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4 한 장을 앞에 두자 아이 손이 멈췄습니다. 연필을 쥔 채로 한참 동안 종이만 내려다봤습니다. 빈 A4 한 장이 일곱 살에게는 생각보다 큰 벽이었습니다. 단어를 몰라서 멈춘 것처럼 보였지만, 옆에서 보니 조금 달랐습니다. 아이는 아직 ‘무엇을 써야 할지’를 고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뭐 했는지 써봐’라는 말은, 하루 전체를 한꺼번에 떠올리라는 주문이라 오히려 더 막막했습니다. 영어 문장을 만들기 전에, 하루 중에서 쓸 만한 장면을 먼저 작게 잘라야 했던 겁니다.그날은 A4 옆에 포스트잇 네 장을 붙였습니다. 놀이터, 친구, 간식, 집에 오는 길. 글자만 적으면 그 칸도 또 다른 빈 종이가 될 것 같아, 칸마다 작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놀이터 칸에는 미끄럼틀을, 친구 칸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친구..
아이들이 영상 좋아하는 건 너무 당연합니다. 영어 영상이든 만화든 노래든, 화면이 바뀌고 캐릭터가 움직이고 소리가 나오면 아이 눈은 바로 붙습니다. 그걸 부모가 의지로만 막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집 안에는 작은 전쟁이 생깁니다.저도 처음에는 영상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영어 영상도 너무 오래 보면 안 좋을 것 같고, 리모컨을 계속 쥐고 있으면 아이가 화면만 넘기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영상은 아이만 좋아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부모도 좋아합니다. 조용해지니까요.영어 노래가 나오고, 아이가 웃고, 집 안이 잠깐 조용해지면 부모는 이상하게 안심합니다. 그냥 만화를 틀어준 게 아니라 영어 환경을 만들어준 것 같은 착각도 생깁니다. 문제는 그 착각이 오래가면 영상이 아이 입에 남는지,..
