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104

카디건을 돌려주기 전 쓴 말 원복 카디건 하나가 우리 집 가방에 들어와 있었습니다.딸아이 것은 아니었습니다. 목 안쪽 라벨에 친구 이름이 적혀 있었고, 딸아이는 보자마자 그 이름을 바로 불렀습니다.“아, 이거 친구 거야.”너무 빨랐습니다. 같은 반 친구라서 이름을 아는 건 당연한데, 그 이름이 아이 입에서 너무 쉽게 지나갔습니다. 저는 카디건을 바로 접지 못했습니다.라벨에는 영어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딸아이는 손끝으로 라벨을 잡아당겨 한 번 더 봤습니다. 저는 그 옆에서 잠깐 늦었습니다. 이 이름을 이렇게 부르는 게 맞는지, 교실에서는 어떻게 들리는지, 친구는 자기 이름을 어떤 소리로 듣고 있는지. 그런 생각이 라벨 앞에서 잠깐 걸렸습니다.친구 이름을 틀렸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발음을 검사하려는 것도 아니었고요. 다만 .. 2026. 6. 1.
영어유치원 초대장 답장, 못 갈 때 영어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아이 가방에서 생일 초대장이 나오는 날이 있습니다. 반가운 한편, 하필 그날 다른 일정이 있으면 난감해집니다. 못 가는 걸 아이가 친구에게 영어로 어떻게 전하게 할지, 저도 한참 고민했습니다.우리 집은 아내가 승무원이라 집에 오는 날이 들쭉날쭉합니다. 초대장에 적힌 날이 마침 아내가 며칠 만에 돌아오는 날이었습니다. 딸은 그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친구 생일까지 겹쳐서, 못 가는 쪽으로 마음을 정하기까지 아이도 저도 며칠이 걸렸습니다. 그날 아이에게 시킨 말을 정리해 둡니다.RSVP가 뭔지부터초대장 아래쪽 작은 글자에 RSVP가 적혀 있습니다. 어려운 약자가 아니라 "올 건지 안 올 건지 알려달라"는 표시입니다. 파티 장소나 시간보다 사실 이 네 글자가 더 중요합니다. 초대한 친구가 .. 2026. 5. 31.
지하주차장에 뜬 숙제사진 (단톡방, 비교, 첫마디) 지하주차장에서 차 시동을 끄려는 순간, 영어유치원 단톡방에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다른 집 아이의 리딩북 세 권, 빨간 체크가 빼곡한 워크북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몇 초 보다가 뒷좌석 아이에게 바로 물었습니다.“오늘 리딩북 몇 권 했어?”물어놓고 나서야 아이 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딸은 대답 대신 가방 지퍼를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우리 집 영어를 흔든 건 숙제량보다 제 첫마디였습니다.단톡방 숙제사진이 지하주차장에 뜬 순간지하주차장은 하루가 끝나는 자리였습니다. 회사 전화를 마치고, 차 안 불을 끄고, 아이 가방을 들고 올라가면 집에서는 숙제와 저녁 리딩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전에 단톡방 알림이 먼저 들어왔습니다.사진 속 아이는 리딩북을 세 권 펼쳐놓.. 2026. 5. 31.
별점부터 본 패드영어 (정답버튼, 음독, 종이책) 주말 오후 세차장 흡입기 소리가 차 안까지 들어왔습니다. 딸은 뒷좌석에서 패드를 들고 있었고, 화면에는 짧은 영어책과 퀴즈가 번갈아 떴습니다. 아이는 책장보다 정답 버튼을 더 빨리 찾았습니다.“이거 맞으면 별 올라가?”그 순간엔 저도 웃었습니다. 영어를 싫어하지 않고, 혼자 앉아 뭔가 하고 있으니 아빠 입장에서는 편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같은 책 내용을 물었을 때 아이는 줄거리를 말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아까 4개 맞았어”라고 했습니다. 그날 세차장 뒷좌석에 남은 건 영어 문장보다 점수판에 가까웠습니다.패드영어 손끝이 향한 정답 버튼패드 영어 학습은 부모에게 편합니다. 책이 자동으로 나오고, 음원도 붙어 있고, 문제까지 바로 채점됩니다. 퇴근 뒤 숙제와 리딩을 같이 챙기는 입장에서는 그 편리함이.. 2026. 5. 30.
현관에서 만난 wet (물방울, 발끝, 비 오는 페이지) 비 오는 날 저녁, 영어유치원 가방을 내려놓은 딸이 현관 우산꽂이 앞에 서 있었습니다. 비닐우산 끝에서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졌고, 아이는 그걸 멍하니 보다가 작게 말했습니다.“It’s raining again.”그날 리딩북에는 비 오는 날 창밖을 보는 아이가 나왔습니다. 책을 펼치기 전, 집 안 현관에 이미 책 속 장면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숙제장을 바로 펴는 대신 우산꽂이 앞에 조금 더 섰습니다. “The floor is wet.” 낮게 말하자 딸은 발끝을 들고 젖은 타일을 피해 걸었습니다. 그 짧은 발끝 하나가 그날 영어의 시작이었습니다.현관 물방울로 잡은 wet 뜻wet이라는 단어는 책 속에서만 보면 지나가기 쉬웠습니다. 아이가 소리 내어 읽을 수는 있어도, 그 말이 몸에 붙으려면 다른 장면이 필요.. 2026. 5. 30.
기내 안전카드 영어 (벨트표시, Fasten, 인형놀이) 아내가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거실 한쪽에 캐리어가 놓여 있었습니다. 딸은 숙제장보다 캐리어 옆 작은 파우치에 먼저 손을 넣었습니다. 안에는 기내에서 받은 물티슈, 귀마개, 접힌 안내 종이가 들어 있었습니다.아이가 꺼낸 것은 기내 안전카드였습니다. 벨트 그림을 보더니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습니다.“Seat belt?”제가 낮게 “Fasten your seat belt”라고 말하자, 딸은 의자에 앉아 허리에 손을 댔습니다. 벨트를 채우는 흉내였습니다. 영어책은 그대로 닫힌 채였고, 아이 손에는 안전카드 한 장이 오래 들려 있었습니다.그 짧은 장면 하나가 그날 영어 시간이 됐습니다. 캐리어 옆 파우치, 접힌 안전카드, 벨트표시, 아이 허리로 간 손. 7살 딸에게 영어가 붙는 자리는 생각보다 책상 바.. 2026. 5. 29.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아빠표 유아영어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