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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빠, 여기 글로벌 학교 아니야? 영어가 너무너무 쉬워. 영어유치원보다 너무 쉬워.”
화교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하고 첫 영어수업을 들은 딸이 집에 와서 한 말이다.
나는 영어가 쉽다는 말보다 다른 걱정이 먼저 들었다. 아이가 수업시간에 너무 쉽다고 티를 내지는 않았을까. 자기도 모르게 잘난 척을 하거나, 친구들이 듣는 앞에서 경솔한 말을 하지는 않았을까. 영어를 잘한다는 칭찬보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가 더 궁금했다.
영어가 너무 쉽다는 말보다 잘난 척이 먼저 걱정됐다
나는 영어 교과서를 미리 보지 못했다. 입학하고 나서 책을 펼쳐보니 첫 수업답게 내용은 완전 기초에 가까웠다. 처음 만난 아이들과 워밍업하는 시간이었을 테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딸의 시작점은 달랐다. 다섯 살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녔고 일곱 살이 된 올해 6월 말에 마쳤다. 2년 반 가까이 영어로 수업을 듣고 책을 읽고 숙제했다. 그러니 첫 영어 교과서가 딸에게 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쉬운 것과 수업시간에 어떻게 행동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교과서를 미리 봤다면 딸에게 한마디 해줬을 것 같다. 네가 이미 아는 내용이 나와도 친구들 앞에서 너무 쉽다고 말하지 말고 선생님 수업을 잘 들어보라고. 뒤늦게 책을 보고 나니 칭찬을 기대하기보다 그 말을 못 해준 게 먼저 마음에 걸렸다.
선생님은 딸에게 책을 먼저 읽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영어시간에 무슨 일 없었냐고 물었다. 딸이 전한 이야기는 내가 걱정했던 방향과 달랐다.
선생님이 딸을 지목해 영어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했단다. 딸이 읽고 나자 발음이 좋다고 칭찬해줬다고 했다. 거기서 끝난 것도 아니었다. 반 아이들에게 영어에서 모르는 게 있으면 딸에게 먼저 물어보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선생님에게 물어보라고 했단다.
오우. 첫 영어수업부터 선생님이 딸을 아주 긍정적으로 봐준 모양이었다. 나는 속으로 영어시간에만 반장이 된 느낌이었겠다 싶었다. 그런데 딸이 나를 보며 거의 같은 말을 했다.
딸이 첫 영어수업에 붙인 이름
“아빠, 나 영어시간에 캡틴이 된 것 같아.”
반장이라는 말과 캡틴이라는 말이 겹쳐서 신기했다. 내가 먼저 답했다. 아빠랑 오랫동안 영어 공부해서 초등학교에 가자마자 칭찬을 들었네. 그렇게 말하고 나니 영어유치원 때 함께 펼쳤던 책과 퇴근 후 저녁들이 한꺼번에 생각났다.
영유의 영어와 화교학교 영어는 시작점이 달랐다
딸이 또 신기해한 것은 선생님이었다. 영어유치원에서는 캐나다, 미국, 영국에서 온 원어민 선생님들에게 영어를 배웠다. 그런데 화교학교에서는 중국인 선생님이 영어를 가르친다고 했다.
딸에게는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영어권 원어민이 아니라는 사실부터 낯설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선생님의 영어수업이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다. 첫 시간에 딸의 읽기와 발음을 알아보고, 그 실력을 반 안에서 쓸 자리를 만들어준 것만 봐도 내가 수업 전에 했던 걱정보다 선생님의 대응이 훨씬 빨랐다.
| 내가 확인한 항목 | 영어유치원 | 화교학교 첫 영어수업 |
|---|---|---|
| 선생님 | 캐나다·미국·영국 원어민 선생님 | 중국인 영어 선생님 |
| 아이에게 영어의 자리 | 매일 배우고 사용하던 생활과 수업의 언어 | 정해진 교과시간에 배우는 과목 |
| 첫 시간 아이의 역할 | 정해진 진도와 숙제를 따라가는 학생 | 책을 읽고 친구들의 질문을 먼저 받는 학생 |
| 내가 먼저 걱정한 것 | 숙제를 끝낼 수 있을지 | 쉬운 수업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 |
아직 첫 수업 한 번이다. 이 한 시간만으로 화교학교 영어수업의 전체 수준을 판단할 수는 없다. 딸이 앞으로도 계속 캡틴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적을 수 있는 것은 첫날 교과서는 딸에게 쉬웠고, 선생님은 그 차이를 그냥 두지 않고 딸에게 책을 읽을 자리와 친구들을 도울 역할을 줬다는 사실까지다.
쉬운 수업인지보다 세 가지를 더 물어보기로 했다
이번 일을 겪고 나니 앞으로 영어수업이 어땠느냐고 물을 때 쉽냐, 어렵냐만 묻지 않으려고 한다. 이미 아는 내용이 나왔을 때 어떻게 행동했는지, 선생님이 딸의 수준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친구들과 그 영어를 어떻게 나눴는지를 같이 물어볼 생각이다.
첫 영어수업 뒤 내가 딸에게 확인한 것
① 무엇이 쉬웠는지
② 선생님이 딸에게 어떤 역할을 줬는지
③ 그 역할 안에서 친구들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수업이 쉽다는 말만 들었으면 나는 영유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끝냈을 것 같다. 그런데 캡틴이라는 말까지 듣고 나니 영어 실력보다 그 실력을 교실에서 어떻게 쓰게 될지가 더 궁금해졌다. 혼자 잘하는 아이로 남는 것과, 친구가 모르는 것을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아이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니까.
캡틴이라는 말 뒤에 퇴근 후 두 시간이 떠올랐다
아내가 승무원이라 평일에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유치원 시절 주 양육자는 나였고 숙제도 거의 내가 맡았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잠들기 전까지 세 시간 정도가 남았다. 그중 두 시간 가까이를 영어유치원 숙제에 쓰는 날이 많았다.
아이 컨디션이 안 좋은 날도 있었고 나도 회사 일이 쌓여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었다. 둘의 상태가 같이 안 좋은 날은 정말 울고 싶었다. 억지로 해보기도 했고 하루를 통으로 쉬어보기도 했다. 숙제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선생님을 통해 아내에게도 전달됐기 때문에, 그냥 오늘은 접자고 말하는 것도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다.
한번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봤다. 그런데 편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오늘도 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맞벌이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만든 하루를 통째로 날린 기분도 들었다. 무엇보다 한 번 완전히 놓으니 다음에 다시 앉는 게 더 힘들었다.
이게 모든 아이에게 맞는 방법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집에서 몇 번 겪어보고 내린 결론은 힘든 날에는 양을 줄이더라도 완전히 놓지는 말자는 것이었다.
한번 쉬어보니까 진짜 안 하게 되더라. 그래서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 시간을 보냈다. 딸이 첫 영어수업을 마치고 자기가 캡틴이 된 것 같다고 말한 날, 나는 잘했다는 말보다 퇴근 후 딸과 나란히 앉았던 그 저녁들이 먼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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