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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한 날에도 왜 그랬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입고 간 바지가 비닐봉지에 담겨 가방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옆에는 갈아입은 여벌옷과, 접힌 별 모양 칭찬표가 같이 있었습니다. 비닐봉지는 아이가 당황했을 시간을, 접힌 칭찬표는 선생님이 그 시간을 조용히 덮어주신 흔적을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묻고 싶은 게 먼저 줄을 섰습니다. 왜 미리 말 안 했어, 친구들이 봤어, 많이 창피했어, 선생님께는 뭐라고 했어. 그런데 아이는 칭찬표보다 제 얼굴을 먼저 봤습니다. 제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부터 살피는 눈이었습니다. 그 눈빛을 보고 줄 서 있던 질문을 그냥 삼켰습니다.영어유치원에서는 화장실 가는 것도 “Can I go to the bathroom?” 같은 문장으로 말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아이는 그 문장을 알고 있었습니다. 집에서도 몇 번 해본 말..

영어유치원 현실 2026. 5. 17. 08:28
아이 영어책 읽기,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을 때 독서가 달라지는 이유

친구는 독서 선생님이 아니었습니다.그런데 친구가 집에 온 뒤, 딸의 영어책은 조금 다른 물건이 됐습니다. 혼자 읽고 끝내는 책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책이 됐습니다.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딸 입에서 한 친구 이름이 자주 나왔습니다. 밥 먹다가도 나왔고, 장난감을 만지다가도 나왔습니다. 그냥 같은 반 친구 이야기가 아니라 집까지 이어지고 싶은 이름처럼 들렸습니다.스케줄을 맞춰 그 친구를 집에 초대했습니다. 책 읽히려고 부른 건 아니었습니다. 놀고, 간식 먹고, 다시 놀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런데 친구가 오기 전부터 딸이 먼저 움직였습니다.장난감보다 책 바구니를 먼저 봤습니다. 평소 읽던 영어책을 아무렇게나 꺼낸 게 아니었습니다. 하나씩 넘겨보더니 따로 빼놓기 시작했습니다.웃긴 장면이 있는 책은 ..

영어유치원 현실 2026. 5. 15. 16:03
영어유치원 상담표 집에서 다시 확인

영어유치원 상담표를 받아오면 이상하게 좋은 말보다 애매한 말이 먼저 보입니다. 잘하고 있다는 문장은 잠깐 기분이 좋고, 조금 더 지켜보자는 문장은 오래 남습니다. 저는 상담표를 펼쳐놓고도 아이 얼굴보다 종이 위 문장을 먼저 보고 있었습니다.그날도 그랬습니다. 가방에서 상담표를 꺼냈고, 아이는 옆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적어준 문장을 읽었습니다. 발표, 참여, 친구 관계, 수업 태도. 단어는 다 익숙한데 이상하게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유치원에서는 잘한다고 적혀 있는데 집에서는 말이 줄어드는 날이 있습니다. 친구들 앞에서는 발표를 한다는데 아빠 앞에서는 “몰라”로 끝나는 날도 있습니다. 상담표를 읽는 순간 저는 자꾸 둘 중 하나를 고르려고 했습니다. 유치원 모습이 진짜인지, 집 모습이..

영어유치원 현실 2026. 5. 14. 14:15
영어유치원과 학원 병행 첫 주, 딸 할 일 아래에 아빠 할 일을 적었습니다

영어유치원과 학원을 같이 다니기 시작한 첫 주였습니다.집에 돌아오니 식탁 위에는 영어유치원 워크북과 리딩북, 학원에서 가져온 프린트가 같이 올라왔습니다.딸은 양말 한쪽을 벗은 채 소파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있었고, 저는 오늘 뭘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머릿속으로 세고 있었습니다.그러다 작은 종이에 줄을 두 개 그었습니다.위에는 딸이 할 일.아래에는 아빠가 할 일.딸이 그 종이를 보더니 아빠도 할 일이 있냐는 식으로 물었습니다.적어놓고 보니 정말 그랬습니다.학원을 하나 더 다니는 건 딸에게 수업 하나가 추가되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처음에는 딸 시간표만 봤습니다병행을 결정할 때 제가 먼저 본 것은 수업이었습니다.영어유치원에서 배우는 것과 학원에서 배우는 것이 얼마나 겹치는지, 학원을 하나 더 다니면 무엇을 더 ..

영어유치원 현실 2026. 5. 11. 16:09
영어유치원 스피치 준비, 발표 리허설에서 부모가 봐야 할 것

수요일 저녁이면 집 안 공기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다음 날은 영어유치원 스피치 영상을 찍는 목요일이었습니다.원고는 늘 종이 한 장이었지만, 그 종이 한 장이 아이에게는 꽤 무거워 보였습니다. 첫 문장은 곧잘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첫 줄을 말하고 나면 딸 눈동자가 원고 위를 오래 오갔습니다. 읽을 수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외우지 않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앞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 길이 자주 끊겼습니다.저는 처음에 목소리로 도왔습니다.“다음 문장.”“여기 봐.”“다시 처음부터.”그 말들이 도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제가 말할수록 딸은 제 입을 봤습니다. 원고를 보는 것도 아니고, 자기 머릿속 문장을 찾는 것도 아니고, 제 입에서 정답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얼굴이 ..

영어유치원 현실 2026. 5. 6. 10:16
영어유치원 숙제 낯선 단어, 홀로그램을 직접 보여준 이유

숙제장에 hologram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아이 눈은 단어보다 제 손에 들린 투명 비닐을 따라갔습니다. 사전에는 분명 뜻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곱 살 아이에게 “홀로그램은 빛으로 만든 입체 영상”이라고 말해도 표정이 밝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입체’도 ‘영상’도, 홀로그램만큼이나 또 다른 어려운 단어였으니까요.그래서 사전을 덮었습니다. 냉장고 옆에 있던 투명 비닐을 조명 아래로 가져와 아이 손에 쥐여줬습니다. 아이는 단어를 보기 전에 비닐 위의 반짝임을 먼저 봤습니다.비닐을 기울이자 아이가 먼저 물었습니다비닐을 살짝 기울이자 빛이 흔들렸습니다. 아이는 손끝으로 비닐을 건드리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습니다. 비닐은 손에 잡히는데, 그 위에서 흔들리는 빛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진짜야?” 하고 묻..

영어유치원 현실 2026. 5. 5.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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