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딸에게 영어책 읽기는 가장 큰 무기다. 원어민과 마주 앉아도 대화가 막히지 않는다. 그런데 그 시작은,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세 살, 네 살 무렵 우리 집 거실은 종종 무대가 되었다. 소파에 아이를 앉혀 놓고 나는 거실 한가운데 섰다. 우리 가족 소개부터 시작했다. 아빠는 누구, 엄마는 누구, 손동작을 크게 넣고 목소리 톤을 올리고 표정까지 지어 가며 한 사람씩 영어로 소개했다.그냥 말하는 게 아니었다. 아이 눈빛을 살피면서, 반응이 오면 더 크게, 지루해하면 방향을 틀어 가며 했다. 지금 돌아보면 배우 오디션을 봐도 됐겠다 싶을 만큼 온 정성을 들였다. 아이 하나 앞에 두고 매일 대배우가 되었던 셈이다.소파 앞에서 아빠는 매일 대배우가 되었다 그런데 이게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유모차를..
아이는 다섯 살부터 약 2년 반 동안 영어유치원을 다녔고, 2026년 6월 30일에 그 생활을 마쳤습니다.5살에 시작해 6살을 지나 7살이 된 지금, 영어유치원 2년 반 후기를 적으려니 잘한 일보다 아이에게 미안했던 저녁이 먼저 떠오릅니다.다른 집 부모들은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모두 천사처럼 웃으면서 아이 숙제를 봐주고, 아이가 딴짓해도 기다려주고, 틀려도 괜찮다고 말해줬을까요.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아이와 평일 저녁을 보내기 위해 온갖 방법을 써봤습니다. 숙제 순서를 바꿔보고, 중간에 쉬어보고, 간식을 먹여보고, 먼저 할 것을 아이에게 고르게도 했습니다. 휴일과 주말에도 영어책을 읽고, 밀린 숙제를 보고, 다음 주에 필요한 것을 챙겼습니다.영어유치원을 보내고 평일 저녁과 주말이 실제로 어떻게 달라졌..
딸이 영어책을 너무 빨리 읽어서 내용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날 저는 책의 줄거리와 주인공 이름을 먼저 찾아본 뒤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해도를 측정한 것은 아니지만, “재밌었어”로 끝나던 대화가 이어지는 계기가 됐습니다.이 방법을 알게 된 날이 있었습니다. 영어 원서를 읽는 속도를 아빠가 따라가지 못했습니다저는 딸이 영어책을 읽을 때 뒤에 앉아 같이 따라 읽어보곤 합니다. 그런데 따라가지지가 않습니다. 제가 한 문장을 붙들고 있는 사이에 아이는 다음 장을 넘깁니다.이야, 빠르다. 처음에는 감탄했습니다. 그다음에 의심이 따라왔습니다. 눈으로만 대충 훑고 넘기는 것은 아닐까. 제 눈에도 모르는 단어가 보이는데 아이는 죽죽 읽어 나갔습니다. 긴가민가했습니다.중간에 끊고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그..
지난 토요일 오전 아홉 시 반, 우리 집에 원어민 선생님이 왔다. 아이가 처음 받아 보는 일대일 원어민 수업이었다. 작년에 영어 카페에서 짧게 대화를 나눠 본 적이 한 번 있었지만, 이번에는 밖이 아니라 집에서 만나는 자리였다. 영어유치원을 마친 뒤의 영어를 고민하며 고른 수업수업을 알아보기 시작한 계기는 영어유치원을 마친 뒤 영어를 어떻게 이어갈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영어로 지내던 시간이 사라지면 무엇으로 메워야 할까. 딱히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2026년 6월 30일에 영어유치원 생활을 마쳤다. 그 뒤 달라진 환경은 영유를 마친 뒤 달라진 영어 사용 환경에 따로 적었다. 원어민 수업은 그 고민 속에서 시도한 방법 하나였다.처음에는 화상 영어 회화도 생각했다. 요즘 흔하고..
아이는 영어유치원에서 지내는 동안 하루의 대부분을 영어로 살았다. 선생님과도 영어, 친구와도 영어, 수업도 놀이도 노래도 영어였다. 아침에 등원해서 오후에 나올 때까지 한국어를 거의 쓰지 않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몇 해가 쌓이니 아이에게 영어는 공부가 아니라 그냥 생활이 됐다.이 글은 2026년 7월, 8월 화교학교 정식 입학을 앞두고 느꼈던 걱정을 적은 기록이다. 아이는 6월 30일에 영어유치원 생활을 마쳤고, 7월에는 입학 전 중국어 특강에 참여하고 있었다. 영어유치원과 다른 언어 환경에서 새 친구들을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솔직히 내 걱정은 영어 실력만이 아니었다. 영어유치원을 나온 아이가 새로운 교실에 앉으면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이거다. 아이가 무심코 영어로 말해 버리면 어쩌나. 지금까지 그게..
며칠 전 아이가 쉬고 싶다고 하더니 영어책을 열 권 넘게 꺼내 와 읽었습니다. 쉰다면서 책을 펴는 겁니다. 처음엔 그림만 보나 싶었는데 들여다보니 제법 두꺼운, 거의 영어 소설에 가까운 책이었습니다. 대견하다가도 문득 다른 장면 하나가 겹쳐 떠올랐습니다. 얼마 전 같은 아이가 한글책 한 줄 앞에서 더듬거리다 결국 저에게 책을 밀어 놓으며 읽어 달라고 하던 모습입니다.영어책은 쉬는 시간에도 열 권씩 넘기는 아이가 정작 한글책은 그렇게 버거워합니다. 모국어가 한국어인데 순서가 뒤바뀐 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마음이 쓰였습니다. 이러다 한국어가 뒤처지는 건 아닐까, 내가 영어에만 너무 기울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아마 영어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라면 한 번쯤 해봤을 고민일 겁니다.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