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에서 아이가 제일 먼저 찾은 것은 다음 수업 가방이 아니었습니다. 물병이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온 딸은 차에 타자마자 물병을 찾았고, 몇 모금을 급하게 마신 뒤 조용해졌습니다. 창밖을 보는 것도 아니고, 잠드는 것도 아니고, 그냥 멈춘 사람처럼 뒷좌석에 앉아 있었습니다.평소 같으면 바로 물었을 겁니다. “오늘 어땠어?”, “재미있었어?”, “다음 수업 갈 수 있겠어?” 그런데 그날은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백미러에 비친 아이 얼굴이 대답할 준비가 된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물을 마시는 얼굴도 아니고, 쉬는 얼굴도 아니고, 하루를 겨우 넘긴 얼굴에 가까웠습니다.그때 사교육 시간표를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어, 독서, 사고력, 운동, 발표 준비. 각각 따로 보면 다 좋아 보였습니다...
호주 공항에서 아이가 제 뒤가 아니라 직원 쪽으로 몸을 돌린 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짐 하나와 커피를 들고 있었고, 아이는 자기 작은 가방을 앞으로 끌어당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이가 저를 보지 않고 직원 쪽을 봤습니다. 짐이 괜찮은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잠깐 쉴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알고 싶은 얼굴이었습니다.영어 문장이 완벽해서 놀란 건 아니었습니다. 문법이 정확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낯선 공항에서 자기 하루를 확인하려는 방향이 제 쪽이 아니라 바깥쪽으로 향한 게 먼저 보였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잠깐 생각했습니다. 이 아이가 언젠가 해외에서 공부할 수도 있겠구나.그런데 그 생각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설렘 뒤에 바로 다른 장면들이 따라왔습니다. 짐을 잃어버렸을 때, 배가 아플 때, 친구 말이 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