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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상하게 똑같은 모양의 걱정이 자꾸 반복됩니다. 지금 이걸 하는 건 좋은데 언제까지 하려나, 계속 이것만 붙잡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입니다. 영상을 보여줄 때도 그랬고 밥을 먹일 때도 그랬습니다. 쪽쪽이를 물릴 때는 특히 그랬습니다. 이걸 대체 언제 떼나 싶어 한참 마음을 졸였는데, 지나고 보니 어느새 저도 모르게 떼어져 있었습니다. 밤마다 책을 읽어주는 일도 저에게는 꼭 그런 걱정이었습니다. 끝이 없을 것 같았지만, 결국 지나갈 걱정이었습니다.

     

    누워서 영어책을 읽는 딸

    언제까지 읽어줘야 하나, 그 밤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매일 밤 아이 옆에서 책을 읽어주는 일은 생각보다 고됩니다. 책과 가깝지도 않던 제가 어쩌다 밤마다 읽어주게 됐는지는 책 안 읽던 아빠가 밤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 이야기에 담아 두었는데, 하루 종일 아이를 보고 지친 저녁에 목소리를 내어 몇 권씩 읽다 보면 입이 아플 만큼 힘들었습니다. 아이는 한 권을 다 읽으면 곧바로 다른 책을 가져왔고, 저는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며 또 첫 장을 넘겼습니다.
    솔직히 이걸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아이는 아직 글자도 제대로 못 읽는데, 이러다 학교에 갈 때까지 제가 다 읽어줘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밤마다 스쳤습니다. 그때는 이게 지나가는 걱정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그저 끝이 보이지 않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쪽쪽이를 뗄 때도 분명 똑같이 조바심을 냈으면서, 책 앞에서는 또 처음 겪는 일처럼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여섯 살 무렵, 아이는 소파에 엎드려 혼자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어느 순간이었습니다. 여섯 살이 시작될 무렵, 제가 읽어주지 않아도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으려고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거실 소파에서 아이가 혼자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여름이면 살에 닿는 감촉이 시원한 가죽 소파였는데, 그 위에 엎드렸다가 뒤집었다가, 다리를 걸치고 자세를 제멋대로 바꿔 가며 책장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옆에 없어도 아이는 이미 이야기 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깐 그 모습을 바라봤습니다. 이제 혼자서도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그저 대견했습니다. 그 오랜 걱정이 무색하게, 정말 마법처럼 그 순간이 찾아온 겁니다.
    그 무렵 아이가 고르는 책에는 아이만의 규칙이 하나 있었습니다. 무조건 여자 주인공이 나와야 했고, 그 주인공은 머리카락이 길어야 했습니다. 긴 머리 여자아이가 표지에 있으면 일단 손이 갔습니다. 저는 그게 그렇게 귀여웠습니다. 아이에게는 이야기를 고르는 자기만의 취향이 생긴 것이고, 그건 책을 스스로 즐기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영상만 보던 아이가 책을 읽게 된 과정은 따로 적어 두었는데, 결국 핵심은 하나였습니다. 때가 되면 아이는 스스로 책을 넘겨받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제 아이는 영어를 제법 잘합니다. 오히려 한국어로 된 책을 읽는 게 조금 느릴 정도가 됐습니다.
    그런데 걱정이라는 게 참 신기합니다. 끝나는 게 아니라 자리를 옮겨 갑니다. 영어책은 이제 혼자 읽지만, 한글책이 느린 게 마음에 걸려서 요즘은 제가 한글책을 읽어줍니다. 아이는 한글로 된 과학책이나 초등학생들의 생활을 담은 이야기책을 스스로 들고 옵니다. 초등학생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장면이나, 텔레비전에 걸그룹과 보이그룹이 나와서 누가 더 예쁘네 하고 재잘거리는 이야기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 책을 읽어 달라고 가져올 때면, 아이가 부쩍 컸구나 싶어 마음이 묘해집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긴 머리 여자아이가 표지에 있어야만 손이 가던 아이인데, 어느새 이런 이야기에 더 흥미를 느낍니다. 그 변화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서운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도 힘듭니다. 저녁마다 목소리를 내어 읽는 그 일이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몇 년째 하는 일인데도 어떤 밤은 입이 아프고 눈이 감깁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압니다. 이것도 지나갑니다. 쪽쪽이가 그랬고 영어책 읽어주기가 그랬듯이, 지금 한글책을 붙잡고 있는 이 시간도 언젠가 아이가 혼자 넘겨받을 겁니다. 그러니 저는 조급해하지 않으려 합니다. 어차피 지나갈 걱정이라는 걸 이제는 아니까, 저는 오늘 밤도 아이 옆에서 책을 읽어줍니다.

    영어책은 잘 읽는데 한글책은 왜 느린지, 그리고 저는 왜 서두르지 않는지는 한글책이 느린 일곱 살 이야기에 이어서 적어 두었습니다.

    ※ 이 글은 일곱 살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록입니다. 아이마다 혼자 읽기 시작하는 시기는 다를 수 있으니 참고로만 봐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