이 봤다. 영화에서 형님을 부르는 장면마다 ‘따거’라는 말이 들렸다.

    정확히 같은 표현인지는 몰랐지만 아는 말이 나왔다는 반가움에 딸에게 ‘따거’를 꺼내봤다.

    딸은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빠도 화교학교 다녔었어?”

    성룡 영화에서 들은 중국어 한마디 때문에 졸지에 화교학교 출신이 될 뻔했다.

    나도 아는 말이 하나 생기자 중국어가 갑자기 친근해졌다.

    오빠와 형님은 어떻게 다른지, 다른 가족은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계속 물었다. 내가 물을수록 딸의 설명도 길어졌다.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고 설명 언어를 바꿨다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나는 딸이 들려주는 말을 자주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면 딸은 방금 말한 중국어를 더 크게 반복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먼저 한국어로 뜻을 풀어줬다.

    그래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으면 이번에는 영어로 다시 설명했다.

    마지막에는 이것도 정말 모르느냐는 듯 내 얼굴까지 살폈다.

    정확한 영어 문장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 말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적고 싶지는 않다.

    분명한 것은 중국어에서 한국어로, 다시 영어로 설명 방법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정말 알아듣지 못했다. 이후 몇 번은 아이가 설명을 어떻게 바꾸는지 궁금해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딸이 한국어와 영어를 오가며 다른 방식으로 다시 설명해줬다.

    예전에는 딸이 이해하기 어려운 영어를 만났을 때 상대에게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경험은 영어 유창함과 이해력을 따로 확인했던 글에 기록했다.

    이번에는 방향이 반대였다. 아빠가 이해하지 못하자 딸이 한국어와 영어를 꺼내 설명을 고쳤다.

    이날 영어는 책을 읽거나 시험을 치기 위한 언어가 아니었다. 새로 배운 중국어를 아빠에게 전달하기 위한 설명 도구로 쓰였다.

    중국어를 배운 지 약 20일인 아이에게 세 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이날 딸은 자신이 아는 언어를 실제 소통에 사용했다.

    다른 데서 배우겠다고 하자 둘만의 수업 약속이 생겼다

    설명이 끝난 뒤 딸은 말했다.

    “내가 알려줄 테니까 다른 데서 배워오지 마.”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가 중국어에 꽤 빠졌다는 느낌이 왔다.

    그래서 나도 한술 더 떴다.

    “아빠도 화교학교 다니고 싶다.”

    딸은 안 된다고 했다.

    나는 다시 장난을 걸었다.

    “그러면 아빠가 다른 데서 배워서 딸보다 더 잘해야겠다.”

    이번에는 아이의 표정이 바로 굳었다. 완전히 삐졌다.

    내가 보기에는 중국어만큼은 아빠보다 앞에 있고 싶은 마음이 커 보였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였는지는 알 수 없다. 자기가 아빠를 가르치는 시간을 계속 갖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장난을 거두고 약속했다.

    “알겠어. 아빠는 다른 데서 안 배우고 딸한테 배울게. 대신 진짜 교장선생님만큼 아빠에게 잘 알려줄 수 있어?”

    딸은 자신 있게 알겠다고 했다.

    한 아이가 중국어 기초 특강을 약 20일 들은 경험만으로 조기 다국어 교육의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이번에 새로 본 것은 언어의 개수가 아니라, 설명이 통하지 않은 다음의 행동이었다.

    딸은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고 한국어와 영어를 꺼내 방법을 바꿨다.

    다른 집에서도 아이가 무언가를 새로 배워오면 시험 대신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오늘 배운 것 하나만 엄마나 아빠에게 가르쳐줄래?”

    설명할 언어를 정해주지 않고 기다려보는 것이다.

    부모가 이해하지 못했을 때 아이가 쉬운 말로 바꾸는지, 예를 드는지, 그림이나 몸짓을 사용하는지, 다른 언어를 꺼내는지를 볼 수 있다.

    일부러 계속 모르는 척하며 아이를 시험할 필요는 없다. 자연스럽게 설명이 막힌 한 번의 순간이면 충분하다.

    아빠는 다른 곳에서 중국어를 배우지 않기로 했고, 딸은 교장선생님만큼 잘 가르쳐주기로 했다.

    당분간 우리 집 중국어는 딸이 가르치고 아빠가 배우는 둘만의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