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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백 옆 반납칸에 얇은 영어책을 넣는 아이의 손과 작은 스티커가 놓인 책상

리딩백에서 그 책을 처음 꺼냈을 때, 솔직히 너무 쉬워 보였습니다. 표지에 동물 한 마리, 안쪽에는 “I see a dog.” 한 줄이 전부였습니다. 이런 걸로 영어가 늘까 싶어서, 저는 그 자리에서 욕심을 부렸습니다. 쉬운 책이니 여러 번 반복하면 입에 붙겠지. 같은 책을 다시 펼치게 했고, “한 번만 더, 또박또박 읽어보자”고 했습니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됐습니다.

아이 얼굴은 두 번째 페이지에서 굳었습니다. 책이 어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쉬운 책을 암기 숙제로 바꿔놓은 탓이었습니다. 처음엔 신나서 “I see a dog!” 하고 읽던 아이가, 같은 문장을 세 번째 읽을 때는 입을 거의 안 움직였습니다. 가장 쉬운 책을 가장 부담스러운 책으로 만든 사람은 결국 저였습니다.

방식을 바꾼 건 작은 칸 하나였습니다. 리딩백 옆에 다 읽은 책을 넣는 반납칸을 따로 뒀습니다. “또 읽어” 대신 “다음 책 고를래?”라고 물었습니다. 얇은 책이 한 권씩 그 칸에 쌓이자, 아이는 책을 끝냈다는 걸 눈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책은 완벽하게 끝내야 하는 물건에서, 부담 없이 지나가는 작은 계단으로 바뀌었습니다. 한 권을 넣을 때마다 아이는 칸을 한 번 들여다보고 다음 책으로 넘어갔습니다.

반납칸 옆에는 작은 스티커를 뒀습니다. 책을 넣으면 동그란 스티커 하나를 붙였습니다. “다섯 개 모으면 선물” 같은 건 일부러 안 만들었습니다. 보상이 앞에 서면 책보다 스티커를 위해 읽게 되니까요. 그냥 한 권이 지나갔다는 흔적 정도로만 뒀습니다. 아이는 스티커를 붙이고 바로 다음 책 표지를 봤습니다.

책은 제가 골라주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골라줬는데, 그러면 아이가 책보다 제 지시를 먼저 봤습니다. 그래서 리딩백에서 두 권만 꺼내 놓고 고르게 했습니다. 너무 많으면 흐려지고, 한 권만 주면 시킨 느낌이 났습니다. 두 권이 딱 부담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한참 들여다보고 골랐고, 어떤 날은 그냥 손에 가까운 걸 집었습니다. 둘 다 괜찮았습니다.

며칠 뒤였습니다. 아이가 얇은 동물책을 읽다가 창문 쪽을 봤습니다. 방충망에 작은 벌레가 붙어 있었습니다. 아이는 책을 보다 말고 그쪽을 보며 말했습니다.

“I see a tiny bug.”

책에 있던 문장은 “I see a dog.”였습니다. 그 문장을 어떤 과정으로 기억해두었는지까지 제가 알 수는 없습니다. 제가 들은 것은 dog 자리에 눈앞의 tiny bug를 넣어 말한 한 문장이었습니다. 그 짧은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아이가 읽던 책과 창문 앞에서 본 것이 그 순간에는 이어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날도 아이는 그 얇은 책을 반납칸에 넣고, 스티커를 붙이고, 다음 책을 골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