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적겠습니다. 아이가 영어책 내용을 아는지 확인하고 싶을 때, 저는 무슨 내용이냐고 묻지 않습니다. 그 책을 제가 먼저 아는 척합니다.이 방법을 알게 된 날이 있었습니다. 영어 원서를 읽는 속도를 아빠가 따라가지 못했습니다저는 딸이 영어책을 읽을 때 뒤에 앉아 같이 따라 읽어보곤 합니다. 그런데 따라가지지가 않습니다. 제가 한 문장을 붙들고 있는 사이에 아이는 다음 장을 넘깁니다.이야, 빠르다. 처음에는 감탄했습니다. 그다음에 의심이 따라왔습니다. 눈으로만 대충 훑고 넘기는 것은 아닐까. 제 눈에도 모르는 단어가 보이는데 아이는 죽죽 읽어 나갔습니다. 긴가민가했습니다.중간에 끊고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너무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제대로 읽고 있는 중이라면 제가 흐름을 끊는 셈입니..
지난 토요일 오전 아홉 시 반, 우리 집에 원어민 선생님이 왔다. 아이가 처음 받아 보는 일대일 원어민 수업이었다. 작년에 영어 카페에서 짧게 대화를 나눠 본 적이 한 번 있었으니 거의 일 년 만에 다시 마주하는 원어민이었고, 그것도 이번에는 밖이 아니라 집에서였다. 영어유치원 졸업 후 원어민 과외를 선택한 이유시작은 단순한 고민이었다. 영어유치원이 이제 곧 끝난다. 그동안 아이가 하루의 대부분을 영어로 지냈는데 그 시간이 사라지면 무엇으로 메워야 하나. 딱히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졸업 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는 영어유치원 졸업 후 영어 유지가 막막한 부모에게에 적어 두었는데, 결국 그 고민의 답을 하나 시도해 본 셈이다.처음에는 화상 영어 회화도 생각했다. 요즘 흔하고 편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아..
아이는 영어유치원에서 지내는 동안 하루의 대부분을 영어로 살았다. 선생님과도 영어, 친구와도 영어, 수업도 놀이도 노래도 영어였다. 아침에 등원해서 오후에 나올 때까지 한국어를 거의 쓰지 않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몇 해가 쌓이니 아이에게 영어는 공부가 아니라 그냥 생활이 됐다.그런데 곧 초등학교에 간다. 영어권 학교도 국제학교도 아닌, 평범한 동네 초등학교다. 요즘 나는 그 장면을 자주 그려 본다. 영어로만 지내던 아이가 한국어로 굴러가는 교실에 앉으면 어떤 기분일까.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내 걱정은 영어 실력 쪽이 아니다. 영어유치원 나온 아이가 초등학교 교실에 앉으면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이거다. 아이가 무심코 영어로 말해 버리면 어쩌나. 지금까지 그게 자연스러운 환경이었으니 습관처럼 튀어나올 수..
며칠 전 아이가 쉬고 싶다고 하더니 영어책을 열 권 넘게 꺼내 와 읽었습니다. 쉰다면서 책을 펴는 겁니다. 처음엔 그림만 보나 싶었는데 들여다보니 제법 두꺼운, 거의 영어 소설에 가까운 책이었습니다. 대견하다가도 문득 다른 장면 하나가 겹쳐 떠올랐습니다. 얼마 전 같은 아이가 한글책 한 줄 앞에서 더듬거리다 결국 저에게 책을 밀어 놓으며 읽어 달라고 하던 모습입니다.영어책은 쉬는 시간에도 열 권씩 넘기는 아이가 정작 한글책은 그렇게 버거워합니다. 모국어가 한국어인데 순서가 뒤바뀐 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마음이 쓰였습니다. 이러다 한국어가 뒤처지는 건 아닐까, 내가 영어에만 너무 기울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아마 영어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라면 한 번쯤 해봤을 고민일 겁니다.그..
저희 집은 제가 아이의 교육을 주로 맡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시킬지를 두고 아내와 저는 자주 부딪혔습니다.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었습니다. 둘 다 아이를 아꼈고, 다만 아이를 바라보는 눈이 서로 달랐을 뿐입니다. 오늘은 아이가 영어를 잘하게 된 이야기가 아니라, 그 뒤에서 부모 두 사람이 어떻게 달랐고 어떻게 같아졌는지를 적어 보려 합니다.아이 영어교육을 보는 눈이 아내와 달랐습니다아내는 늘 조금 더 하기를 바랐습니다. 인터넷과 SNS에는 유치원생인데도 영어를 술술 하는 아이들이 넘쳐났고, 아내는 그런 아이들을 찾아보고 저에게 보여 주곤 했습니다. 우리 아이도 할 수 있다고, 지금이 무엇이든 빨아들이는 시기라고, 그러니 이때 조금 더 해 두자고 했습니다.저는 조금 달랐습니다. 여러 개를 얕게 벌이는..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가장 후회하는 게 뭐냐고 누가 묻는다면, 정작 나는 영어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다. 마음에 남는 건 다른 데 있다. 그 시절 나는 아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시켰다. 영유 하나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이것저것 자꾸 얹었다. 영어유치원을 보내고 나서 든 가장 큰 후회다.의외였던 게 하나 있다. 영어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들이 정작 목숨을 거는 과목은 영어가 아니었다. 수학이었다. 영어는 유치원이 종일 붙들고 해 주니 그건 됐고, 남은 힘은 다들 수학에 쏟았다. 처음엔 저게 뭔가 싶었는데 어느새 나도 그 분위기 속에 들어가 있었다. 다들 그러니까, 우리 애만 안 하면 뒤처질 것 같았다. 영유 하나로는 안 될 것 같았다영어유치원 비용이 적지 않다. 그 돈을 내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