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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의사가 될 건데, 나는 피부과 의사라서 다리는 다른 의사 선생님 소개시켜줄게."

    그날 시크릿쥬쥬 키즈카페에서 있었던 일이다. 일곱 살이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고, 정말 오랜만에 간 키즈카페였다. 우리 딸은 여자아이답게 공주를 정말 좋아해서 그날도 신이 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딸은 처음 본 동생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나는 몇 시간 동안 혼자 걱정만 하고 있었는데, 그 걱정은 하나도 필요가 없었다. 그날 엄지척을 받은 사람은 내가 아니라 딸이었다.

     

    배려심 많은 딸을 위한 아빠의 엄지척

    시크릿쥬쥬 키즈카페, 아빠의 걱정

    키즈카페는 은근히 비싸다. 입장료 내고 안에서 간식까지 사 먹으면 돈이 제법 나온다. 그럴 때면 나는 자동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돈이면 원어민 수업을 한 번 더 알아볼까, 학원을 하나 더 볼까. 놀러 와서까지 그 생각이 드는 게 웃긴데 그냥 자동으로 든다.

    그렇게 놀고 있는데 한 아이와 그 부모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딸보다 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였고, 작은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아빠는 일본인, 엄마는 한국인처럼 보였다.

    나는 우리 아이를 잘 안다. 모르는 친구나 동생한테는 좀 딱딱하게 대한다. 배려와 양보를 아직 더 배워야 하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리 말해뒀다. 저기 몸이 조금 불편한 친구 보이지, 너무 세게 지나가거나 그러면 안 돼, 살살 하고 조심해줘야 해, 알겠지. 딸은 키즈카페에 들어온 게 기쁜 마음이라 그냥 알겠다고 고개만 끄덕였다.

    퐁퐁 같은 것도 있어서 뛰고, 만들고, 놀았다. 나는 계속 예의주시했다. 솔직히 말하면 별 상상을 다 했다. 틱틱거릴까 봐, 말도 안 되지만 저 아이가 가지고 노는 인형을 뺏어 올까 봐. 지금 생각하면 우리 딸한테 미안한 걱정이었다.

    그러다 공주 인형을 두고 두 아이가 한 공간에 있게 됐다. 그리고 내 걱정과 정반대로, 딸은 그날 완전히 배려의 아이콘이 됐다.

    우리나라 사람 아니면 다 영어?

    딸이 먼저 물었다. 몇 살이야. 그 아이가 대답을 못 하니까 옆에 있던 아이 엄마가 여섯 살이라고 대신 말해줬다. 그러면서 일본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딸이 영어로 자기 이름을 말했다. 나는 그 장면에서 좀 웃겼다. 우리 딸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면 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줄 알았나 보다. 일본 사람이라고 하면 일본어가 있다는 걸 아직 모르는 나이인 거다. 자기가 아는 세상의 언어는 한국어랑 영어 둘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통했다. 신기하게도 그 아이도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 영어유치원이나 학원은 안 다니고 집에서 부모님이 알려준다고 했다. 오, 이 친구도 영어를 배웠나 보네. 딸이 그렇게 반응하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아이들이 영어로 주고받으니까 어른들 사이도 풀렸다. 그 아이 엄마 아빠랑 나와 아내가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처음에 있던 경계심이 다 사라졌다. 아이들 덕분에 어른들이 인사를 하게 된 셈이다.

    딸은 상대가 못 알아들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손짓을 하고 표정을 크게 지어가며 영어를 섞어서 다시 설명했다. 시크릿쥬쥬 너도 좋아하냐, 너는 영어 어디서 배우냐, 온갖 걸 다 물어봤다. 천천히 쉽게 말하니까 그 아이도 몸짓으로 알아듣고 조금씩 영어로 답했다.

    인형 먼저 고르라고, 피부과라서 다른 의사 소개해준다고

    딸은 인형을 먼저 고르라고 양보했다. 만드는 것도 하나씩 알려줬다. 영어로 천천히, 자기가 아는 만큼 풀어서.

    모르는 아이와 친해지는 게 쉽지 않은 아이인데 그날은 배려와 양보가 눈에 그대로 보였다. 예뻤고, 대견했고, 사랑스러웠다.

    그러다 딸이 다리는 언제 다쳤냐고 영어로 물어봤다. 아내가 바로 실례가 됐다며 대신 사과했다. 우리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다.

    그리고 딸이 말했다. 자기는 나중에 의사가 될 거니까 고쳐주겠다고. 그러더니 잠깐 있다가 말을 바꿨다. 아, 맞다. 나는 피부과 의사가 될 건데, 다리 고치는 건 다른 의사 선생님을 소개시켜주겠다고.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 딸이 너무 좋은 언니라며 엄지척을 해줬다.

    나는 그 장면을 조금 떨어져서 보고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 말도 안 했다. 일곱 살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저렇게 나눠서 말할 줄 안다는 게 놀라웠다. 못 고쳐준다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 한 것도.

    솔직히 그 전까지 나는 언제 끼어들어야 하나만 재고 있었다. 다리 얘기가 나왔을 때는 이제 내가 나서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내가 사과하는 사이에 두 아이는 벌써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있었다. 어른들만 그 자리에 남아 있었던 셈이다.

    왜 천사언니가 됐어?

    그날 저녁에 딸한테 물어봤다. 왜 오늘 그렇게 천사 언니가 됐어.

    딸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자기도 배웠고 알고 있대. 몸이 아픈 아이한테는 도와줘야 한다고. 그 말을 하는데 표정이 특별하지도 않았다. 자기한테는 당연한 일이었던 거다.

    그리고 하나 더 자랑했다. 일본 아이한테 영어를 자기가 많이 알려줬다고. 천천히 알려주니까 그 친구가 다 알아들은 것 같더라고 했다. 딸 입장에서 그날의 사건은 배려가 아니라 영어를 가르쳐준 날이었던 모양이다.

    영어를 3년 시키면서 나는 늘 결과를 시험지에서 확인했다. 단어 시험 점수, 레벨테스트 등급, 리딩북 진도. 그런데 그날 딸이 영어를 쓴 자리에는 점수가 없었다. 처음 만난 동생한테 통했느냐만 있었고, 딸은 통했다고 믿고 있었다.

    여태까지 해온 걱정이 그날 한 방에 정리됐다. 배려를 더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나였고,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아이 앞에 미리 걱정을 깔아두고 그 위에서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

    키즈카페에서 나오면서 나는 저녁에 딸이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뭘 더 시킬지 계산하다가 그날은 그냥 물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딸을 처음 보는 사람 앞에 세울 때 미리 주의를 주는 걸 줄였다. 어차피 아이는 알고 있었고, 내가 깔아둔 걱정이 오히려 아이를 작게 봤던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