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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딸이 태블릿을 들고 검색창을 열었다.
영어학원 숙제를 하는 시간은 아니었다. 내가 뭘 찾아보라고 시킨 것도 아니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게 있었던 모양이다.
화면에 영어자판을 띄우더니 하나씩 눌렀다.
“Toy story”
T는 대문자로 들어가 있었다. 그게 영어 실력의 증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판 설정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눈여겨본 것은 다른 쪽이었다.
우리 딸은 한국에서 사는 일곱 살 아이이고 나와 평소에는 한국말로도 잘 이야기한다. 그런데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는 순간 검색창에 먼저 넣은 것은 한글이 아니라 영어였다.
Toy story를 치자 검색창에 5가 붙은 결과가 보였고, 딸은 그걸 눌러 예고편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토이스토리 1편부터 4편까지 수도 없이 봤던 아이라 새로운 장면이 나오니 정말 좋아했다.
나는 그 모습을 옆에서 보다가 조금 소름이 돋았다.
영어책을 읽는 것도 아니었다. 영어로 대답하라는 숙제도 아니었다.
자기가 궁금한 것을 찾으려고 영어를 쓰고 있었다.
나는 초등학생 때 486 컴퓨터에서 처음 abcd를 눌렀다
딸이 영어자판을 두드리는 걸 보는데 갑자기 내 어릴 때 생각이 났다.
나는 초등학생 때 PC를 처음 사용하면서 키보드의 a, b, c, d부터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내가 알던 컴퓨터는 486 컴퓨터였다.
딸에게 아빠가 사용하던 컴퓨터가 이런 거였다고 사진을 찾아서 보여줬다.
뚱뚱한 모니터도 처음 보고 MS-DOS 같은 화면도 처음 보는 딸은 도대체 이게 뭐냐는 반응이었다. 지금 아이 눈에는 그냥 우스운 옛날 물건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세대차이라는 말이 갑자기 실감났다.
나는 알파벳 키를 처음 찾아 누르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딸은 일곱 살에 영어자판을 이용해 자기가 원하는 영상을 찾아보고 있었다.
나는 영어를 배우면서 컴퓨터를 만났는데, 딸은 영어와 태블릿을 거의 같이 익혀가고 있는 셈이었다.
영어자판도 처음부터 빨랐던 건 아니었다
이 태블릿은 원래 영어학원 때문에 준비했다.
학원 수업과 숙제에 쓰고 라이팅 숙제도 패드에서 한다. 녹음이 필요한 숙제는 직접 녹음도 한다.
이제는 와이파이 표시가 보이면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할 정도로 기기 자체도 제법 익숙하게 다룬다.
나는 딸에게 영어자판 치는 게 어렵지 않냐고 물어봤다.
자기도 연습을 많이 했다고 했다.
방법을 들어보니 특별할 것도 없었다.
독수리 타법이었다.

알파벳 하나를 찾고 누르고, 다음 글자를 또 찾아서 누르는 식이었다. 그렇게 계속 쓰다 보니 지금은 처음보다 훨씬 빨라졌다고 했다.
요즘 자판에는 자동완성도 있다. 몇 글자를 넣다가 원하는 단어가 뜨면 그걸 누르기도 했다.
언제 저 알파벳 위치를 또 익혔나 싶었다.
내가 따로 영어 키보드 자리를 외우라고 가르쳐준 적은 없다.
라이팅 숙제를 하면서 하나씩 찾았던 시간이 그대로 연습이 된 모양이다.
예전에 나는 7살 아이에게 패드 영어와 종이책 중 무엇이 나은지를 놓고 고민한 적도 있다.
그때 내 눈에 패드는 영어를 배우는 학습도구에 가까웠다.
이번에는 그 패드가 다르게 보였다.
숙제가 끝났는데도 딸은 같은 영어자판을 열고 자기 궁금증을 해결하고 있었다.
내가 이번에 새롭게 본 것은 영어자판을 칠 줄 안다는 사실보다, 숙제하면서 익힌 입력 방법을 아이가 자기 필요가 생겼을 때 그대로 꺼내 썼다는 점이었다.
영어가 편해서였을까, 영어로 시작한 태블릿이라서였을까
처음에는 나도 단순하게 생각했다.
영어가 편하니까 영어로 검색하는 건가?
그런데 조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바로 결론 내리기는 어려웠다.
딸에게 이 태블릿은 처음부터 영어학원용 기기였다.
영어 라이팅을 하고, 영어 숙제를 하고, 영어자판을 열고, 영어로 녹음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검색창을 열었을 때 영어자판을 선택한 것이 영어가 한국어보다 우세해서라기보다, 이 기기를 영어로 사용하는 순서 자체가 익숙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 번 Toy story를 검색한 장면만 가지고 어느 쪽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대신 내가 직접 확인한 사실은 분명하다.
영어학원 숙제를 하면서 익힌 영어 입력이 숙제가 아닌 시간에도 나왔다.
예전에는 아이 영어를 볼 때 말과 책을 많이 봤다.
얼마나 길게 영어로 이야기하는지, 영어책을 얼마나 읽는지, 외국인을 만났을 때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 같은 장면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영어가 보였다.
검색창이었다.
아이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뿐 아니라, 그 궁금증을 어떤 언어로 찾는지도 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러고 보니 한글로 읽고 쓰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러다가 또 다른 생각이 따라왔다.
영어책은 정말 많이 읽는다. 태블릿도 거의 영어로 사용한다. 지금 다니는 학교에서는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집에서는 한국말을 잘한다.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내가 듣기에는 둘 다 어눌하게 말하는 아이는 아니다.
그런데 말하기가 아니라 한글로 직접 읽고 쓰는 시간을 생각해보니 순간 머리가 멈췄다.
집에서 한글 과학책이나 수학책을 읽어주거나 직접 읽는 정도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한글로 쓰고 읽는 시간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적은 것 아닌가?
예전 같았으면 여기서 또 바로 걱정부터 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결론 내리지 않으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정말 급한 상황에서 딸 입에서 영어가 아니라 한국말이 먼저 나온 적도 있었다. 그 이야기는 영어가 편한 딸이 ‘쉬마려’라고 한국말로 했던 날에 따로 적었다.
급할 때 쓰는 언어와 태블릿 검색창에서 쓰는 언어는 같지 않았다.
그러니 Toy story를 영어로 검색한 한 장면만 보고 한국어가 약해졌다거나 영어가 더 강해졌다고 말하는 것도 맞지 않는다.
검색창에서 영어를 먼저 사용한 것은 내가 직접 봤다.
한글 읽기와 쓰기가 실제로 부족한지는 다른 장면을 더 보고 판단하면 된다.
그래도 어제 딸 손가락을 보면서 한 가지는 참 신기했다.
하나씩 알파벳을 찾아 누르던 독수리 타법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혼자 영어로 찾아내고 있었다.
영어를 잘해서만 멋진 게 아니었다.
배운 것을 자기 필요가 생겼을 때 갖다 쓰는 모습이 나는 더 좋았다.
멋지다,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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