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body attention…”주말 저녁, 영어유치원을 함께 다녔던 친구들과 놀던 중 한 아이가 이 말을 꺼냈다.뒤에 뭐라고 더 이어서 말했는지는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이 표현 자체는 딸에게 다시 확인했다. 영어유치원 7살 반에서 아이들이 정신없이 놀거나 산만할 때 담임선생님이 자주 쓰던 말이라고 했다.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딸이 웃었다.나는 그 표정이 재미있었다.영유를 졸업한 뒤 우리 집에서는 이런 영어를 들을 일이 완전히 없어졌기 때문이다.영어책은 여전히 읽는다. 영어학원도 다니고 원어민 수업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선생님이 반 전체를 집중시키거나 아이들을 정리할 때 쓰던 영어는 집에서 사용할 이유가 없다.두 달 가까이 입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고 들을 일도 없었다.나는 ..
“어? 아빠, 여기 글로벌 학교 아니야? 영어가 너무너무 쉬워. 영어유치원보다 너무 쉬워.”화교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하고 첫 영어수업을 들은 딸이 집에 와서 한 말이다.나는 영어가 쉽다는 말보다 다른 걱정이 먼저 들었다. 아이가 수업시간에 너무 쉽다고 티를 내지는 않았을까. 자기도 모르게 잘난 척을 하거나, 친구들이 듣는 앞에서 경솔한 말을 하지는 않았을까. 영어를 잘한다는 칭찬보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가 더 궁금했다.영어가 너무 쉽다는 말보다 잘난 척이 먼저 걱정됐다나는 영어 교과서를 미리 보지 못했다. 입학하고 나서 책을 펼쳐보니 첫 수업답게 내용은 완전 기초에 가까웠다. 처음 만난 아이들과 워밍업하는 시간이었을 테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그런데 딸의 시작점은 달랐다. 다섯 살부터 영..
"나중에 의사가 될 건데, 나는 피부과 의사라서 다리는 다른 의사 선생님 소개시켜줄게."그날 시크릿쥬쥬 키즈카페에서 있었던 일이다. 일곱 살이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고, 정말 오랜만에 간 키즈카페였다. 우리 딸은 여자아이답게 공주를 정말 좋아해서 그날도 신이 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딸은 처음 본 동생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나는 몇 시간 동안 혼자 걱정만 하고 있었는데, 그 걱정은 하나도 필요가 없었다. 그날 엄지척을 받은 사람은 내가 아니라 딸이었다. 시크릿쥬쥬 키즈카페, 아빠의 걱정키즈카페는 은근히 비싸다. 입장료 내고 안에서 간식까지 사 먹으면 돈이 제법 나온다. 그럴 때면 나는 자동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돈이면 원어민 수업을 한 번 더 알아볼까, 학원을 하나 더 볼까. 놀러 와서까지 ..
맥도날드에서 딸은 리듬을 타며 미국 아이처럼 말했고, 저는 yep, nop만 했습니다. 바로 옆 테이블에 우리와 비슷한 가족이 앉아 있었습니다. 남자아이 하나에 부모도 제 또래로 보였습니다. 그 집 아이는 한국말을 했고 우리 딸은 영어를 했습니다. 딸은 그 가족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의식한 사람은 저와 아내뿐이었습니다. 감자튀김과 오레오 맥플러리를 앞에 두고, 딸은 제가 본 것 중 가장 편한 얼굴로 영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얼굴을 보면서도 제 신경은 자꾸 옆 테이블 쪽으로 갔습니다. 그날 이상했던 사람은 딸이 아니라 저였습니다.영어유치원 보내는 내내, 걱정 없던 날이 하루도 없었다영어유치원을 보내본 사람이라면 알 겁니다. 보내기 전부터 졸업시킬 때까지, 걱정 없던 날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저..
유치원 사진이 삶의 활력소.딸이 영유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키즈노트 알림장은 내가 챙겨봤다. 보통 엄마가 알림장을 확인하는 집이 많았지만 우리 집은 달랐다. 나는 아빠였고, 동시에 주 양육자였다. 선생님과 상담하는 사람도 나였고, 집에서 숙제를 봐주는 사람도 나였다. 선생님도 아버님과 연락하는 경우는 내가 유일하다고 했다. 키즈노트 알림이 울리면 나는 사진과 발표 영상을 열어봤다. 다른 부모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내게는 유치원 안의 딸을 잠깐 만나는 시간이었다. 집에서는 볼 수 없던 딸의 얼굴이 그 안에 있었다.키즈노트, 아빠의 삶의 활력소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촬영해 키즈노트에 올려줬다. 수업 중인 사진도 있었고, 아이가 앞에 나가 발표하는 영상도 있었다. 알림이 울릴 때마다 ..
장모님한테 아이 영어 숙제를 봐달라고 부탁했을 때, 처음엔 손사래를 치셨다. 자기가 영어를 어떻게 봐주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결국 하셨다. 오로지 손주 하나 때문이었다. 아내가 대한항공 승무원이라 자주 해외로 나가고 나도 회사원이라, 우리 집 아이의 하루를 실제로 지탱해온 사람은 장모님이다. 영어를 한마디도 모르시는 분이 손주의 영어를 봐주게 된 이야기다.영어 숙제 케어, 손사래 치던 장모님이 결국 한 것딸은 다섯 살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녔다. 매달 제법 큰돈이 들어가는 곳이었다. 그만큼 아이가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게 챙기는 일이 중요했는데, 아내와 나는 둘 다 일 때문에 낮 시간을 비웠다. 그 빈자리를 메운 사람이 장모님이었다.그래서 아내와 나는 장모님께 하나씩 부탁을 드렸다. 아침에, 그리고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