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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는 영어유치원에서 지내는 동안 하루의 대부분을 영어로 살았다. 선생님과도 영어, 친구와도 영어, 수업도 놀이도 노래도 영어였다. 아침에 등원해서 오후에 나올 때까지 한국어를 거의 쓰지 않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몇 해가 쌓이니 아이에게 영어는 공부가 아니라 그냥 생활이 됐다.

    그런데 곧 초등학교에 간다. 영어권 학교도 국제학교도 아닌, 평범한 동네 초등학교다. 요즘 나는 그 장면을 자주 그려 본다. 영어로만 지내던 아이가 한국어로 굴러가는 교실에 앉으면 어떤 기분일까.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내 걱정은 영어 실력 쪽이 아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혼자 서 있는 일곱 살 아이의 모습. 영어유치원을 졸업하고 곧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영어유치원 나온 아이가 초등학교 교실에 앉으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이거다. 아이가 무심코 영어로 말해 버리면 어쩌나. 지금까지 그게 자연스러운 환경이었으니 습관처럼 튀어나올 수 있다. 그러면 아이들이 어떻게 볼까. 멋있다고 할까, 아니면 뭐야 저거 하고 이상하게 볼까.

    솔직히 나는 후자가 더 신경 쓰인다. 아이는 잘하는 걸 감추지 못한다. 겸손하라고 몇 번 일러도 봤다. 그런데 일곱 살에게 겸손을 요구하는 게 애초에 무리다. 잘하는 게 있으면 보여주고 싶은 게 그 나이다. 그게 자칫 잘난 척으로 비치면 친구들 사이에서 겉도는 건 한순간이다. 영어를 잘하게 해 주려고 몇 해를 애썼는데 정작 그것 때문에 아이가 외로워진다면, 그건 내가 바라던 그림이 아니다. 그 몇 해 동안 내가 무엇을 너무 많이 시켰는지에 대한 후회는 영어유치원 보내고 가장 후회한 이야기에 따로 적어 두었다.

    그렇다고 숨기라고 가르칠 수도 없다

    여기서 나는 늘 막힌다. 그럼 아이에게 영어를 숨기라고 해야 하나. 친구들 앞에서는 모르는 척하라고 해야 하나.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몇 해 동안 애써 쌓아 준 것을 이제 와서 감추라고 하는 건, 아이에게 네가 잘하는 게 부끄러운 거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말을 듣고 자란 아이가 나중에 무엇을 당당하게 할 수 있을까.

    결국 답은 감추는 쪽이 아니라 태도 쪽에 있는 것 같다. 잘하는 걸 보여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다른 친구가 말할 때 끝까지 들어주지 않는 게 문제다. 영어를 얼마나 하느냐보다 친구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주느냐가 교실에서는 훨씬 중요하다. 요즘 아이에게 조금씩 그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일곱 살이 얼마나 알아들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글은 대화가 되는데 책이 느리다

    또 하나 마음에 걸리는 건 한글이다. 아이는 한국어로 대화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집에서도 한국어로 말하고 내 말도 다 알아듣는다. 그런데 한글책을 읽는 속도가 아직 느리다. 영어책은 몇 권씩 쌓아 놓고 읽는 아이가 한글책 앞에서는 한 줄에서 멈칫한다.

    이건 사실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책을 읽는 힘은 이미 아이 안에 있고 지금은 속도가 붙기를 기다리는 시간일 뿐이라고 본다. 그 이야기는 한글책이 느린 일곱 살 이야기에 따로 적어 두었다. 다만 학교에 들어가면 모든 게 한글로 굴러가니, 그 전에 조금이라도 편해지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모두가 처음이다

    이렇게 걱정을 늘어놓다가 문득 멈추게 되는 지점이 있다. 초등학교가 우리 아이에게만 낯선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날 교실에 앉는 모든 아이가 처음 겪는 환경이다. 어느 유치원을 나왔든, 영어를 하든 안 하든, 다들 똑같이 새 학교 새 교실 새 얼굴들 앞에 앉는다. 우리 아이만 특별히 불리한 자리에 던져지는 게 아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른들 걱정보다 훨씬 빨리 서로에게 스며든다. 며칠이면 짝꿍 이름을 외우고, 몇 주면 같이 뛰어논다. 아이들의 세계에는 아이들만의 속도가 있다. 어쩌면 이 모든 걱정은 아이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입학 전 지금 챙기는 것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 내가 챙기려는 건 영어가 아니다. 영어유치원에서 몇 해를 보내는 사이 영어는 이미 아이 몸에 붙었다. 물론 졸업하고 나서 그 영어를 어떻게 붙들어 둘 것인가는 또 다른 숙제라, 그 이야기는 영어유치원 졸업 후 영어 유지에 정리해 두었다. 다만 초등학교 문 앞에서 지금 필요한 건 두 가지다. 하나는 한글책을 편하게 집어 들 수 있도록 곁에서 읽어 주는 것. 다른 하나는 잘하는 걸 자랑하는 것보다 친구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더 멋지다는 걸 조금씩 알려 주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는 아이로 키우겠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정작 학교 문 앞에 서니 내가 바라는 건 소박해졌다. 교실에서 친구랑 웃으며 떠들다 오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