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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유치원을 마치고 지금은 스파르타식 영어학원에 다닌다. 월요일과 수요일과 금요일, 갈 때마다 단어 시험을 친다. 한글 뜻이 적혀 있고 그 옆에 영어로 쓰는 방식이다. 한글 뜻을 모르면 아예 쓰지 못하도록 문제를 낸다고 한다.
지난 시험에서 아이가 열 개 중 세 개를 맞았다. 선생님이 엄마 아빠를 따로 불렀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줬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단어 하나 때문에 영상까지 틀었다

그날 저녁 단어 하나가 걸렸다. 아이가 한글 뜻부터 모르니 영어로 쓸 수가 없었다. 말로 설명해도 잘 와닿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서 나는 영상까지 찾아 틀어 줬다. 단어 하나 때문에 거기까지 갔다.
다행히 아이가 알아들었다. 그리고 설명을 듣더니 냉장고에 붙어 있던 자석을 떼어 왔다. 자기부상열차가 어떻게 뜨는지 자석으로 따라 해 보는 것이었다. 자석을 붙였다 뗐다 하면서 혼자 신이 났다.
그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복잡했다. 아이는 그 순간 단어를 외우고 있던 게 아니었다. 자석이 밀어내고 당기는 게 신기해서 빠져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나도 그게 반가워야 했다. 그런데 내 머릿속 한쪽에는 아직 못 끝낸 시험 범위가 있었다.
나는 어느새 숙제 검사관이 되어 있었다
아이는 자석을 만지다 말고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자기부상열차를 실제로 타 보고 싶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러자고 대답은 했지만 속으로는 딴생각을 했다. 오늘 단어부터 끝내야 하는데.
그 저녁의 나는 아빠라기보다 검사관에 가까웠다. 아이가 무엇에 신나는지를 보는 게 아니라 오늘 분량을 채웠는지를 보고 있었다. 궁금해서 뻗어 나가는 아이를 자꾸 시험 범위 안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게 다 나만의 일이 아니었다. 아내가 멀리 비행을 나가 있을 때, 나는 아이 숙제가 끝나 있어야 아내에게 잘 돌봤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 책임감과 긴장이 나를 검사관으로 만들었고, 그건 아이에게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일곱 살이 그걸 못 느낄 리 없다.
점수와 호기심이 같은 저녁에 있었다
돌아보면 그 자석 장면은 두 가지가 겹쳐 있었다. 시작은 점수였다. 열 개 중 세 개, 선생님의 주의. 거기서 밀려 나온 저녁이었다. 그런데 그 설명이 잠깐 아이의 놀이가 됐다. 자석을 붙였다 떼는 그 몇 분만큼은 공부와 호기심이 붙어 있었다.
문제는 그 몇 분을 내가 오래 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험이 앞에 있으니 나는 자꾸 자석에서 단어로 아이를 데려왔다. 아이가 제일 살아 있던 순간을 내 손으로 접은 셈이다.
이런 저녁이 처음도 아니다. 숙제를 사이에 두고 힘들었던 저녁 이야기는 3년 후기 글에도 적어 두었다. 그런데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엔 아이가 신나 하던 장면이 그 저녁 안에 분명히 있었다는 점이다.
공부와 회복을 같이 저울에 올린다
그렇다고 공부를 시키지 말자는 말은 아니다. 시험은 다음 주에도 있고 점수는 점수대로 챙겨야 한다. 선생님 말도 틀린 게 아니다.
다만 나는 그날 이후로 저녁마다 두 가지를 같이 저울에 올린다. 오늘 단어를 다 채웠는지, 그리고 아이가 오늘 한 번은 신나 했는지. 둘 중 하나만 보고 있으면 저녁이 어긋난다. 자석을 만지던 그 얼굴을 보고 나서야 나는 그걸 알았다.
놀이공원은 아직 못 갔다. 다음 시험이 끝나면 자기부상열차를 보러 가기로 아이와 말은 해 뒀다.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는 그다음 주 단어 시험에 또 달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부모 노릇이라는 게 매주 이 저울 앞에 다시 서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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